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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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3>
  • 한지윤
  • 승인 2017.11.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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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남성에게서 받아낸 정액을 1분간에 2000회 가량 회전하는 원심분리기에 넣어 5~6분 정도 회전시키면 무거운 쪽인 X염색체와 가벼운 쪽인 Y염색체의 두 층으로 나뉘게 된다. 한 박사는 그  Y염색체를 떼 내어 아들을 원하는 여자에게 인공수정을 했던 것이다.

그 분리기 탓이었는지 임신은 성공했고 고맙게도 열 달 후 산모는 사내아이를 낳았었다. 일단 의사로서의 체면은 우선 세운 셈이지만 한 박사는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이라 해도 사기라도 친 것 같은 께름칙한 기분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수정을 하지 않더라도 50퍼센트의 확률로도 사내아이가 태어나게 마련인데 굳이 이런 방법을 택했던 까닭에 사내아이로 되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었다.

임신 5개월의 며느리와 그녀의 시어머니가 진찰실을 나간 후에 한 박사는 나간호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절수술 환자를 불러요,”
하고 명령 투로 말했다.
들어온 환자는 다소 야윈 편에 키가 큰, 미리 예약을 했던 여자였다. 핑크색 블라우스에 회색 스커트를 받쳐 입고 있었다.

“문주희 씨 군요.”
“네.”
그녀는 무언가 사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한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주희 스물일곱 살 회사원 미혼 수술동의서에 기록되어 있는 주소, 성명의 남자는 이 여자를 임신시킨 당사자이지만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적이 달랐다. 한국일 박사가 성명을 반드시 확인하고 있는 것은 조그마한 착오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수술을 해버린 예가 산부인과 의료계 사이에 없지 않아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삽화·신명환 작가

문주희는 임신 10주째였다. 중절수술의 절차로써 자궁의 경관을 열기 위해 어제 그 자궁입구에 라미나리아라고 하는 건조된 해조의 뿌리를 삽입해 두었었다.
간호사가 그녀의 혈압을 재고 수술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한 박사는 다음 환자를 들어오도록 했다. 질염 환자였다. 산부인과를  찾는 환자의 30퍼센트 가량은 이런 종류의 환자들이 많이 있다. 

“선생님, 갑작스레 냉이 많아져서 혹시 성병이라도 옮지 않았나 하고 걱정이 되어서‥‥‥”
환자는 우현주라는 여자였다. 이 병원에서 아이를 둘이나 낳은 일이 있어서 한박사와는 서로가 구면이었다.
“그럴 만한 짓이라도 한 기억이라도 있으십니까?”
한박사는 이 여자의 언제나 건강한 몸과 쾌활한 웃음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시내에서 꽤 큰 청과물상을 경영하고 있었다.

“아이, 선생님도‥‥‥ 농담을‥‥‥ 하지만 애 아빠가 외국에 단체관광을 갔다 왔어요. 남자들이 단체로 어디를 가면 무슨 짓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애 아빠에게 물어 보시지. 어떤 짓을 했는지.”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함께 잤던 친구가 술집 여자한테 돈만 뜯기고‥‥‥ 그래서 재미 보려다가 무서워서 그만 두었다나요.”
“하기야 돈만 뜯기고 재미도 못 봤다면 무서울 수밖에‥‥‥ 최근에 어떤 약이라든지 그런 것 먹은 일 있어요?”
“나흘 전부터 독감에 걸려서 항생제 약을 먹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 약 때문에 염증이 생겼을지도‥‥‥”

그 때 나간호사가 들여다보고 있던 현미경에서 눈을 떼면서, “캔디다 균인데요.”
하고 말하면서 한박사를 쳐다보았다. 한박사는 그녀에게, “캔디다 균이 있군요.”
하고 염증의 균을 설명해 주었다.
“어머나, 어디서 그런 병균이 옮아 왔지‥‥‥”
그녀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데라도 있는 균이죠. 일종의 곰팡이죠. 캔디다 알비간스는 보통은 해롭지 않을 정도의 양이 장과 질속에 살고 있는데 몸의 체력이 약해져서 저항력이 없어지면 번지는 균, 체내의 균형이 깨어지면 이 이스트균과 닮은 미생물은 점점 번식해 걸쭉한 흰색으로 빵을 구울 때와 같은 냄새가 나는 분비물이 대량으로 나오죠.
<계속>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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