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끝없이 펼쳐졌던 그리운 바닷가 사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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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끝없이 펼쳐졌던 그리운 바닷가 사천마을
  •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08.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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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 <25>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갈산면 기산리 사천마을

조금 때 갯벌 4km 드러나 바다의 보고 황금어장
근면 성실해 마을에 노는 사람이 없는 부농 마을
쓰러져 가는 집 사랑의 집짓기로 이웃 사랑 실천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에 제 지내는 마을사람들 

▲ 500년 년 느티나무 아래 모여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

바닷가 마을
갈산면 기산리 사천마을은 너른 갯벌이 펼쳐진 바닷가 마을이었다. 냇가에 모래가 많다하여 사천(沙川)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마을은 바닷가에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조금 때면 서쪽으로 갯벌이 4km 정도 드러났다. 주민들은 잠깐 동안 갯벌에 나가면 바지락, 꼬막 등을 금세 한 양동이 가득 채웠다고 한다. 또한 사천마을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면 그물에 꽃게, 오징어가 줄줄이 걸려 들을 정도로 ‘황금어장’으로 불린 바닷가였다.

이건우 이장은 “감성돔이 한마리만 잡혀도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몰려들었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흔하게 나왔죠”라고 말했다. 마을과 갯벌 사이에는 갈대가 자라났고 물고기의 새끼 번식에 유리한 조건이 되어 풍부한 어장을 형성했다. 마을사람들은 바다의 수산물을 주수입으로 해 자녀들 교육을 시키고 생활했다. 마을에는 염전도 있었다. 높은 염도의 간수를 모아 가마솥에 끓여서 소금을 제조하던 전오제염법의 조생이골 염전 자리는 현재 논이 되어있다. 

바다의 보고였던 사천마을 앞 바다는 1984년 현대건설의 국토확장과 식량 증산을 목적으로 시작된 서산 AB지구 방조제 공사를 끝으로 사라졌다. A지구에 속하는 사천마을의 갯벌은 흙으로 메워 논으로 변했다. 논농사보다 바닷일을 하는 주민들이 많았던 사천마을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는대로 줄줄이 걸려들었던 짠내 가득한 갯벌을 그리워했다. 유영수 노인회장은 “황금어장을 인공으로 만드다는 데 일본에서 그렇게 탄복했다지”라고 전했다. 

▲ 사천마을의 5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

느티나무
윗말의 옛 새마을회관 자리에 느티나무 2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500년 정도 된 수령으로 성인 남성 3명이 팔로 둘러도 모자를 만큼 둘레가 상당하고 5m정도 떨어진 곳의 다른 한 그루는 그보다 조금 작다. 예전 느티나무 사이에 도랑이 흘렀었다. 나무 뿌리가 땅 위로 드러나 있고 도랑이 흙을 쏠리게 해 나무에 좋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주민들은 도랑을 메우고 땅 위로 나온 뿌리를 흙으로 덮었다. 안타깝게도 그 때부터 나무가 죽기 시작했다.

나무의 굵은 뿌리를 흙으로 덮으면 잔뿌리에 영양을 보내야 해서 잎까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성했던 가지는 현재 분재처럼 다듬어진 가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두 나무 둥치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있었는데 지금은 메웠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죽지만 말고 지금처럼 만이라도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느티나무에 얽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이 혹여 느티나무 가지를 꺾기라도 하면 느티나무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감기처럼 시름시름 앓았다. 아랫집 사람은 몸이 아플 때면 된장과 밥을 놓고 나무에 제를 지냈다. 마을의 90대 이상 어르신들이 생생한 이야기를 말해줬다. 제를 지내고 나면 몸이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평상이 놓여 있어 여름철 여자어르신들의 좋은 쉼터가 된다. 기자가 가니 가장 시원한 명당자리를 내어주면서 쉬었다가라고 잡아끈다. 실제로 명당자리에 앉으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 갈산면 사랑의 집짓기.

사랑의 집짓기
사천마을은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 등이 마을에서 일을 진행하고자 했을 때 한사람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합이 잘된다. 지난 6월 유승길 새마을지도자는 마을에 혼자 사는 유성순 할아버지의 쓰러질 것 같은 집을 보고 와서 이 이장에게 할아버지 댁에 가보라면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돕자고 말했다. 집 수리를 생각했던 두 사람은 수리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었을 것으로 보고 ‘그럼 우리가 하나 지을까’로 생각이 모아져 집짓기를 시작했다. 먼저 갈산면에 집짓기 뜻을 전달하니 갈산 면장을 비롯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손길이 왔다. 집 짓기는 이 이장이 건축업에 종사해 틈나는 대로 조금씩 집을 지었다. 총 소요된 870만원의 재료비는 갈산중고등학교, 갈산사랑장학회, 체육진흥회, 갈산면, 복지부 긴급지원 등으로 충당했다. 

할아버지의 집은 마을회관 옆자리에 조립식주택 8평(28㎡)으로 지어졌다. 기존 집이 있었던 땅은 할아버지 땅이 아니었기에 회관 옆에 짓게 됐다. 공유지인 마을회관에 할아버지의 집을 짓는다는 데 반대한 주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무척 좋은 생각이라며 이장의 뜻에 따랐다. 

▲ 사천마을회관.

이장의 마을소개
우리 마을은 56가구 150명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로 농토가 많은 마을입니다. 마을은 골미, 고은미골, 남댕이, 말무골, 윗말, 사루지, 아랫말, 사천골, 섬골, 샘골, 조쟁이라고 불리는 자연 이름이 있지요. 

우리 마을 자랑은 첫째로 단합이 정말 잘되는 마을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이 한 목소리를 내다보니 마을이 잘 돌아가지요. 마을에서 제의를 하면 잘 따라주어 감사하죠. 마을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점심 먹으러 횟집에 가고 노인회에서는 초복 때 주민들을 초청해 삼계탕을 먹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근면 성실해 부농들이 많습니다. 90대 어르신들까지 집안에서 가만히 쉬지 않고 소일거리를 하시지요. 특용작물로는 인삼이 있어 인삼을 키우는 집이 4가구이며 나머지는 주로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지요. 또한 일진산업단지가 옆 마을이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주민들도 많지요. 마을의 운영비는 투명하게 운영하고 이자도 꼬박꼬박 받고 있답니다. 세 번째로 지하수가 풍부합니다. 현재는 우물이 메워졌으나 마을회관 앞에 우물이 있었습니다. 마을로 흐르는 내는 실제 없으나 지하수가 풍부하고 물이 좋아 단합이 잘 되나 봅니다.

이 밖에도 화재가 발생한 적이 없어서 모범마을에 속합니다. 우리 마을은 유 씨 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지요. 유 씨 성이 들어온 지 약 360년정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30% 정도가 유씨 성을 이루고 있지요.

▲ 사천마을의 사우나와 샤워시설.
▲ 마을회관 옆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는 마을주민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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