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아 찾아 떠나는 백두대간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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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아 찾아 떠나는 백두대간 종주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1.2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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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대
기초훈련기간 중 백두대간 진부령에서 종주대원들의 기념촬영.

백두대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백두대간 종주를 꿈꾸기 마련이다. 때문에 새롭게 도전하며 시작하는 이들이 많지만, 성공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현실이다. 그것은 백두대간 종주가 그 누구와의 싸움이 아닌,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자 한계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홍성에도 이 길고 험난한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 바로 ‘홍성어울림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이하 백두대간 종주대)’가 그 주인공이다. 백두대간 종주대는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지역을 제외한 강원도 고성군 향로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1300㎞를 종주할 계획이다.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은 왜 이처럼 길고도 어렵고 험난한 싸움을 시작했을까?  

◇고달픈 삶 속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다 

“우리네 인생과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어렵습니다. 그동안 어렵게 살아온 세월 속에서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기 위해 마음과 뜻을 모아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영만 대장을 비롯한 종주대원들의 말이다. 백두대간은 흔히 마루금, 하늘금, 용마름, 호랑이 등줄 기 등으로 표현한다. 백두대간 종주대는 한반도 1대간 13정맥 구간 중 1대간 9정맥 종주를 목표로 삼고 지난 2013년 12월경 사전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9정맥 중 1정맥 구간인 한남금북정맥 156km 구간(속리산 천황봉~안성 칠현산)을 택해 2014년 1월 26일부터 2015년 5월 3일까지 기초체력훈련을 마쳤다. 그 뒤로 한남금북정맥 종주팀이 주축이 돼, 홍성군등산협회를 통해 군민들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했고 현재의 백두대간 종주팀을 꾸리게 된 것이다. 대원들은 종주대 이름을 ‘홍성어울림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로 정하고, 대원들을 각각 호를 정해 동지라 부르고 있다.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

백두대간이란 백두산(2750m)에서 시작해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로만 지리산(1915m)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말한다. 백두는 백두산의 ‘백’자와 지리산의 옛 이름인 두류산의 ‘두’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고 대간은 큰 산줄기를 말한다. 즉 백두대간은 우리 땅의 골간을 이루는 한반도의 등뼈이며, 이는 우리 땅 전체가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뜻한다. 한반도의 뼈대인 백두대간은 그 굵은 산줄기와 산이 낳은 물줄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신라는 백두대간의 첫 고개인 하늘재(계립령)를 뚫었기에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고, 신립 장군은 천혜의 요새인 새재를 포기했기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또 문경이 도자기로 유명한 것은 남한강과 낙동강 수계, 영남대로의 육로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두대간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그 맥을 이어왔다.

◇홍성어울림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 구성현황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은 3~40대 젊은 산악인들이 주축이 돼 유쾌한 분위기로 산행을 이어갈 계획이다. 홍성, 예산 등 주변지역에서 백두대간 종주에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손봉환 부대장(010-8863-1303)에게 문의하면 된다.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은 다음과 같다.

△김영만 종주대 총대장 △손봉환 종주대 부대장 △최영만 산행대장 △안자영 총무 △모종민 홍보 △이은수 △ 방경희 △복혜옥 △이은태 △이혜숙 △조장원 △김영환 △황선민 △서종술 △이춘화 △김석환 △공인택 △김경섭 △강명호 △김기하 △이석기 △김기철 △권일섭 △이풍규 △박용걸 △서행준 △김영빈

                                                                            

<산행일지> - 김영환 대원(광천읍)

백두대간 시작이다!

김영환 대원(광천읍).

아~ 백두대간. 남북의 큰 산 하나로 잇고 잇는 1625km, 실제 걷는 산행거리 2000km. 언제부터 인지 그 이름만으로도 매혹 당하기에 충분했던 백두대간. 그 시작은 약 10년 전 금연을 하면서 시작됐다. 하루에 담배를 두 세 갑씩 피우던 나. 어떤 큰 잘못으로 인해 20년이 넘게 피워오던 담배를 끊고, 아내와 금연을 약속하게 됐다. 정말 힘들었다. 금단현상이 너무도 심해 때로는 폭력적으로, 또 때로는 온 몸이 너무 가려워서 벅벅 긁다보면 열 손가락 손톱에 피가 흥건히 고인 적도 있었다.

더욱 힘들었던 건 식탐.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데 항상 간식이 옆에 있어야 되고 심지어 어린 꼬마들이 과자를 물고 다니면 돈 주고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난 그야말로 인간 돼지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뚱뚱해져 있었다. 키 164에 몸무게 85kg, 허리둘레는 36인치가 안 맞아서 숨쉬기가 어려운 지경이 됐다. 거기에 고혈압까지. 심지어 발톱을 내 스스로 깎 기가 어려워 와이프에게 내놨다가 6박7일을 싸우게 됐다. 그때는 많이 서운했다. 아내가 돼서 남편 발톱도 못 깎아주나 싶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발톱을 깎아주냐며 몸 관리 좀 하라는 와이프의 말에 충격을 받게 됐다.

그 뒤로 나는 광천 어르신들이 다니는 동네 뒷산인 꿀꿀이봉을 다니기 시작했다. 왕복 3km정도 되는 거리가 처음에는 왜 그리 멀고도 험하게 느껴지던지, 열 걸음 가서 쉬고, 또 몇 걸음 못가서 쉬고, 하지만 주저앉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 년 여를 거의 매일 다니다보니 꿀꿀이봉 정상에 서면 보이는 광천 오서산을 보게 됐다. 오서산으로 한 번 두 번 발길을 돌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해발 791m의 오서산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몸도 많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다시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리나라의 명산을 찾아 다니는 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약 6년 여간 염치도 없이 지역에 있는 많은 산악회를 통해 전국 명산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젠 민족의 등줄기, 한반도의 대동맥, 백두대간 종주가 불혹의 나이 절벽에 서있는 나에게 인생의 큰 숙제가 됐다. 홍성 어울림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종주팀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나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종주팀인양 설렘에 기뻤다. 그 설렘은 곧바로 첫 구간인 진부령부터 미시령까지의 산행에서 느꼈다. 지금까지 해오던 명산 산행과는 거리가 많이 느껴졌고 한 구간, 또 한 구간을 마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 그리고 다음 구간에 대한 또 다른 설렘과 기다림. 어쩌면 지 금까지 살아온 나의 시간들과 많이 닮은 것 같은 백두대간. 수도 없이 많은 봉우리들을 넘고 또 넘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을 헤쳐 나아가야하고, 때로는 가야할 길을 잃고 마냥 헤매기도 하지만 이 또한 백두대간 산행에서 겪어야 되는 필연적인 산행이 아닌가 싶었다.

아직 갈 길이 머나먼 백두대간 산행이지만 항상 지금까지 그래왔듯 홍성어울림 산악회 백두대간 종주대 전우들과 안전산행을 최우선으로 오늘도 진정한 산꾼으로 한발 다가서는 행복한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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