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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 홍성결성농요
홍성결성농요보존회 4대 회장인 이선종 회장.

결성면은 일찍이 금곡천 유역에 인류가 정착해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농요(農謠)가 함께 발전해왔다. 특히 ‘홍성결성농요’는 소리가 사라진지 약 50년이 지나고 발굴돼 1993년 제 34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기자는 이 작품에 흥미를 느껴 홍성결성농요보존회 4대 회장인 이선종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반기는 얼굴로 결성농요사무실에서 마중 나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두레에서 논을 메꿨어요. 두레에선 한 가정에 한 명씩 작업 할 사람을 보내야했거든요. 아이여도 상관없었어요. 단, 꼭 남자여야만 했지요. 또, 그땐 농요가 살아있었어요. 일 할 때나 놀 때, 생활 속에서 농요를 불렀거든요”

방긋 웃으며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 회장은 마치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 했다. 좋은 기억은 추억이 된다.

기자는 이 회장에게 결성농요단원이 된 계기를 물었다.

“46살 정도까지 논이며, 밭이며 농사 짓다가 이장이 됐지요. 한창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덧 임기가 마감됐고, 새마을지도자가 됐어요. 당시 결성면은 이장과 새마을지도자를 겸직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관례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성농요의 단원이 됐지요”

이 회장에 따르면 결성농요는 문화예술 전문가인 이소라 박사가 결성면의 농요 전체를, 그 중에서도 특히 ‘만물’을 듣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마을주민들을 모아 시작하게 됐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면에서, 군에서, 그리고 충청남도에서 인정받아 마침내 1993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개최된 제 34회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게 됐으며 이후 1996년에는 제 20호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1997년 일본에서, 2011년 중국에서, 2012년 태국에서 공연도 하게 됐다고 한다.결성농요의 일곱째 마당인 ‘만물’. 이 회장의 추측으로는 영조시대에 살았던 최선달 명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만물’이 일반적으로 선소리-후렴이 반복되는 농요의 구조에서 벗어나 원대목을 소리꾼들이 부르는 것에서부터 비롯됐다고 여길 수 있다. 농요의 ‘만물’은 농사의 마무리에 논을 맬 때 하는 소리이다. 이 회장은 이 소리가 아주 특이하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리’라 불렀다.

결성농요는 총 아홉마당으로 이뤄져있다.

두레가 모이는 장면부터 모내기를 하는 장면, 흙을 파 엎으며 논을 매는 아시벌 장면, 농사의 마무리로 논을 매는 장면,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노는 장면 등 다양한 장면은 농요가 갖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농요(農謠)의 진정한 멋은 음악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회장이 기자와 인터뷰 간에 언급한 ‘농요에서는 춤이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은 이로부터 비롯됐을 것이다. 이 회장의 이와 같은 언급을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농요는 ‘노래’와 ‘춤’, 그리고 ‘노동’과 ‘환경’으로 이루어진 종합예능이라고 생각 할 수 있겠다.

인터뷰의 마무리로 이 회장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홍성군에서 많은 지원과 협조를 해줘 결성농요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지원금을 조금만 더 늘려주면 지금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어요. 또, 우리에 비해 비교적 젊은 연령의 사람들이 단원이 돼준다면 좋겠어요”

결성농요는 충청남도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예술이며, 충남도와 홍성군에서 활동비가 지원된다. 그러나 이 회장에 따르면 활동비 지원이 점점 줄어들더니 현재는 전에 비해 반도 안 된다고 한다. 또한, 63명의 단원 중 반 가량이 70대이며, 나머지는 60대여서 젊은 단원의 모집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홍성결성농요보존회 단원이 되길 바란다면 전화 041-642-1993 으로 연락바랍니다.

송신용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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