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속에서 ‘토굴새우젓’ 보물 되찾은 상옹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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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속에서 ‘토굴새우젓’ 보물 되찾은 상옹마을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3.17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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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1>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광천읍 옹암리 상옹마을

오랜 어촌 번성기 누렸으나 포구 사라지며 쇠락해
토굴새우젓 생산·판매 성공하면서 재기 발판 마련
전국서 관광객 찾아오는 명소로 발돋움 하고 싶어

 

▲ 광천읍 옹암리 상옹마을에 위치한 토굴새우젓 가게들의 모습.

◇상옹마을 현황
광천읍의 남서쪽 끝에 위치해 보령시와 경계를 이루는 옹암리는 본래 보령군 청소면 지역으로 독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독바위 또는 옹암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청촌·양촌·음촌·석포리 일부를 병합해 옹암리라 해 홍성군 광천면(읍)에 편입됐다. 5개 행정리(상옹·하옹·양촌·석포·노동) 중 상옹과 하옹은 별도의 행정리로 분리되었다가 2001년부터 한 마을로 운영됐으며, 현재는 다시 상옹과 하옹 별도의 마을로 운영되고 있다.
상옹과 하옹은 바다가 내륙 깊이 들어온 옹암포를 중심으로 형성된 포구마을로 장시와 상업이 번성했다. 과거에는 소암리까지 선박이 왕래했다는 전설이 있는 것으로 봐 늦어도 1800년대 이전에는 상옹과 하옹 일대가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 뒷산인 당산의 당산제가 뱃사람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였던 것도 오랜 세월 어촌 마을임을 보여준다.
옹암포의 전성기는 1900년대 초반부터 1960년대까지였으나, 1960년대 이후 포구기능이 사라지면서 바닷물이 들어오던 자리를 매립한 자리에 건물이 들어섰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상업과 주거기능이 합쳐진 점포병용 주택이 늘어서 있다.
포구가 폐쇄돼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마을 뒷산인 당산리 폐광 시설을 활용한 토굴 새우젓의 생산과 판매가 성공을 거두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광천읍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 토굴에서 숙성 중인 광천토굴새우젓.

◇상옹마을(옹암포)의 역사
옹암포가 처음 생긴 시기는 18세기 말로 추정되고 있다. 이전까지 광천읍의 동쪽인 소암리까지도 배가 왕래했지만 점차 해수면의 높이가 낮아져 19세기 초에는 옹암포가 광천의 포구로 기능하게 됐다. 옹암포는 광천장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고, 1931년 장항선 개통으로 교통의 요충지가 되며 더욱 번성했다. 그러나 옹암포의 전성기는 1970년대까지 이어지고 점차 시들해졌다. 옹암포에 토사가 쌓이며 선박의 이동이 불가능해지며 1960년대에는 포구가 보령 의식마을로 이동했고, 1970년대에는 오천까지 옮겨가게 됐다.
포구 주변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온갖 장사치가 몰려들었다. 배를 타고 온 섬 사람들을 상대로 음식점과 여관, 주막이 성행했는데 1970년대 중반에 부두가 오천으로 옮겨간 후에도 여전히 상업지구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류의 집산지였던 옹암에는 운수업도 성행해 1950~60년대에 뱃짐을 부리는 노동조합원을 비롯해 화물차와 리어카, 지게 등을 이용한 운반업이 성황을 이뤘다. 특히 장날이면 봇짐장사와 행상들이 몰려와 싼값에 물건을 사들여 다른 지역으로 가져다 팔았는데 일찍이 부보상들의 원홍주등육군상무우사의 임소가 옹암에 있었고, 부보상들의 임시 숙소 겸 치료소 역할을 했던 홍도원이 가까운 보령에 있었다. 옹암포구가 번성하던 시기에는 흥타령에도 ‘광천 독배로 시집 못 간 요내 팔자야’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
옹암포의 포구 기능이 사라지게 된 것은 보령방조제 때문으로 농업기반공사가 방제를 쌓은 후 토사가 밀려들어 선박의 출입이 차단됐다. 상업시설로 북적이던 상옹 하옹에서도 장사꾼들이 마을을 떠나며 옹암리는 경제적으로 쇠퇴하게 됐다. 남아있는 주민들은 일용노동자가 되거나 남의 논밭을 소작하거나 외지 상인들의 새우젓을 토굴에 보관해주는 보관업에 종사하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 광천토굴새우젓·광천김 대축제 현장.

◇토굴새우젓의 역사
1960년대 노동마을에 살았던 윤병원 씨가 팔고 남은 새우젓을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폐광 속에 보관했다가 한여름을 지나도 생생함을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이 토굴 새우젓의 시작이다. 이와 같은 폐광이 당산 아래 수십 개가 있었기에 초기에는 새우젓을 보관하는 보관업이 성행했다. 그러다 점차 주민이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광천읍 토굴새우젓을 특화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안게 됐다.
주민 대부분이 새우젓의 생산과 판매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새우젓이 전국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광천토굴새우젓은 연간 1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며 광천읍 경제에도 크게 기여했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전국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기차를 타고 광천역을 이용해 광천장을 찾는 인파로 북적이며 평소에도 온라인 주문 등을 이용해 구입하는 소비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봉수 이장의 마을 소개
상옹마을은 대동회·청년회·부녀회·노인회 등의 마을 조직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보다는 상업에 종사하고 있어 새우젓 상인들의 상가번영회 조직이 활성화 돼 있기도 합니다.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상업이 발달한 마을로, 포구가 있던 시절에는 안면도를 비롯한 섬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던 곳이었습니다. 현재는 보령지구 개발로 인해 바닷물이 끊겨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토굴새우젓을 통해 전국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습니다. 앞으로는 새우젓과 함께 광천김, 오서산, 남당항 등 홍성의 관광지와 특산품을 활용한 관광자원 개발이 더 활발히 이뤄지길 바랍니다.
특히 매년 개최되는 새우젓축제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마을이 명품 토굴새우젓을 생산·판매하는 곳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특히 최근 상옹과 하옹이 다시 분리되면서 저희 마을에도 회관을 건립 추진 중이며, 버스정류장 설치 등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홍성군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통해 보다 발전하는 우리 마을을 만들어주시길 당부합니다.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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