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재 줄기따라 걷기 좋은 평온한 법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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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재 줄기따라 걷기 좋은 평온한 법수마을
  •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0.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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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 <31>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홍성읍 내법리 법수마을
▲ 법수마을의 매봉재 산책길.

바위가 입을 벌린 모양의 추억 가득한 구메바위
도지정 문화재 '광경사지 석불좌상' 있는 용주사
깊은 효심으로 부모 보살피는 효자마을로 알려져
전성현 총무 재배 황도복숭아 달고 맛있어 인기 

마을 개관
내법리 법수마을은 홍성여고 사거리에서 홍북 방면으로 800m 가서 마을입구에 이르는 길과 대교리의 홍주향교 뒤쪽 길로 가면 매봉재 산줄기의 하단에 형성된 마을로 이르는 길이 있다. 법수마을은 홍성읍과 홍북면의 경계지역으로 홍성읍 끝자락에 위치한다. 용봉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인 용봉천은 홍북면 중계리에서 시작돼 상하리를 지나 내법리를 거쳐 홍성천과 만난 삽교천으로 흐른다.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집들이 띄엄띄엄 위치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지만 마을 입구 좌측에 현광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법수마을에는 재미있는 자연지명들이 있다. 법수마을 서쪽마을은 조선중엽 토성을 쌓고 돼지를 길렀다고 해서 도토성이 또는 도로성이라고 부른다. 도토성이에서 홍북면 내덕리로 가는 모퉁이에 소나무가 우거졌다고 해서 솔모랭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으며 도토성이 남쪽으로 짐대가 있어 짐때울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또한 구매바위 서쪽 골짜기에 효자가 아버지의 묘를 쓰고 3년간 집성하였다해서 집상굴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용봉천 일대에 선사시대 유적들과 용봉사 절터에 돌도끼 등이 발견점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으리라 추정한다. 

▲ 매봉재에 위치한 구메바위 옆 모습(좌)와 앞 모습.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의 구메바위에는 3명 정도 앉을 수 있다.

마을의 볼거리 
법수마을은 홍주성 천년여행길을 따라 교동에서 매봉재를 따라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매봉재 하단에 위치한 구메바위는 법수마을 주민들을 물론 인근 마을주민들에게 유년시절 추억을 선사했던 장소다. 바위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생겨 구멍바위로 불리기도 했으며 바위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아가리바위라고도 불린다. 

바위를 옆에서 보면 알파벳 C자로 생겼으며 정면에서 보면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든 손모양을 하고 있다. 오목한 바위부분에 서너명이 앉을 수 있어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바위에는 ‘재건’이라는 글자가 새겨있다. 새마을운동 즈음해서 살기 좋은 농촌마을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새긴 것으로 보인다. 

이상준(81) 노인회장은 “TV도 없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 스피커를 통해 라디오를 듣고 보리되 한 말을 사용료로 냈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처럼 놀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매봉재와 들판, 용봉천이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겨울철 논에 물을 대 스케이트를 타다가 빠져 옷을 몰래 말리던 추억과 구메바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던 추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라고 말했다. 

▲ 용주사 안에 있는 도지정 문화재 161호인 광경사지 석불좌상.

산세가 마치 용의 등허리 같다고 이름 지어진 용주사는 수덕사 말사로 1938년 김경진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용주사에는 대웅전, 요사채, 연못 등이 있다. 처음 절이 지어졌을 때 작은 암자 규모였으나 약 30여년전 대대적인 중수를 거쳐 현재의 사찰이 완공됐다. 사찰 내부에는 도지정 문화재 161호인 광경사지 석불좌상이 있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대교리 광경사 터에 있던 것을 1970년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석불은 큰 깨우침을 이뤄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고 마왕의 항복을 받는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 자세로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다. 

효자마을
법수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예로부터 효자들이 많았다고 해서 효자마을이라고 소개했다. 양양순(55) 부녀회장은 102세인 시어머니를 30년간 한 집에서 모셨다. 양 부녀회장은 시어머니, 아들, 손자까지 4대가 한 집에 살았다. 양 부녀회장의 시아버지는 100세 때부터 치매를 앓고 건강이 좋지 않아 막내딸이 서울로 모셔갔다. 마을에서는 양 부녀회장에게 효부상을 주려했으나 본인이 끝내 거절해 받지 못했다.

양 부녀회장은 “백수연을 열만큼 정정하셨지만 작년부터 건강이 나빠지시자 서울의 막내 아가씨가 모시고 가셨어요. 아버지를 끝까지 모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스럽지요. 아버지께서 편히 지내신다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 양양순 부녀회장이 키우는 국화와 다육식물 등.

김민수 씨는 홀로 96세, 95세인 부모를 모시고 있다. 작년 어머니가 치매가 오고 아버지가 고관절 수술을 해 건강이 여의치 않으나 지극한 효심으로 극진히 모신다고 한다. 김 씨는 올 초에 효자상을 타기도 했다. 

마을회관 거실에 걸려있는 달력에는 빨간색 매직으로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생일을 동그라미 쳐 놨다. 10월에는 12일과 14일 생일을 맞는 어르신들이 있다. 65세 이상 21명의 어르신들은 각자의 생일에 노인회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결속력이 깊다고 한다. 보통 마을에서는 농한기 때 마을회관에서 다 같이 점심을 해 먹는 반면 법수마을에서는 1년 365일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한다. 또한 마을 입구에 위치한 금호가든에서는 1년에 한 두번 어르신들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이장의 마을소개 
저는 그간 16년 동안 마을일을 봤습니다. 부녀회와 청년회 노인회 모두 합심해 단합이 잘 되는 마을입니다. 예로부터 마을의 단결력이 뛰어나 주민들이 4H 활동을 하며 모래로 직접 벽돌을 만들어 마을회관을 힘 모아 재건했었습니다. 마을회관이 없던 시절 회원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 함께 모여 일을 했었죠. 그때의 결속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은 주로 벼농사를 짓고 있으며 한우농가가 15가구, 딸기농가가 2가구, 황도복숭아 농가가 1가구가 있습니다. 특히 전성현 총무님이 짓는 황도복숭아는 달고 맛있어서 마을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복숭아철이면 마을에 직접 사러오는 사람도 있고 전화주문도 많이 들어옵니다.

마을에는 90가구가 살고 있으며 현광아파트에 350세대, 빌라에 15세대가 살고 있어 주민들이 많은 반아파트 반농촌 마을입니다. 법수마을은 홍성읍과 내포신도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는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효심 깊고, 산이 있고 물이 흐르는 우리 마을은 평온한 마을로 큰 다툼이 지내왔습니다. 앞으로도 마을 분들이 그저 몸과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 법수마을회관.
▲ 구메바위에 올라 찍은 마을 전경. 마을 입구 좌측으로 현광아파트가 보인다.

글=장나현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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