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교육과 이건엽 선생님의 100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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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교육과 이건엽 선생님의 100년 삶
  • 홍주일보
  • 승인 2016.04.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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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백세시대(百歲時代)다.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지금의 70~80대 사람들이 어렸을 때에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였지만 어느새 현실이 된 것이다. 특히 의료기술의 발달과 윤택한 식생활 등의 덕분에 인간의 수명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평균수명은 80세 정도지만 2050년경에는 인류의 평균수명이 120세까지 늘어날 전망이라는 연구논문도 있다. 고령사회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이제 ‘노인(老人)’이라는 말에는 어느덧 사회·경제적 ‘부담’이라는 은유(隱喩)가 덧씌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역설(逆說)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고 살아나 헐벗고 가난했던, 못 배우고 무지했던 최빈국(最貧國)을 이렇게 키운 대한민국 근대화의 성장동력이며, 상징인 이들이 이제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존재로 여겨져서야 되겠는가. 고령층은 이대로 우리사회의 주역에서 점점 물러나야만 하는 것일까. 활기차고, 당당하고, 생산적인 노년의 삶은 불가능한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책상에 놓인 5월 7일 정오, 갈산중에서 계획된 ‘운암(雲岩) 이건엽(李健燁) 선생님 백수연(白壽宴)’ 초청장이 순간 눈을 사로잡았다. 요즘 세상에는 참으로 보기 드문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겹겹이 경험에서 묻어나는 달필로 또박또박 쓰인 초청장의 겉봉주소의 글씨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수많은 초청장과 안내장을 받아보았어도 말이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야 보통 인쇄를 한다고 해도 받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은 대부분 컴퓨터글씨가 상식인 세상에 보기 좋게 상식을 깨고 있었다. 받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까지 100세 삶의 여유와 품위가 그대로 묻어나며 세련되고 날렵한 정성이 담긴, 세월의 더께와 무게가 함께 묻은 듯 붓글씨체로 수려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문화, 적당히 편하게 주의에 물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별무감정일테지만, 아는 사람들은 준비위원회의 정성과 배려가 함께 묻어나는 성의와 감사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을 만나 100년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여러분의 배려에 100년을 건강하게 누렸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으로 100년이 행복으로 넘쳤습니다. 100년의 감사를 나눕니다. 100년의 축복을 받으십시오!’라고 ‘100년의 감사’를 적고 있었다.

요즈음 지역에서는 기대와 하소연 섞여 유행하는 말이 있다. “지역에 어른도 없고, 논객도 없어서~”라는 안타까움과 허전함으로 가득한 세상, 이건엽 선생님은 진정 지역의 어르신이고, 교육문화발전과 지역발전의 주춧돌이며 산증인으로 정신적 버팀목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물질적 풍요는 삶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갈산과 홍성교육, 이건엽 선생님의 100년 삶은 또 다른 100년을 향한 여유와 느림의 미학일터이니까.                            

(홍주신문 2월 4일치, 418호 1면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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