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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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38>
  • 한지윤
  • 승인 2016.12.12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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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뭣하면 나도 따라 죽어 주면 좋겠지만, 나는 우리나라 식으로 시시하게 죽는다는 건 딱 질색이니까……”
“그럴지도……”
“자살이 아니고 돌연 객사라든가 횡사라든가 따위로 죽으면 나쁘진 않겠지. 아니다. 그따위 식 죽음도 나쁘진 않겠지. 아니다. 그따위 식 죽음도 더럽구나.”
“함께 죽어 버리지 않을래?”
“정사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안 되지, 난 동정으로 동반자살은 취미가 없어. 설령 우정으로 너와 내가 죽는다고 해도 <죽음의 찬미>같은 유행가가 생길 턱이 없을 거야.”
그리고 소영과 연숙은 영화관에 가 프랑스 희극영화를 구경하면서 뱃가죽이 아프도록 웃어 댔다.
소영은 죽음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탈리아의 시인  <다눈치오>는 '죽음의 승리'라는 책을 썼다. 관능적인 정사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글인 듯 했다.
도대체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은 얼마나 따분한 것인가요? 여러분!’ 이라고 러시아의 극작가 <고골리>는 ‘폐일킨 이야기’속에 쓰고 있다. 그러나 소영이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조금도 따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치스러운 기분을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
‘인생은 겸허하지 않으면  안 돼. 조용한 생활의 미를 알아야만 하지. 운명의 눈에마저 발견되지 못한 채 슬쩍 아무도 모르는 일생을 마쳐선 안 되지.“
센치멘탈리스트인 <서머 셑 모음>할아버지가 ‘달과 6펜스’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소영은 더욱 위세 좋게 와장창 인생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뭐라고? 쓸데없는 인사를 하고 있네! 라고 소영이는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명언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젊은 세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헷세>의 ‘인생이란 고독한 것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은 알지 못 한다……’라고 한 말이 건, <그릴 파르쪄>라는 사람의 ‘인생을 위대한 희생으로 제공하는 것은 영웅이며, 그것을 하찮은 일에 낭비하는 것은  바보다’ 라는 설교이건 모두가 핀트가 맞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알 수 있는 것은 <버나드 쇼>가 말한 ‘인생에는 두 개의 비극이 있다. 하나는 마음의 염원이 달성되지 않는 것, 또 하나는 그것이 달성되어지는 것’ 이라든가, 누군가의 글인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사람은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살기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목숨을 건 승부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추억의 기록’의  한 귀절이 솔직해서 좋은 듯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영은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의 명귀절 보다도 더욱 재미있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결코 철학적 내용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6·25 한국전쟁 중 독감으로 죽은 소영이의 삼촌이 고등학교 시절에 부르던 ‘벵갈라’라는 노래이다. 이 할아버지는 적당히 불량기를 띈 쾌활한 성격의 청년 이었는데 아빠는 지금도 삼촌이 죽은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다. 삼촌은 아빠의 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수재였다.
‘벵갈라’는 다음과 같은 귀절로 시작된다.

학교는 무너지고 기숙사가 불타고
사람은 콜레라로 죽네
벵갈라 벵갈라
사람이 죽었다고 누가 울 것인가
산에 있는 까마귀들만이 울 거다.
벵갈라 벵갈라
산의 까마귀들도 그냥 울진 않지
장례식 음식을 먹고서야
벵갈라 벵갈라

소영이 삼촌의 고교시절은 객관적으로는 가장 불행한 시대였다.
식량도 부족했으며, 학생들은 닥쳐오는 전쟁의 암운을 뼈저리게 가슴으로 느끼고, 제복을 입고 전쟁을 쥔 인간들의 압력과 싸우고 있었다. 굶주림과 병마와……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묘하게 맑게 비친 청춘의 폭발과도 같은 것은 다음 세 귀절 에도 드러나 있었다.
사람이 죽더라도 화장을 해서
태우고 가루로 만들자
벵갈라 벵갈라
그 가루라도 가루 그대로 두지 말라
산, 밭에서 감자 비료로 쓰자구나.
벵갈라 벵갈라
그 감자도 그냥 먹지 말라
먹어 소화시켜 방귀로 날려 보내자
벵갈라 벵갈라

소영은 그 다음 주에도 한 차례 캠퍼스의 한 구석에서 연숙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녀가 역시 예정대로 뜻을 감행하려고 생각한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이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잔인한 노래하고 생각해?”
“천만에! 태어나서 감자가 되고, 그리고 인간의 영양이 되고, 최후에는 방귀로 되어 공중으로 사라져 간다는 건 근사한데……”
“그렇게 잘 되지는 않을 거야. 너 같은 건 죽어도……”
소영은 연숙에게 자살 따위 생각은 그만 두라고 권했다. 살아간다 하더라도 좋은 일은 없을는지 모르지만, 죽는다면 대수로운 일마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 넌 인간을 신뢰하고 털어 놓는 말일지 모르지만 내게 명령하진 마라!”
연숙은 강경한 자세였다.
“나는 어쩌면 좋지? 부러운 듯이 바라다보고만 있으면 좋을까?”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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