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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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맞이하며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4.12.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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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약국이나 빵집, 서점 등에 가면 슬그머니 2015년도의 달력을 건넨다. 사무실이나 집의 달력은 이제 12월만 덩그러니 남아서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만남이 있는 자리마다 올 한 해가 다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해에 대한 꿈이 안주거리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렇게 올 한 해도 기울어 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풍요로운 한 해였다. 특히, 우리 고장은 더욱 그러했다. 가뭄이나 홍수, 태풍 등의 쓴맛을 느끼지 못했고, 모든 것이 풍작을 이루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고추를 한 번 제대로 따지 못하고 탄저병 등에 포기하고, 검은콩을 심은 것이 줄기만 무성할 뿐 콩 꼭지는 죽정이 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확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농작물 값의 폭락만 아니라면…….

계절적으로 12월은 겨울의 초입이다. 그러나 12월을 초겨울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초여름, 초가을이라는 이름만큼 초봄이나 초겨울은 익숙하지 못하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곳은 북서계절풍의 영향이 크고, 순식간에 찬 바람이 몰아닥치기 때문이다.

대개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12월이면 얼음 날 시퍼런 겨울이곤 했다. 이듬해 3월은 초봄이라고 하는데, 동장군은 쉽사리 물러날 줄 모르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판도가 바뀔 것 같다. 11월 말인데도 예년의 늦가을 맛이 거의 없다.

심지어 겨울을 녹인 완연한 봄처럼 안개만 무성하다. 그래, 지구온난화의 탓일 게다. 훈훈한 초겨울을 지내게 된 덕분에 사람들은 올해가 더욱 오래 갈 것이라는 착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울을 보내야 한 해가 간다는 의식이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산하의 나무들은 곱게 물들인 단풍잎들을 모두 떨구어냈다. 눈만 돌리면 어느 곳에든지 시커멓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흉물스럽게 서있다. 들녘을 가득 채웠던 곡식과 풀잎들도 대지에게 자리를 내준 채 물러난 상태이다. 설핏 바라본 산하와 들녘은 겨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것만 같다.

아무리 초목이 굳세어도 어찌 동장군의 시퍼런 서슬만 하랴. 종종 하얀 눈을 포옥 감싸고 겨울잠에 빠질 때인 것을……. 아직까지도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은 겨울을 보내는 계절로 여기고 있다. 즉, 이듬해의 봄, 여름, 가을을 활동하기 위한 쉬는 계절, 또는 재충전하는 계절 정도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새해를 앞둔 12월인데도 불구하고 송년회다 망년회다 하지만, 새해를 준비한다고는 별로 하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되어 새봄을 맞이할 즈음에야 2달 지난 새해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매년 12월은 망년의 달로 이듬해 1,2월은 푹 쉰답시고 보내버리는 시간이 되고 만다.

그러나 초목을 보라. 초목은 잎을 떨어뜨린 그 순간부터 꽃과 새잎을 피울 눈을 키우고, 땅 밑에서 새싹을 돋구어내고 있다. 초목은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살았다고 하여 겨울을 쉬지 않는다. 서슬 퍼런 동장군이 휘감을 때에도 가지가지마다 실핏줄을 붉히며 꽃눈을 데우고 있다.

그리하여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꽃잎 만발하고 새싹과 신록이 가득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도 미리 준비하면 어떨까? 겨울이 다가고 새봄이 오기를 기다려 새해를 시작하려 하지 말고, 12월에 미리감치 새해를 준비하면 1,2월을 허송세월한 10개월의 한 해가 아니라 12개월을 온전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자신의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초목에게서 배울 일이다. 2015년, 새해는 우리 모두 소중한 씨알 하나씩 고이고이 품을 일이다. 2014년 한 장 남은 12월의 두툼한 겨울 점퍼 호주머니 속에서 2015년의 새날을 위해 꽃눈을 부풀리고 새싹을 돋구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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