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끝 매달린 이슬 백로(白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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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끝 매달린 이슬 백로(白露)
  • 모영선<생태학교나무 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5.10.1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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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무더위를 뒤로하고 전국적으로 화창한 가운데 큰 일교차로 낮의 옷차림으로는 싸늘하고 춥기까지 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동해 북부 해상에 위치한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당분간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겠으나 낮 동안에는 일사에 의해 기온이 오르고 밤에는 복사 냉각에 의해 기온이 내려간다”며 “이에 낮과 밤의 기온 차가 10도 내외로 크겠으니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한다”고 예보했다.

지난 9월 8일은 백로(白露)였다. 24절기 중 처서와 추분 사이의 15번째 절기, 천문학적으로 태양이 황경 165도를 통과할 때로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이다. 백로(白露)라는 이름의 유래는 하얀 이슬이라는 뜻인데 잘 이해가 안 된다. 이시기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져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기 때문에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겨서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 투명하게 풀잎 끝 매달린 이슬의 모습이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기로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자연에 순응하며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았던 조상들에게 백로는 중요한 절기 중에 하나였다. 전남에서는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시절이 좋지 않다고 한다. 볏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여물어야 한다. 벼는 늦어도 백로 전에 패어야 하는데 서리가 내리면 찬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어든다.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고 한다.

제주도 속담에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라고 해서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고 전한다. 또한 백로 전에 서리가 오면 농작물이 시들고 말라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충남에서는 늦게 벼를 심었다면 백로 이전에 이삭이 패어야 그 벼를 먹을 수 있고, 백로가 지나도록 이삭이 패지 않으면 그 나락은 먹을 수 없다고 믿는다. 경남에서는 백로 전에 패는 벼는 잘 익고 그 후에 패는 것은 쭉정이가 된다고 알고 있으며, 백로에 벼 이삭을 유심히 살펴서 그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백로 전후에 부는 바람을 유심히 관찰해 풍흉을 점쳤다. 이때 바람이 불면 벼농사에 해가 많다고 여기며, 비록 나락이 여물지라도 색깔이 검게 된다고 한다.

백로는 대개 음력 8월 초순에 들지만 간혹 7월 말에 들기도 한다. 7월에 든 백로는 계절이 빨라 참외나 오이가 잘 된다고 한다. 한편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대풍이라고 생각한다. 경남 섬 지방에서는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린다”라는 말이 전하면서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시작한다.

이렇듯 조상들의 주요사업인 벼농사에 지역마다 백로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백로가 얼마나 중요한 절기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가을, 조상들의 눈으로 백로의 모습을 바라보고 느껴보는 여유를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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