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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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46>
  • 한지윤
  • 승인 2017.02.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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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밴드는 어둠 속에서도 잠시 동안 요란한 멜로디를 울려대고 있었고 홀 안은 온통 휘파람 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함성소리로 터질 듯이 떠들썩 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클럽의 지배인인 듯한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손님 여러분,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곧 불이 다시 들어올 예정이니 그 때 까지만 잠시 조용히 지금 그대로의 자리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멋대로 홀 안에서 기분을 내게 되면 아마 난장판이 될 것이 틀림없는 일이다.
그 때 소영은 교묘하게 어둠을 이용하여 박노진이 그녀의 허리에 팔을 돌리며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연숙씨, 왜 나와 만나 주지 않았어? 내가 사랑하는 건 연숙씨 뿐이었는데……소영이 따위에 신경 쓸 필요 없어, 이탈리아로 꼭 편지 해 줄 수 있지?”
“유감이지만 바로 내가 소영이야 우리들 당신 몰래 지금 자리를 바꿨어. 어떻든 둘 모두에게 박애 주의적 사랑을 골고루 친절히 해줘서 고마워!”

그녀들이 박노진의 소문을 다시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였다. 박노진은 이탈리아에서도 국내에서처럼 마찬가지로 여자들과 방종하게 놀아난 끝에 불량외국인으로 낙인이 찍혀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문의 진위가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인지의 여부는 고사하고라도, 그것은 극히 그다운 행동이라 생각되어 그녀들은 그 소문을 전적으로 믿고 싶었다.
이를테면 그는 젊은 여자들에게 일종의 청춘의 심볼 같은 존재였으며, 여자들의 공유 재산 같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공유 재산은 골라  잡은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여자들에게 빌어먹을 박애주의 같은 사랑의 친절을 골고루 베풀어 준다는 완전한 에티켓을 소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여자들이 그에게서 지상 최고의 사랑의 친절을 받음으로써 얼마나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행복을 맛보았겠는가.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이 세상에 없어도 지장이 없는 인간이었다.
“소영아, 그 케익 어쨌니?”
연숙이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아. 그래, 그 때 가지고 왔던 가방 속에 아직 그대로 쳐 박혀 있겠는데……”
소영은 선반에서 가방을 내렸다. 비닐봉지에 꼭 싸서 넣어 두었으므로 케익은 변질하지는 않았다.
하트모양의 케익은 둘로 나누기에는 커녕 다 뭉그러져 있었다.
“먹어 치울까?”
“응, 그래.”
소영이와 연숙은 부스러기가 되어 있는 파이를 보고 왕성한 식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재벌쯤은 아니래도 그쯤 돈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정말이야!”
어느 날 연숙이가 소영이 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연숙이는 돈이 있었으면……라는 따위로 개탄해 하는 속물근성의 여대생은 아니었다. 소영이가 연숙이의 그런 말을 듣고 나무라는 투로 말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너 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구나? 도대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고 말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사람의 일이라서……”
연숙이는 서두를 이렇게 열며 말했다.
 그녀의 사촌언니는 10년 전쯤에 어떤 사나이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 서울로 가출을 했었다. 순박한 시골 사람의 눈에는 마치 밀수품 브로커 같은 인상의 술 좋아하는 남자를 사위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
부모와는 혈연을 끊다시피 하였고 표면상으로는 서로 소식이 없는 것 같았지만 사촌언니의 어머니는 모성애 때문인지 그대로 방임해 두지 못했다. 버린 딸이라고 화를 내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는 살림에 보태 쓰라고 돈을 부쳐 주거나 고향냄새가 나는 쌀이며 계절 따라 시골에서 나는 산나물 반찬거리를 보내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연숙은 그 사촌언니를 최근 우연히 길에서 만났던 것이다.
“여보세요. 혹시……연숙이 아니야?”
고향 사투리로 말하는 여인……그녀를 쳐다보고 연숙은 깜짝 놀랐다.
“어머나! 은주언니 아냐?”
은주는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깨가 맥없이 축 늘어진 모습, 등에는 갓난애를 업고 있었다. 허름한 시장바구니에 가느다란 양파를 세 개 정도 소중스럽게 담아 들고 있었다.
“바로 알아 보셨네?”
“어머니를 그대로 빼놓았군, 그래, 너무나도 닮았길래 한번 말을 걸어 본 거야.”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진 못했다. 남편은 인상 그대로 외제품 장사로 한 몫 단단히 벌었었다. 한 몫 쥐고 난 뒤 그 장사도 시들해지자 갑자기 난폭하게 술을 마시거나 도박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마음이 약해서 나쁜 짓에도 곧잘 휘말려 들기도 했지만, 그런 반면 아내인 그녀와 자식에게는 남편과 가장으로서의 구실도 그러저럭 해 오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 남편과 역시 그럭저럭 지내오고 있는 터였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는 그 이를 드럼통 같은 남자라고 부르시는 모양인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지……”
연숙의 시골에서는 줏대없이 미적미적한 사람을 가리켜 ‘오줌통자루’니 ‘드럼통’ 이니 하는 따위로, 질이 좋지 않은 인간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은주의 남편은 제약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최근 사원감원의 명단에 올라 있다가 결국 회사에서 감원되어 쫓겨났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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