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자원 활용한 ‘지붕 없는 박물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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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자원 활용한 ‘지붕 없는 박물관’ 마을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6.17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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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12>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장곡면 천태1리마을

‘천년노송’ 소나무와 정 나누는 오두막이 반기는 곳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 가득해
마을 뒤 천태산으로 유독 힘들었던 한국전쟁의 기억
주변 환경 중심 ‘지붕 없는 박물관’을 만들어 나간다

마을 전경.

◇지붕 없는 박물관 마을 표방
천태1리는 ‘지붕 없는 박물관’을 표방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마을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역사·문화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듯 마을회관 앞에는 일명 ‘천년노송’이라 불리는 웅장한 소나무가 자리를 잡아 주민은 물론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또한 ‘팔병사묘자리’라고 불리는 만궁암도 천태리 일대에서는 아주 유명한 명당자리다. 이름 그대로 ‘팔병사(八兵使)가 나는 자리’라는 뜻으로 이 곳에 묏자리를 쓰면 그 집안에서 8대까지 병사가 배출될 정도로 집안이 번창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천년노송.

이곳은 함양 박씨 며느리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기도 하다. 신월리에 살던 함양 박씨네 여자가 함평 이씨인 남자가 사는 천태리마을로 시집을 오게 됐는데, 남편이 죽게 되면서 부인은 묏자리를 알아보게 됐다. 어느 날 중이 지나가면서 현재의 만궁암 부근을 가리키며 “박씨네가 묏자리를 이곳에 쓰면 9대 정승자리고, 이씨네가 이곳에 묏자리를 쓰면 8대 정승자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박씨부인은 그곳에 남편을 묻고 싶어 친정인 박씨네에서 사용하려던 묏자리에 물을 넣어 박씨네 상주가 묏자리를 쓰지 못하게 됐고, 부인의 소원대로 남편의 시신을 만궁암에 묻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후 이씨네 집안에서는 8대까지 큰 인물이 나왔다고 한다.
마을에 위치한 고개로 바리처럼 생겼다는 의미로 붙여진 ‘바리미고개’는 마치 용의 머리를 닮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바리미고개라는 지명보다 왕고개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한 지질학자가 마을을 돌아보면서 왕고개의 맥을 끊지 않으면 이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에 일본사람들은 큰 인물의 탄생을 막기 위해 용의 목을 잘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불룩 튀어 나와있던 산허리를 끊어 버리고 산 안쪽으로 길을 다시 만들어 용의 머리쪽을 잘라버렸다. 이후 도로공사를 하기 위해 바리미고개 주변의 땅을 팠는데, 끊어버린 도로 부근 흙에 빨간 피가 섞인 것을 본 주민들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바리미고개는 아직도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전설과 역사를 가진 천태1리 마을은 ‘지붕 없는 박물관’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마을회관.

◇마을 개관과 특징
천태1리는 홍성군 장곡면과 청양군 비봉면의 경계에 위치한 마을로 동쪽으로는 비봉면 강정리, 서쪽으로는 장곡면 산성2리, 남쪽으로는 비봉면 양사리, 북쪽으로는 장곡면 행정2리와 맞닿아 있는 위 아래로 길게 펼쳐진 마을이다.
천태리는 백제 때는 사시량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결성군의 영현인 신량현에 속했다. 고려 초엽에는 여양현, 조선 초엽에는 홍주군에 속했고 조선 말엽에는 유곡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곡리, 발이리, 하가리, 수문리 일부와 얼방면 상식리, 강촌의 각 일부와 청양군 서상면의 하강리 일부, 대흥군 일남면의 화암리 일부를 병합해 천태리라 해 장곡면에 편입됐다. 천태 1리는 원래 송산, 양곡, 바리미 3개반으로 구성돼 있는 마을이었으나, 1980년대 말 송산마을 거주민이 줄어들며 송산과 양곡마을을 합쳐 1개 반으로 구성, 현재는 전체 2개반으로 구성돼 운영돼 오고 있다. 천태 1리는 마을 뒤편으로는 천태산이 마을을 감싸고, 마을 앞으로는 무한천이 흐르는 전형적 배산임수의 살기 좋은 마을이다.
‘천태’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 뒷산의 이름을 그대로 따 천태리가 됐다. 고운 최치원이 천태마을을 지나가다가 마을의 뒷산을 보고 중국에 있는 천태산과 닮았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마을 뒷산을 천태산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또한 천태산에 있는 천태산성은 주류성과 임존성 가운데 위치해 성과 성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산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승.

◇천태1리마을의 한국전쟁
마을 뒷산인 천태산 탓에 천태1리의 한국전쟁은 유독 힘들었다고 주민들은 회상했다. 지나가는 소리가 쌕쌕거린다고 해 일명 ‘쌕쌕이’라고 기억되는 호주산 비행기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머리 위로 지나갔고, 비행기만 보면 폭탄이 떨어지는 것 같이 무서워 주민들은 논두렁에 머리를 박고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고 한다.
또 산세가 험한 천태산에 위치한 천태사라는 절에 북한군이 숨어 있다는 제보 탓에 한밤중 폭탄이 투하됐는데, 다행히 산중에 폭탄이 떨어져 천태사와 마을에는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깊은 산이었던 천태사에는 실제로 많은 북한군들이 숨어 지냈다고 한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마을길을 걷는 북한군을 본 주민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면서 마을에 거주하던 좌익세력들이 경찰에 의해 총살당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토벌경찰이 북한군에게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산성리 경찰지서에 갇혀 있던 좌익들은 전부 죽임을 당하게 됐다고 한다.

◇조홍식 이장의 마을소개
조홍식 이장은 천태1리 마을을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마을로 소개했다. 특히 축사가 없어 오염되지 않은 환경과 더불어 은행나무와 소나무 군락이 형성된 아름다운 자연이 천태1리의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천태1리는 인근 행정리와 맞붙은 천태저수지를 비롯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천태1리 마을에서는 논농사와 함께 일부 밭농사를 짓고 있는데, 우렁이 농법을 활용해 유기농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조 이장은 마을의 대소사는 물론 농사에도 앞장 서 주민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노인회에서는 배추 씨를 받는 채종을 통해 수익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희망마을 사업을 통해 3000만원의 지원금을 활용, 마을 제방에 대추나무 500그루를 식재한 바 있다.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인 오두막.

마을회관 앞 주민들의 쉼터인 오두막도 이색적이다. 일반적으로 마을에는 팔각정이 자리한 경우가 많은데 천태1리는 올라가는 계단이 없는 오두막 형태의 나무 쉼터를 조성, 모든 주민이 오가며 들를 수 있는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여름철이면 주민들은 시원한 그늘이 지는 오두막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식사를 함께 하며 정을 나누고 있다. 아직까지도 사람 사는 냄새가 살아있는 천태1리 마을의 풍경이다.

오두막에서 마을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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