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가 들려주는 독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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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가 들려주는 독도 이야기
  • 박종하<홍성고 2학년·학생기자>
  • 승인 2015.12.03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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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독도의 날을 맞아 개최된 ‘제6회 나라(독도)사랑 글짓기 국제대회’에서 홍성고등학교 2학년 박종하 학생이 산문부문 충청남도 도지사상을 수상했다. 박종하 학생은 본지 학생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대회 수상작 전문을 투고해 와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내 이름은 가제다. 인간들은 나를 바다사자 또는 강치라고 통칭하지만 나는 ‘가제’라는 이름이 좋다.
나에게는 가족이 있다. 통통하고 유머가 넘치는 아빠, 날씬하고 자상한 엄마가 있다. 아쉽게도 형이나 누나는 없다. 우리 가족은 집도 있다. 독도 서도 북동쪽의 큰가제바위와 작은가제바위가 우리 집이다.
옛날에는 집에서 4만이 넘는 많은 친척들이 함께 살았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단지 기름과 가죽을 얻으려고 무차별적으로 포획하면서 거의 죽었고, 그 이후로도 친척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면서 지금은 우리 가족만 겨우 살아남아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은 절대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는데, 그 이유는 인간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우리 조상들의 일을 기억하면서 어떻게든 가문을 이어가려는 부모님의 의지와 걱정이 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우리집 가훈이 ‘은둔’이었을까!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라왔다. 하지만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2009년 3월 12일 경북매일신문에 ‘독도, 바다사자 살아있다’라는 제목 하에 찍힌 사진이 바로 나다. 그런데 이 사진은 절대로 실수로 찍힌 사진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세상에 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왜 60여년을 잘 숨어 지내온 조상들과 가족들의 말을 어기고 갑자기 정체를 드러냈냐고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인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제3자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즉, 나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일본 사람도 아니다. 나는 바다사자 ‘가제’일뿐이다. 우리 조상들은 독도에 살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자손들에게 전해 주었는데, 나는 지금 부모님에게서 들은 바로 그 독도 이야기들을 말하고자 한다. 나의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여기 독도에서 살아왔다. 당시 사람들은 이곳을 우산도라고 불렀고 울릉도의 영토였다. 두 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서로 바라볼 수 있었다.

독도는 오징어, 명태, 가오리 등의 해양자원이 아주 풍부한 곳으로 울릉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서 물고기들을 잡아가곤 했지만 우리들을 절대로 해치지 않았다. 그래서 어부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얻어 들을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조상들의 신분이 바뀐 첫 번째 사건은 512년에 일어났다. 신라 지증왕의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여 울릉도와 우산도가 신라 영토가 되었다. 당연히 우리도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다”라는 말을 어부들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독도는 신라 영토였을 때와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울릉도 사람들만 물고기를 잡으러 왔다가 풍랑이 오면 대피하는 그런 섬이었다. 나라는 바뀌었어도 언어는 달라지지 않은 것도 우리 조상들이 독도에 대해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 근처에 나타나 물고기를 잡곤 했다. 나중에 어부들의 말을 통해 이 사람들이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들은 국경이라는 것이 없어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지만, 인간들은 국경이라는 것이 있어 함부로 넘나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조상들은 무척 의아했다고 한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은 조선시대 후기 1696년 안용복이라는 어부가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다.’라는 확약을 받음으로 해결되었다.

우리 조상들의 신분이 바뀐 두 번째 사건은 1905년에 일어났다. 을사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은 독도를 죽도라 이름을 바꾸고 일방적으로 일본 영토에 합병하였는데, 주된 이유가 우리 강치들을 싹쓸이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울릉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면서 큰 무리를 이루었던 우리 조상들은 이때부터 일본 사람들로부터 꾸준히 남획되어 1945년 해방이 될 무렵에는 천여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나마 6·25한국전쟁의 혼란한 틈을 타고 일본 사람들의 독도에 대한 침탈이 잦아지면서 1950년대에는 거의 멸종되고 말았다.

우리 친척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독도의용수비대 덕분이었다. 1954년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33명이 일본 순시선을 격퇴하면서 일본 어선의 불법행위가 멈추게 되었다. 독도의용수비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독도의용수비대에 의해 독도 동도 바위벽에 ‘韓國領’이라는 석자가 새겨질 때 우리 친척들은 물개 박수로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요즘 일본 사람들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은 1905년 시네마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일본에 편입했다는 근거를 들고 있는데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부득이한 상황임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에서 한국의 영토에 독도가 직접적으로 거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3000여 개의 섬들 중에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만 예시적으로 열거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흑산도, 거제도, 백령도 등도 한국의 영토가 아니란 말인가?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독도와 함께 한 독도의 산 증인이다. 신라 사람이든, 고려 사람이든, 조선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다 똑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1500여 년 동안 독도는 여전히 독도였을 뿐이었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 나 ‘가제’는 죽음을 무릅쓰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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