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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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73>
  • 한지윤
  • 승인 2017.08.2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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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야! 대단한 인물이군.”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에게는 자식을 백 명 가까이 두고 있다는 소리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지만 매스컴 녀석은 어쩐 일인지, 머저리인지 뭘 알지 못하는 멍텅구리인 것 같았다. 내친걸음이라 생각된 소영은 점점 대담해 졌다.
“내가 그리로 시집가게 되면 맹수 사냥에 초대할께. 오겠어?”
“그야 물론, 꼭 초대장이라도 보내 주면……”
소영은 사막의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맹수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걸 알 바가 아니었다. 물이 귀해서 우물을 파고 있던 중 석유가 솟아 나왔다는 나라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매스컴 녀석은 반신반의였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소영의 말을 믿고 있었다.
“유전 하나쯤 줄 테니까 계속 영주해 살아도 좋아. 나도 우리나라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쓸쓸할 테니까.”
“정말 그렇게 해 줄 거야?”
“글쎄.” 아직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지도 않은 상황이니까. 신랑이 한국에 와서 선을 본 다음에 결정해 줄게. 아, 그리고 프로포즈에 부수적으로 따라온 일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인을 장관으로 천거하겠다는 거야. 한국에서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부탁 받았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을까?“
“적어도 최고 일류 지식인이어야겠지?”
“그럼. 아무리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해도 장관을 수출하는 일이니까 최고가 아니면 안 돼지.”
“어디 생각해 보도록 하지.”
“지금 내가 말한 얘기를 공식적으로 결정이나, 발표가 될 때까지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되니까 철저히 보안 조치를 해 줘야 해. 보도기관들이 알게 되는 날에는 시끄러워지니까……”
“그래.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어.”
 

삽화·신명환 작가.


소영이가 말한 ‘보안조치 철저’ 라는 말은 매스컴 녀석에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대화가 있은 후로부터는 그가 소영의 주변에서 맴돌던 짓을 그만 두게 되었던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핸섬하고 부유한 왕족과는 도저히 라이벌이고 뭐고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일까. 유전을 준다든지 장관 수출의 천거권을 주겠다든가 등등 터무니없는 소리를 진짜 왕족의 아내가 되어 선심 쓰듯 해댄 것이 그렇게 흐뭇하고 상쾌할 수가 없었으며 덩달아 매스컴 녀석도  쫓아 보내게 되었으니 소영이로서는 통쾌하게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영은 그 상쾌한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짰다. 여러 코스를 생각한 끝에 소영은 제주도 해안에 가 보기로 결정했다.
제주도해안에 도착하자 소영은 마치 외국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투리가 어떻게나 억세었던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영은 곧잘 엉뚱한 공상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탄 버스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서 고장이 난다. 구조대가 올 때 까지는 최소한 3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한 극한 상황에 갇히면 자기 자신은 도대체 이 사람들 무리 가운데서 누구를 가까이 하여 정신적인 의지를 하게 될 것 인가, 하는 공상을 했다. 물론 물도 모자라고 식량도 부족한 상황 아래서 3일간이나 버틴다는 것은 혼자서는 무리일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런 공상을 떠올리면서 소영은 남자 승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보통 때에는 관심커녕 안중에도 없을 것 같은 남자들이 의외로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러한 심리적 유희와 심심풀이라 해야 할 심정은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도저히 감상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전철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몸과 몸의 불쾌한 부딪침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되어 버리기 일쑤잖은가.
소영은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시골 버스 속에는 도저히 낭만적 분위기의 냄새를 맡아 볼 수가 없었고 도시의 차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연애적 분위기의 모험도 상상 할 수 없었다.
타고 있는 손님들의 절반 이상의 옷차림은 제멋대로였다.
<계속>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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