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선사 문학혼 뿌리내린 고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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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 문학혼 뿌리내린 고향마을
  • 서용덕 기자
  • 승인 2016.04.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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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3>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결성면 성곡리 (만해한용운 동화마을)

땅 넓고 물·공기 맑아 살기좋은 마을
만해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고향 땅
화목하고 건강한 장수마을로도 유명

 

▲ 만해생가지 진입로에서 바라본 마을전경

박철마을은 결성면 성곡리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35가구 80여명이 사는 마을로 결성면 25개 자연마을 중 가장 면적이 넓은 곳이다. 외지인들로부터 땅이 넓고 물과 공기가 좋아 귀농귀촌하기 좋은 마을이라고 불린다. 실제 35가구 중 10가구는 귀농귀촌 가구다.

이대균(64) 이장은 “특산물도 없고 다른 마을과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축사가 적고 오염되지 않은 지역이라 물과 공기가 좋고 기존 주민과 귀농귀촌 등으로 전입한 주민들 간 사이가 좋아 살기 좋은마을”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원래 주민과 이주민 가리지 않고 서로 대화를 많이 하고 가진 것을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화목해 졌다”며 “마을에 정착한 분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고 있어서 화목하게 마을일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에는 마을지명에 대한 유래가 몇 가지 전해지고 있는데 절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고려시대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주지의 성이 박 씨라 ‘박절’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해 ‘박철’이 됐나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마을에 있는 와요지에서 만든 기와를 사용해 불사한 절이 있어 그렇다는 유래, 마지막으로 철과 금이 뒤섞여 나오는 마을이라 해서 ‘박철마을’이 됐다는 설 등이 전해진다.
실제 문화재 지표조사 과정에서 와요지와 절터 등이 확인 됐으며, 주민들은 과거 밭을 개간할 때 기와조각 등의 유물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박철마을은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사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한용운 선사는 1879년 음력 7월 12일 이곳 박철마을에서 이양공 한명진의 19세 손인 추훈부도사 응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 홍성읍으로 이사를 했는데 어려서부터 천재니, 천동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성향교 전교를 지낸 이익화(87) 노인회고문은 “한용운 선사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 신동으로 이름났었다고 옛 어르신들이 말씀하곤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한용운 선사도 어린 시절 유학을 배웠고 과거 결성향교에서 석전대제를 모실 때는 광천, 구항, 은하, 서부 등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왔으나 요즘 젊은 세대는 유학이나 우리민족의 미풍양속 등에 대한 관심이 줄어 아쉽다”고 말했다.
 

마을북쪽에는 한용운 선생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생가가 남아있었으나 광복 후에는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옛 모습을 고증 받아 지난 1991년 생가를 복원했다. 그 주위로 만해문학체험관과 사당, 민족시인 시비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매년 생가지에 위치한 사당에서는 한용운 선사의 탄신을 축하하는 다례가 열리는데 과거에는 마을에서 준비하고 참여했으나 최근에는 군에서 주관해 다례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애와 업적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박철마을에 위치한 만해 생가지에서 홍성군과 서울 성북구와 서대문구, 강원 속초시와 인제군 등 5개 지자체장고 관계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 지방정부행정협의회’ 창립총회 및 출범식을 개최하고 선사의 생애와 업적을 선양하기로 했다. 창립총회에 참여한 각 시군 관계자 등은 오는 2019년 기미년 3.1운동 100주년과 만해 탄생 140주년을 앞두고 있어 만해 한용운 선사의 발자취를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박철마을 주민들도 만해 한용운 선사의 선양을 위한 사업에 관심을 갖고 적극 협력하겠다는 반응이다.
 

▲ 박철마을은 만해 한용운 선사가 출생한 마을로 복원된 생가와 문학체험관, 사당 등이 조성돼 있다

박철마을은 건강하게 오래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아 장수마을로도 유명하다. 올해 102세인 어르신이 계시고 90대인 어르신은 평소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는 어르신들이 많다. 천이 고향인 민경찬(74) 노인회장은 “마을회관을 365일 문 닫는 일 없이 운영하고 있어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자체 기금을 조성해 매일 회관에 모여 식사 할 때 반찬  값으로 쓰고 있으며, 노인회 회원이 생일을 맞으면 다 함께 축하하고 읍내로 목욕하러 가는 등 어느 마을보다 잘 단합해 활기차고 즐겁게 살고 있다”고 마을주민들의 건강의 비결을 소개했다.

살뜰하게 마을일을 챙기는 박미자(56) 부녀회장은 올해로 11년차를 맞은 귀농인이다.
마을일과 유기농업을 하며 틈틈이 웃음치료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직접 기른 유기농·축산물과 고추장 된장 등 가공식품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박 부녀회장은 “마을주민 대부분이 관행농업을 하고 있어 아직은 어렵지만 차후에는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도 함께 SNS 등 온라인을 통해 판매해 마을주민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서용덕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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