[독자투고]성삼문 유허지-인근 유적지 연계 교육 콘텐츠 마련을
상태바
[독자투고]성삼문 유허지-인근 유적지 연계 교육 콘텐츠 마련을
  • 홍주일보
  • 승인 2014.05.15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출생하여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명분으로 단종 복위를 주도한 성삼문의 시조이다. 그는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왕조를 세우자 무왕의 행위가 인의(仁義)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몸을 숨겼으며 고사리를 캐어먹고 지내다가 굶어죽었다. 지조와 절개를 지켜 성인으로 추앙받는 중국의 백이와 숙제를 비판하면서 절대적인 충의와 지조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충의와 지조를 담은 우수한 시조와 한시를 남겼다.
이러한 성삼문의 충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 삽교고등학교 동아리 ‘샘이 깊은 물’ 회원들은 지난 9일 그의 유허지(遺墟地)와 사당 충문사(忠文祠)가 있는 노은리를 찾았다. 먼저 사당을 찾은 우리는 사당 뒤편에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대나무를 보면서 성삼문의 호 매죽헌(梅竹軒)에 담긴 그의 기상과 후손들의 정성을 볼 수 있었다. 문화재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은 충의와 지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답사를 하는 동안 회원들은 모두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삼문의 충의와 지조는 물론이고 그의 높은 문학적 지명도에도 불구하고 유허지는 매우 썰렁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허지라는 말이 ‘역사적 사실이 기록만 남아 있고 그 장소에 유물, 문화재가 전혀 없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관리’만 하고 ‘교육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허지에 남아 송시열의 쓴 것으로 알려진 유허비도 비각 안에 보호(?)되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운 곳에 단종 복위에 참여한 성삼문의 아버지(성승)와 어머니, 부인의 묘가 있고 최영 장군의 사당이 있음에도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들 역사 유적을 하나로 묶고 인근의 김좌진 장군과 만해 한용운 생가 및 기념관, 고암 이응노 화백의 기념관을 연계하는 역사와 문화 교육 콘텐츠를 마련한다면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성삼문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하고 세 번 물었다는 일화(한 번 물으면 임금이, 두 번 물으면 재상이, 세 번 물으면 유명한 학자가 탄생한다고 함)와 유허지 앞의 우물과 마을 어른들이 들려주는 전설 등을 연계한다면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완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예전에는 유허지를 알리는 작은 이정표만 있었지만 최근에는 유허지에 접근하기 편하도록 이정표가 정비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우리 고장 홍성이 고대국가의 수도는 아니었지만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한 많은 위인들이 있었다. 따라서 이를 교육 콘텐츠로 만들어 후손에 계승시키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한다. 특히 충남도청이 홍성 지역으로 이전되어 새로운 충남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한다면 지역의 역사와 위인들의 삶에 대해 지역 주민들은 물론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계승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삽교고 동아리 ‘샘이 깊은 물’(회원:김예진, 손경빈, 송지혜, 심현비, 유대혁, 이주혜, 한주신, 지도교사:유영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