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8>
상태바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8>
  • 한지윤
  • 승인 2016.05.04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소영이, 어서 타. 아빠와 엄마가 있다고? 거짓말이 서투르군, 응!”
소영이는 길가 플라타너스 가로수에 등을 기댄 채로 꼼짝 못하고서 있었다.
“엄마가 걱정하실 것 같으니까 이대로 가게 놔 주세요. 우리 집은 엄한 가정이예요.”
“집에까지 바래다 주지, 오늘은, 엄마를 걱정시켜서는 안 될 테니까……”
“사실 난 여자를 만나게 되면 내 허락없이는 절대 그냥 보내지를 않아.”
소영이는 별수 없이 묵묵히 그의 차에 올라탔다. 남자 녀석이 덤벼 봐야 그까짓 것 싶은 생각이었다. 일격이면 끝장낼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해버렸다.
“엄마의 일까지 걱정해주시니 고마워요……”
“이번만은……그러나 만날 때는 엄마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테니까.”
“이제 더 이상 만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 집 앞에서 잠복대기라도 하지 않는 한은……”
집 근처에 도착해서 헤어질 때에, 케이블은 의외로 얌전했다. 그는 다만 소영이의 오른 손을 정중히 잡고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했을 뿐이다.
소영이가 엄마를 들먹이며 사내 녀석을 견제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가문있는 집의 딸로서 고지식한 외곬수파 은행원인 아버지한테 시집을 왔던 것이다. 엄마는 한국예술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하였으나 무대에 서는 것을 부모들이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가정으로 정착해 틀어박혀 버린 것이다. 엄마는 훌륭한 성악가가 되어 유명해 지는 것보다도 지금은 세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것에 만족하고 있는 듯 햇다. 그러나 엄마는 자기 타락이나 방종같은 것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소영이가 남자친구를 만드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노한것은 소영이의 남동생인 규형이가 공연히 엉뚱한 글을 써서 누나에게 보낸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보이 헌팅……누나! 오늘은 어디까지 갔는데……”
어느날 소영이의 엄마는 밤 12시가 다 되도록 귀가하지 않고 있는 딸의 책상위에 이 글귀가 익살스럽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만 열화같이 화가 나 버렸다.
“남자에게 유혹을 받고 곧 호기심이 발동해 따라간다는 여태까지 우리 가풍에는 한번도 없었던 일이에요……”
라고 늦게 돌아오는 소영이에게 엄마는 장장 한시간 이상이나 훈계를 했던 것이다. 엄마가 꾸짖는 말의 의미는 잘 알고는 있었지만 어째서 남자와 만나 이야기를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면 인생은 우중충한 잿빛이 아닌가.
소영이의 집에는 80세가 된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엄마가 그런 훈계를 시작하면 할아버지는 반사적으로 천식증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콜록콜록……콜록……기침을 해댔으므로 그 기침 소리에 눌려 엄마의 설교는 마침내 허궁에 뜨고 만다. 그런 탓에, 할아버지는 언제나
“어멈 말대로 해라.” 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곤 한다.
할아버지는 소영이를 이해해 주는 편인데 이런 경우, 소영이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가 비겁하다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어머니한테 걱정을 끼쳐서는 안 돼요. 어머니는 살이 찐 편이라 심장 주위에까지 지방질이 붙어 있어 자칫 걱정을 하게 되면 건강에 해롭지.”
소영이가 어머니에게 그다지 일상 생활의 모험담을 털어 놓지 않게 된 것은, 이 할아버지의 말씀의 진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이 귀여운 손녀에게 그 대신 할아버지의 특기인 합기도의 호신술을 가르쳐주셨다.
상대를 집어던지는 비법을 가르쳐주면서 할아버지는 소영이가 상대방의 공격력을 잘 역이용하여 고양이처럼 사뿐히 내동댕이치는 기술이 몸에 익숙하게 숙련되어가자 손녀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제부터 그만하면 됐어. 어디에서 무슨 일이 생겨나도 상대를 잘 처치할 거다. 소영아, 안그러냐?”
무술을 몸에 익히자 소영이는 얼마쯤 무언가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약하다는 게 자랑거리였던 여자의 존재성에서 얼마간 탈피해 있다는 것이 스스로 삶에 대한 자신감을 확고히 하게 된 것이었다.
소영이는 기분이 들떠 벤츠의 사나이한테 경계심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소영이는 그 사내의 벤츠의 차량번호가 서울 2푸 9238번인 것을 기억해두었고 시간나는대로 그 번호의 소유자를 한번 조사해 볼 생각을 해 두었다.
일요일 오후, 소영이는 요양소에 입원해있는 친구를 문병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과일을 사들고 성북역에서 전철을 타려고 역쪽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문제의 노란색 벤츠가 슬며시 다가와 소영이 앞에 정차하는 것이 아닌가. 파이프 담배의 냄새도, 그 미소도 지난 번과 마찬가지였다.
“자, 들켰지. 이런 걸 또 우연이라고 하지?”
“친구 문병하는 길이예요.”
“내 모셔다 드릴테니, 타시지!”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소영이에게 집중되며 흘금흘금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교통순경이 딱지 떼러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소영이는 당황하여 그만 케이블의 차에 올라타버렸다. 벤츠는 급히 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영이는 어딘가 쯤에 가서 내려 달라고 해야지 하는 가벼운 생각을 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