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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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7>
  • 한지윤
  • 승인 2016.12.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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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유선생이 사내아이의 사진을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연숙이의 머리를 스쳐갔다. 유선생은 그렇게 함으로써 연숙의 집착을 미리 떨어뜨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연숙의 마음은 한층 더 유선생에 대한 존경심으로 솟구쳤다. 그러자 연숙은 유선생을 뺏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날밤 잠을 설쳤다. 그녀는 부끄러움도, 소문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빼앗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를 불행하게 만들어서라도 기꺼이 그를 빼앗고 싶었다. 그러나 연숙이 그녀 자신도 그 동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가슴 속으로 땀이 흘러내리는 여름날들이 하루, 이틀……지나갔다. 마지막 날은 저녁 식사 후  횃불을 밝히는 가장 행렬이 있었다. 제 2동에서는 화성인을 내보내기로 했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나서, 유선생이 속해있는 조의 모든 사람들은 갖추어진 재료로 세 개의 대나무에 종이를 붙여 매미껍질 같은 화성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부에 건전지를 달아 두 눈에 불이 들어오게 했고, 오른쪽 귀에는 레이다를, 왼쪽 귀에는 마이크로 웨이브의 둥근 접시를 달아 붙였다.
유선생 이외에 두 남자가 그 화성인 역을 맡았다. 유선생은 와이셔츠를 벗고 둥글게 목이 패인 흰 셔츠를 입고 나왔다. 그것은 순백색의 형광빛이 나는 듯했다, 아내의 냄새로 가득 차 있는 순백색의 셔츠, 그것은 마치 다른 여자가 그들 부부생활에 진입해 들어오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냉엄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행렬 다음에는 댄스파티가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선생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그녀에게 찾아와 춤을 청했다. 주위는 온통 웃음소리와 함성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연숙은 그의 가슴에 안기었다. 그들은 춤을 잘 추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제 나름대로 다른 이유에서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나는 춤을 전혀 추지 못하오.”
“전 오른 발 다음에 왼 발을 내딛죠.”
“당연하지! 두 발 밖에 없으니까……”
연숙은 왼손으로 몰래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 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레코드판이 다 되어, 음악이 끊겨 졌을 때 유선생은 사람들의 열기 가운데서 우뚝 멈춰 서서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연숙씨, 고마워요. 즐거웠습니다. 이 닷새 동안……”
“저 역시……”
“다시 만날 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절망하시면 안 돼요.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들도 언젠가는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진짜 인간이죠. 인간을 믿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죠.”
연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자, 그럼 악수를……“
매우 따뜻하고 커다란 손의 감촉이었다. 살아 있는 한 떼놓고 싶지 않은 손이었다. 연숙은 그 순간 유선생의 손에 붙잡혀 눈이 어두워져 버린 것처럼 느껴져 눈을 꼭 감은 채로 서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연숙이가 넌지시 유선생의 방을 찾아 갔을 때 그는 이미 첫 버스로 떠나 버린 뒤였다.


“패배감을 느꼈어. 그 희디 흰 셔츠를 본 순간……이제 이 이상 더 손을 내밀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
연숙은 소영이에게 강습회에서 있었던 일을 대강 이야기 해 주었다.
“그걸로 끝났다면 잘 됐지 않아? 일동씨 이외의 남자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면 이번엔 또 유선생 이외의 다른 남자를 좋아할 수 있을 거 아냐?”
소영은 노골적인 표현을 써 가며 말했다. 그러나 연숙의 문제는 이것으로써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연숙이가
“나 자살해 버릴까 하는데……”
라고 소영이에게 말한 것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강의가 막 시작되던 무렵이다. 둘이서 시내로 나가 생과자를 사 먹으면서 입방아를 찧다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왜 또 그러니?”
입으로 가져갔던 손가락을 멈추고, 소영은 꽤나 엄숙한 투로 되물었다.
“왜, 라고 딱  집어 말하기는 답답하지만……세상이 자꾸 싫어져만 가니……”
연숙은 마지막 남은 한 개의 생과자를 어울리지 않게 기세 좋게 삼켜 넣으면서 말했다.
“죽는 거야 네맘 이겠지만 무능한 방법이 아니니? 자살을 할 정도라면 아내가 있는 남자를 유혹하는 편이 훨씬 죄가 가볍지, 뭐……”
“나도 알고 있어. 그건……”
연숙이가 충주호에서 만났던 유문식이라는 사람을 꼭 손에 넣고 싶다면 자살 따위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 유문식의 집에 파고 들어가 그를 빼앗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연숙이로서는 그렇게 할 생각은 더욱 더 없어져  갔다. 닷새 동안을, 그것도 충주호가 아름답게 바라다 보이는 풍경 속에서 무책임한 감정의 그리움을 가지고 바라보니까, 유문식이라는 존재가 훌륭한 사람으로 부각되었겠지만 막상 생활의 열기가 물씬 물씬 터져 나오는 사회로 되돌아 와서 본다면, 유무식의 그 별빛도 퇴색할 것이 틀림없다고 연숙은 생각했다.
“결국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넌?”
소영은 진지하게 연숙의 말을 듣고 나서 결론을 재촉했다.
“결국 미련이 없는 거야. 이 세상에……”
“그래?”
“미련이 있다면 죽지는 않지, 난 말이다, 하고 싶은 의욕도 뭘 갖고 싶은 욕망도 모두 없어 졌어.”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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