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화합하고 배려하는 석교(돌다리)마을
상태바
서로가 화합하고 배려하는 석교(돌다리)마을
  • 장나현 기자
  • 승인 2016.06.12 2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13>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홍북면 석택리 석교마을

고사했다가 살아난 수호수가 마을을 지킨다

사회 각지에 촉망받는 인물들을 배출한 마을

평온하고 서로 배려하며 끈끈한 정을 나누다

▲ 석교마을 전경.

 

■ 마을 개관

마을에 돌다리가 있었다고해서 석교마을이라는 지명이 전해진다. 큰말이나 작은말에서 서낭댕이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돌다리가 마을에 있었다. 넓은 바위를 두 개 올려 놓고 돌판을 깔았던 형태의 이 돌다리는 1970년대 경지정리를 하면서 아쉽게도 땅 속에 묻히게 됐다. 마을사람들은 돌다리를 건너다니고 도랑에서 놀던 추억 때문에 돌다리가 사라진 점을 무척 서운해 했다.


마을의 명물이었던 돌다리를 젊은 친구들은 알지를 못하고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속에만 남아있어 마을 주민들은 땅 속에 묻힌 돌다리를 찾을 수 있다면 복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석택리 일대는 낮은 야산지대로 넓은 농지가 형성돼 있고 나지막한 골짜기마다 집들이 모여 있어 큰말, 작은말, 암탉골, 참새골의 재미있는 이름이 있다. 암탉골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으로 밖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지어졌고 참새골은 매가 참새를 좋아하니까 매를 달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돌다리가 있었던 자리.

마을에 반석교회가 들어선 꼭대기는 삼성댕이라고 부른다. 절이 있었다고 해서 삼성댕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전설과 산 끝에 집이 세 채 있어서 삼성댕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기와 파편이 발견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교회가 세워지면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망국재 산등성이에 2m 정도

의 미륵이 있었다. 그 모양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대략 사람의 모양이며 무늬는 없었다고 한다. 한 때 미륵이 부정탄다는 소문이 돌아 길가로 옮겨 졌고 도로공사를 하면서 땅에 묻히게 됐다.

 

■ 4백년 전통의 한산 이씨

돌다리에 오랜기간 세거했던 성씨는 한산이씨이다. 1600년대 이덕영이 천안에서 석교마을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입향조인 이덕영은 이담의 아들로 밀양박씨와 혼인했고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그후 자손들은 천안과 홍북면 석교마을을 오가며 묘소를 조성했으며 지금도 마을에는 한산이씨가 살고 있다.


이덕영의 아들 이학연은 파평윤씨 윤기택의 딸과 혼인하였고 사마시에 급제한 후 교관을 지냈다. 이덕영이 밀양박씨와 혼인한 후 석교마을을 장지로 정했으나 손자 맹직이 부인 밀양박씨의 묘석만 석교마을에 둔 것을 보면 한산이씨 입향 전 석교마을에 밀양박씨가 터를 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산이씨 외에 경주최씨가 11대째 살고 있다고 전해지며 의령남씨, 밀양박씨 등 여러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 고사했다가 살아난 정자나무

돌다리 작은말에 있는 정자나무는 400년 이상 된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10년 전 남아있는 정자나무 사진을 보면 나무기둥만 있고 잎사귀가 없이 고사했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이곳에 길이 생겨 정자나무 바로 앞을 시멘트로 포장해서 나무가 죽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지금의 정자나무는 푸르

고 무성한 나뭇잎을 자랑하며 마을의 수호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의 할아버지가 어릴 때도 정자나무 크기는 지금 그대로 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정자나무 밑에 모여 무더운 여름도 나고 소통을 하곤 했다. 김 매고 더위에 지칠 때면 정자나무 밑에 밀방석을 깔고 앉아 더위도 식히고 푸짐한 음식을 나누던 의미있는 장소다.

▲ 고사했다가 살아난 정자나무.

■ 석교마을의 인물들

석교마을 사람들은 평온하고 화합 잘하는 마을에 수 많은 인물들이 나와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이태준 노인회장은 구항면장, 서부면장, 홍동면장, 홍북면장을 지내고 군의원 2선을 했다. 현재는 홍주향교 전교를 맡고 있다. 이 노인회장은 지면에 실리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말을 아끼며 마을사람을의 지지와 응원덕분에 많은 일을 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다른 인물로는 이금원 전 홍북면장과 이시준 경찰서장, 오인섭 행정과장, 오준석 의회 사무과장, 정의한 장군, 박수용 파일럿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석교마을 인물들이 성품이 바르고 배려심이 깊으며 정이 많다고 말했다.

 

▲ 마을의 샘터.

 

■ 주민들의 마을소개 

김승수 이장

우리 마을은 53가구 100여명이 살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예전에 우리 마을은 100호까지 사람들이 많이 살았기도 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시원한 여름을 보내기도 했고 돌다리를 건너며 놀기도 했던 마을입니다. 지금은 마을에 젊은 층이 많이 빠져나가 60대 미만이 몇 안 되는 마을이지만 4명의 초등학생이 있어 아직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마을입니다.


마을의 최장수 어르신은 92세로 정정하시고 부녀회원들은 매일 15명 정도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며 혼자 사시는 분들도 끼니걱정 없이 식사를 하십니다. 또한 마을 집집마다 꽃을 심어 경관이 아름답고 마을 사람들끼리 화합을 잘해 크게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랑 가득한 마을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마을은 인물들이 많아 사회 구성원으로서 톡톡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볼 때 마을 사람들 모두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 합니다. 

 

▲ 마을에 조성된 꽃길.

이태준 노인회장 

석교마을 주민들은 상부상조하며 서로 내 일같이 도우면서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정이 끈끈해 크고 작은 잔치나 힘든 일이 있을 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줍니다. 마을이 도로변이 아니라 안쪽에 위치해 고요한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전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을 정도로 평온한 지역입니다.


정월대보름날과 칠석 날 부녀회에서 주관해 정성스러운 점심 식사 대접도 하고 있지요. 특별한 갈등없이 서로 베풀며 살고있으니 최고의 덕목이죠.

▲ 석교마을회관.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