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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였던 마을 방조제 생긴 후 바다에서 멀어져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23>
결성면 성호리 원성호마을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10.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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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당제각에서 바라본 서해안 풍경. 멀리 홍성과 보령을 이어주며 바다를 막고 있는 방조제와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홍성군 서부면 성호리는 과거에 서해바다와 직접 면한 어촌이었으나 지금은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성호리는 후청동과 가곡, 원성호 등 3개의 리로 나눠져 있다. 그 중 원성호는 ‘원래의 성호리 자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결성면지에 따르면, 마을 앞에 바다가 별 모양의 호수처럼 펼쳐져 있어서 성호(星湖)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돌곶이’라 불리던 유명한 포구였다. 한때는 주민이 300가구가 넘어설 정도로 풍요로운 어촌이었으나, 1980년대에 홍성과 보령을 잇는 홍성방조제가 생기고 간척사업으로 육지화되면서 원성호마을 앞 포구는 선박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게 됐다. 어업을 하던 사람들도 바다가 멀어지면서 자연히 농업을 주업으로 삼게 됐다.

■뱃길로 광천까지 수산물 수송
원성호마을 앞에는 지금도 ‘뱃머리’라는 지명을 가진 포구가 남아 있다. 방조제 수문이 바닷물의 유입을 막으면서 금리천의 수위는 한층 낮아져 척박한 소금땅으로 변했지만 마을 앞을 지나가는 지방도 ‘임해길’ 앞에 유난히 툭 튀어나온 언덕배기가 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두 역할을 했으므로 ‘뱃머리’로 불려지게 됐다는 것이다.

“옛날에 뱃머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시유. 이 물을 따라 광천까지 배가 다녔지요.”

원성호마을 맹영일(54) 이장의 말이다. 도로도 나쁘고 교통 사정도 좋지 않았던 시절 서해안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도 신선한 상태로 육지까지 싣고 가서 유통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먼 바다에 나간 고깃배들이 원성호마을 앞 포구로 돌아오면 다시 광천읍까지 배에 실어 운송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광천읍까지 바다로 뱃길이 열렸던 시대가 있었다. 광천읍에는 장항선 역이 있어서 철도롤 통해 서울을 비롯해 전국으로 수산물을 운송할 수 있었다.

원성호마을의 뱃머리도 윤택한 항구로 번성했다. 굴비나 송어, 양식한 굴이나 해태(김), 바지락 등의 해산물이 거래됐다. 또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고 결성장이나 광천장, 청양장까지 왕래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뱃길로 다니는 것이 편리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뒷골 방조제 공사를 시작으로 마을 북쪽의 서부면 판교리와 이어주던 다리가 필요 없어졌고, 1980년대 후반에는 보령과 홍성을 잇는 홍성방조제가 완공되면서 포구의 기능은 완전히 잃고 말았다. 방조제 건설과 간척사업으로 육지는 늘어났지만 개발의 효과에 대해 맹영일 이장은 여전히 의문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개발해서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그대로 놔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간척사업으로 생긴 넓은 땅은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소금밭으로 방치된 상태인 데다 금리천을 따라 육지에서 흘러온 민물은 방조제에 갇힌 바닷물과 섞여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다. 원성호마을 사람들은 야트막한 산자락을 따라 집을 짓고 뒷산 높은 곳에 일군 밭과 바다를 등진 육지 쪽의 낮은 곳에 개간한 논을 생업의 터전을 삼고 있다. 한때 번성했던 마을은 지금 76가구 157명의 주민이 남아 대부분 농사를 한다. 그 중 농업을 하며 어업을 병행하는 가구도 3~4호 된다. 그러나 물 사정이 좋지 않아 가뭄이 심하면 농사를 포기해야 된다. 낮은 구릉지대를 이룬 야산은 샘도 없고 계곡도 없어 비가 내려야 황토밭을 적실 수 있을 뿐이다. 논농사도 마찬가지다.

“관정으로 농업용수를 해결하는데 너무 깊이 파면 짠물이 나와요. 그래서 폐공시킨 곳도 많습니다. 그래서 비가 와야 해결되는 천수답입니다.”

올해 봄과 초여름 지속된 가뭄은 원성호마을 주민들의 속을 까맣게 태웠다. 다행하게도 7월말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모내기를 할 수 있었지만 제때에 심은 것만큼 작황이 좋은 편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심은 벼에 비해 작황이 좋지 않아 수확량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맹 이장은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들판을 바라보면서 예년 같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잠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원성호마을 사람들은 축산도 많이 한다.

마을 뒷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방제각.

■명맥 이어가는 민간신앙 오방제
원성호마을을 품어주는 뒷산 가장 높은 곳에는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보존되고 있는 ‘오방당’이 있다. ‘오방제각’이라고도 하는 당집은 서쪽으로 서해 바다가 보이고 남동쪽으로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왕자산을 볼 수 있다. 1995년 홍수로 무너졌으나 1997년 국비를 지원받아 보수공사를 해 1998년 1월 개건준공했다.

오방제의 신격은 오방장군이다. 동방청제대장군, 서방백제대장군, 남방적제대장군, 북방흑제대장군, 중앙황제대장군과 함께 좌우에는 12지신을 모시고 있다. 옛날 서해 바다로 출항하는 어선들의 풍어와 마을의 무사안녕을 비는 제사를 매년 섣달그믐이 되면 드렸다.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매년 거르지 않고 오방제를 드린다.

맹 이장의 안내로 마을 뒷산에 있는 오방제각을 방문했다. 잠긴 나무대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 보니 마당에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잡초로 무성했다. 맹 이장은 매년 섣달그믐 제사를 앞두고 사흘 전부터 풀을 베고 청소를 하는 등 깨끗이 단장을 한다고 했다. 그나마 해를 거르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오는 마을 고유의 민간신앙과 민속문화라며 맹 이장은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고민도 있었다.

“오방제의 의식을 현대화해서 젊은이들이 계속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맹 이장은 오방제를 내년도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신청할 계획이 있다며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요즘 마을만들기대학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오방제를 비롯해 과거 어선들이 드나들었던 포구 ‘뱃머리’에도 산책로를 조성해 추억할 수 있는 표지판을 만들고 스토리텔링으로 부활시킨다면 뜻밖에 명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슬레이트 지붕의 마을회관 신축 필요
원성호마을은 소루지, 골말, 뱃머리, 뒷골 등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는데 그 가운데 골말이 마을의 중심부로 오방제각 바로 아래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통 안에 든 것과 같이 골 안에 있다고 해 ‘골말’이라고 부른다.

경로당 안에는 1960년대에 찍은 흑백사진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초가지붕들이 군락을 이룬 골말의 전경이었는데 확대해서 벽에 걸어 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가운데 기와집만 두어 채 남아 보존되고 있을 뿐 주변의 초가집은 모두 없어졌다.

골말 마을 가운데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있다. 경로당은 신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로 견고하고 깔끔한데 비해 좁은 고샅을 마주하고 있는 마을회관은 매우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196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무렵 지었다고 한다. 무려 50년이 넘었다. 조그마한 창고 같은 외관에 지붕은 슬레이트로 덮여 있었는데 곳곳에 금이 가서 허물어질 듯 위태했다. 맹 이장은 전체 마을사람들이 모일 때만 사용하며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군에서는 철거하고 다시 지어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미/니/인/터/뷰 - 원성호마을 맹영일 이장
“귀농 권유할 자신없어 안타까워요”

원성호마을 맹영일 이장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다. 원성호마을은 신창 맹 씨와 김녕 김 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타 성씨보다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에 그는 결성초등학교와 결성중학교를 다녔다.

“면 소재지까지 10리길이었어요. 군사도로로 닦아놓은 산길을 걸어 학교에 갔지요. 토요일 수업을 일찍 마치면 부락별로 누가 일찍 집에 도착하나 내기도 했어요.”

그러나 최근 결성중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우울해졌다.

“제 모교인데 아쉽죠. 계속 명맥을 이어갔으면 좋겠는데 인구 감소로 학생이 없어 유지가 안 된다고 하니 달리 방법이 없죠.”

14회 졸업생인 맹 이장은 자신이 다닐 때만 해도 1개 학년 3개 반씩 편성할 정도였고 전교생이 400명까지 됐던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젊은이들이 돌아와 농촌을 살리고 학교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농사로 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 맹 이장도 자신의 마을로 귀농하라고 권하지 못하는 처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sungshu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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