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시내는 배 3척을 엮어 놓은 ‘계주형국’
상태바
홍성 시내는 배 3척을 엮어 놓은 ‘계주형국’
  • 편집국
  • 승인 2008.06.25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포 풍수지리연구회 정존 이상운 회장 에게 듣는 홍성군의 양기에 대한 풍수적 해설

▲ 내포풍수지리연구회 이상운회장

양기(陽基) 라는 것은 산사람의 주거지(住居地)란 의미이다.
생사(生死)를 나누어 생자를 양(陽), 죽은 자를 음(陰)이라 하고 생자가 사는 곳을 양택(陽宅) 또는 양기(陽基)라 하며 죽은 자의 무덤은 음택(陰宅)이라 칭한다. 사람이 사는 집은 양택이라 하며 집이나 마을 군읍(郡邑), 도읍(都邑)이 들어설만한 터를 양기(陽基)라 한다.
홍성군(洪城郡)과 홍주성(洪州城)일대인 홍성 시내를 양기(陽基) 풍수적(風水的)으로 해설 해보려 한다.
홍성군은 충청남도 중서부 서해안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은 예산군, 서쪽은 천수만, 남쪽은 청양군과 보령시, 북쪽은 예산군과 서산시에 접하고 있다.면적은 421.60㎢, 인구는 2008년 현재 약9만 명 2읍 9면 336마을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홍성읍 오관리에 있다.
홍성의 지세(地勢)는 속리산에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시작 하는데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한줄기 맥으로 내려와 금북정맥(錦北正脈)은 칠장산에서 분맥(分脈)하여 칠현산516m를 지나 안성의 청룡산, 천안의 성거산 579m와 흑성산 519m, 공주의 쌍령, 온양 광덕산 699m, 청양의 금자산, 홍성의 오서산 790m와 백월산 394m에 이르게 되며 동남쪽이 모두 산지로 둘러 싸여 있으며 서쪽은 천수만에 접하고 있고 동쪽은 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봉수산 484m와 사자형상의 초롱산 340m, 남쪽에는 까마귀 형상의 오서산 791m, 북쪽은 수리형상의 삼준산 490m와 돛대 형상의 백월산 394m, 동북간에는 홍동산 310m, 익룡형상의 용봉산 381m 등이 둘러쳐 솟아있고 이들 산악과 그 여맥(餘脈)이 군내 각처에 뻗어 있어 대부분 구릉지(丘陵地)로 이루어져 있다.
오서산과 용봉산에서 발원한 금마천이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군의 동북부를 북류하며 와룡천이 북서부를 서류하여 천수만에 유입된다.
또한 광천천은 오서산에서 발원해 남부를 남류하여 천수만에 유입되며 남동쪽은 오서산과 매성봉에서 발원한 물이 금마천에 유입되며 금마천 유역에는 넓은 분지가 형성 되어 있으며 그 밖의 하천유역에도 평야지가 형성 되어 있어 서부 간척지와 함께 미질 좋은 쌀 생산이 이루어지고 홍성 한우와 광천 토굴새우젓, 남당항 대하, 새조개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농수산물이다.
또한 천수만 연안은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커서 간석지(干潟地)로 이용된다.
홍성을 포함한 충남 서부 지역은 지체 구조상 크고 작은 단층들이 발달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4대 강진 지역 중의 하나이다.

▲ 백월산과 당간지주 앞 뱃머리, 삽교천을 따라 서해바다로 나가려는 형국

역사상 이 지역에 감지된 지진 횟수는 약48회에 달하며 1978년에는 홍성 군청을 중심으로 진도8과 진원심도 10㎞에 이르는 강진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기후는 바다에 접해 있어 해양성 기후에 속하여 대체로 온난하나 겨울철에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아지기도 한다.
연평균 기온은 11.7℃ 1월 평균 기온은 -3.6℃ 8월 평균 기온은 26.1℃이며 강수량은 1.167㎜ 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홍주목(洪州牧)이라 하였으며 홍주성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문 즉 태양이 떠오른다는 뜻으로 조양문(朝陽門)이라 하였으며 동쪽은 홍동면이라 하며 북쪽은 홍북면, 서쪽은 서부면 이라고 방위상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있다.

홍성시내를 풍수지리(風水地理)로 이야기 한다면 형국상(形局上) 즉 지형(地形)의 형상(形象)을 사물에 견주어 말하는 것으로 계주형국(繫舟形局)에 속한다.
자세한설명은 뒤에 하기로 하고 먼저 금북정맥(錦北正脈)의 주맥(主脈)이 서해 바다 쪽으로 내려오다 오서산(烏棲山)에 이르러 우뚝 솟아올라 주사마적(蛛絲馬跡) 천전도수(淺田渡水)와 같이 맥이 흐르는데 그 맥의 흐름이 흐릿하게 흘러 맥인지 물길인지 구분이 안날 정도의 낮은 맥의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광천과 장곡면 사이를 지난 맥이 홍동면으로 들어오는데 오서산(烏棲山)과 백월산(白月山) 사이 홍동 땅에서 많은 인물들이 배출 되었다.
홍동을 지난 맥은 마온리 고개를 지나 교도소 뒷산인 남산으로 돌아 들어가 한줄기는 보개산 즉 내현(內峴)마을 쪽으로 돌아 들어가고 또 한줄기 맥은 하고개를 지나 백월산으로 들어온다.
백월산은 홍성읍의 진산(鎭山)으로 일명 월산이라고도 하며 홍성읍 월산리와 구항면 오봉리 홍북면 중계리 사이에 위치한다.

백월산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서해안 간척지와 천수만이 눈앞에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멀리 예당평야(禮唐平野)가 보인다.
정상에는 이몽학(李夢鶴)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홍가신(洪可臣)등에 위패를 모신 홍주정난사가 있고 산중턱에는 백제시대 때의 절터로 보이는 산혜암(山惠庵)이 있으며 절 밑에는 산허리를 기어오르는 듯한 지네모양의 돌 성터가 있는데 고려시대 해풍현(海豊縣) 고을 터라 한다.
백월산에서 시작한 맥은 두 줄기로 홍성 시내를 향해 내려오는데 이로 인하여 세 줄기 하천이 생겨난다.
남쪽으로 흐르는 홍성천은 하고개 쪽에서 시작하여 당간지주(幢竿支柱)앞에 이르고 가운데 물줄기는 월산리에서 시작한 월계천으로 신천아파트 앞에 이르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백월산에서 내려온 중출(中出) 맥기(脈氣)가 삼산양수지지(三山兩水之地)인 신천아파트와 고려시대 광경사(廣景寺) 당간지주 앞에 머물게 된다.

▲ 덕산통 사거리 만해기운센장어 앞 월계천과 양수가 합수한다.

이것을 형국으로 본다면 배에 해당하며 뱃머리는 삽교천을 따라 서해 바다로 나가려는 형국이다. 또 한 줄기는 소향리와  홍성여중 앞쪽에서 흘러와 덕산통 사거리 만해 기운센장어 앞에서 월계천과 양수(兩水)가 합수(合水)하는데 이로서 작은배 한척이 또 만들어진다. 
이로써 백월산은 흰 돛을 펴놓은 돛대이고 북쪽 의사총 뒷산 매봉은 노에 해당하며 배3척을 엮어놓은 계주형국(繫舟形局)을 이루게 되는데 제일 큰 배는 구룡리 쪽에서 내려오는 금마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내법리 내기마을로 들어가는 내기교와 흥양교 있는 곳이 뱃머리이며 수구(水口)에 해당하게 되며 서쪽 백월산을 현무(玄武)로 매봉을 청룡(靑龍)으로 남산에서 동관동 쪽으로 내려온 맥을 백호(白虎)로 봉수산을 안(案)으로 삼아 동북간(東北間)으로 물이 나가니 금국(金局)을 이룬다.
이로써 홍성은 삽교천을 따라  아산만을 통하여 서해바다로 나가려는 배의 형국이 형성됨으로 홍성시내는 배 3척을 엮어 놓은 계주형국(繫舟形局)이라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렇기에 배 형국인 홍성은 외지 사람이 들어와 장사 하면 돈을 벌지만 홍성 토박이는 그렇지 못하다는 소문이 있다.

필자는 홍성에 거주하고 있는 지인(知人)들에게 홍성군이 발전하고 군민이 단합 할 수 있는 문화행사(文化行事)와 비보풍수(裨補風水)에 대하여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홍성이 계주형국(繫舟形局)인 만큼 배는 돛을 올려 출항(出航) 하려한다. 항구(港口)는 배가 떠나면 번성(繁盛)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배가 항구를 떠나가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항구에 배가 꽉 차있어야 항구 경제(經濟)가 살아난다.
그래서 떠나려는 배를 잡아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배와 배 사이와 또는 육지(陸地)와의 사이에  밧줄로 붙들어 매어 놓아야 항구를 떠나지 않고 정박(碇泊) 하게 된다.
내포문화축제나 군민 체육대회 등 지역 축제 행사 때에 떠나려는 배를 붙잡아 놓을 수 있는 행사를 하여서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없었던 것을 왜 만들려 하느냐 반문(反問)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새로운 문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과거나 미래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미신이라 치부하지 말고 군민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홍성에는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있다.
예를 들어 한솔마트 뒤 엔리치타워위를 보면 이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작은 배가 만선을 한 것과 같이 볼 수도 있으나 돛을 높이 올린 배와 같이 볼 수도 있어 돛을 올린 배는 항구를 떠나려한다. 그렇기에 배가 떠나지 못하게 닻을 내리고 배를 붙들어 놓아야 한다.
또한 배와 배를 잇는 다리를 많이 놓아 사람들이 많이 왕래 하게 하여야한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난다. 요즈음 홍성시내에 부쩍 다리 공사가 많아 졌다. 이는 참 중요한 비보풍수(裨補風水)중에 하나이다.
많은 다리를 만들어 배를 붙들어 놓고 하천 주변을 따라 조깅이나 걷기운동길 또는 자전거 길을 하상천변에 만들어 군민들의 복지증진(福祉增進)에 일익을 담당하길 바랄뿐이다.
배 형국은 부(富)를 상징 한다.
만선(滿船)은 부(富)의 상징 이므로 부자가 많이 난다고 한다.
북한의 평양성도 배 형국중의 하나인 행주형(行舟形)이다. 배가 부두를 떠나면 불길(不吉)하여 그것을 진압(鎭壓)하기위한 비보풍수(裨補風水)로 현재에도 쇠닻을 연광정(練光亭) 아래 깊이 가라 앉혀 두고 있다.
배형국(形局)은 우물을 파지 않는다.
평양의 경우 옛적에 우물을 팠더니 불이 많이 나서 도로 우물을 메워 없애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또 배 바닥을 구멍 내는 결과가 되어서 홍수에 침수 될 것을 두려워했다.
우리나라에 대표적 배 형국은 평양, 청주, 무주, 공주 등이 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배 형국은 인물(人物)과 재물(財物)을 만재(滿載)하면 출항(出航)하려는 기운(氣運)이 있어 이것을 진압(鎭壓)하려면 키, 돛대, 닻, 다리 등을 구비 하거나 비보풍수(裨補風水)에 의하여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어 놓아야 길(吉)하다.
배 형국은 읍기(邑基)로 하면 읍(邑)의 번창(繁昌)은 의심 할 바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성군과 군민의 영원한 안녕과 발전을 기원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