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세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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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세상을 읽다
  • 한학수 칼럼위원
  • 승인 2018.03.08 09: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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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에 따라서 의미가 다른 게 영화다. 어떤 관객은 영화에서 예술적 감동과 체험을 얻으려 하고, 다른 관객은 부담 없는 오락성을 찾으려 하며, 또 다른 관객은 에로티시즘이나 서스펜스를 기대한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받는 어떤 느낌, 충격 혹은 감동은 다분히 심정적(心情的)인 것으로 우리 마음에 다가온다. 영화를 오락의 수단으로만 보는 것도 지나치게 한편으로 기운 생각이 되겠으나, 예술로만 보는 것 또한 편견이다.

영화란 그만큼 어느 한 관점으로 얘기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지닌 예술 장르다. 신뢰할 수 있는 매체가 적은 가상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신뢰할 만한 매체 중 하나가 영상 르포르타주가 되어야 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관객 입장에서도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게 영화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영화는 다른 장르의 예술처럼 한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창조적 기량이나 제작 기법에 의해서 완성된다. 한 편의 영화가 제작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기술 분야와 과학 분야의 결합 또한 필요하다. ‘예술’은 광범위한 인간의 노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문명인들은 예술을 역사, 시, 희극, 비극, 음악, 춤, 천문학 등 일곱 가지로 나누었다. 각 영역은 그것을 관장하는 여신이 있었고, 나름대로의 규칙과 목적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일곱 가지 고전 예술의 각 분야에서 현대의 문화적, 과학적 뿌리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가장 이성적인 작업을 통해 가장 감성적으로 표출되어야 한다’는 말은 영화 예술의 속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영화를 좀 더 깊고 폭넓게 이해하고자 할 때, 영화의 특성에 관한 철저한 분석과 철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미학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감동적인 영화의 창조, 진정한 영화의 감상, 의미 있는 영화 비평 등은 그 뒤에 비로소 가능하다.

고전예술과 현대예술도 각각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으며 복합적이고 정교한 심미적 균형 상태를 위해 매우 다양한 결정 요소들이 있다. 모든 예술은 정치, 철학, 경제적 요소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기술에 의해서도 그 형상을 갖추게 된다. 예술과 기술의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분명한 것만은 아니다. 간혹 기술적인 발전이 예술의 미학 체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미학적인 조건이 새로운 기술의 탄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영화 매체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흡사하다. 항상 움직이고 변하는 속성도 지녔다. 그 속에 담겨진 영화의 형태는 일정한 틀이 없다. 따라서 영화는 대중들에게 새로운 정보와 문화, 그리고 휴식과 위안을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인다.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여론을 형성시키는데 절대적인 역할도 담당한다. 문화 역사학자인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예술을 “열쇠가 되는 중요한 낱말” 즉, 문화와 사회 간의 상호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단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는 소설에 비해 분량이 짧다는 제한점이 있지만, 한편으로 소설이 해낼 수 없는 기능, 즉 회화적 기능성(機能性)을 지닌다. 사건에 의해 전달할 수 없는 것은 형상을 통해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 전달법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연극과 영화의 뚜렷한 차이점 또한 위 비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극의 이야기 전달 방식과 영화의 이야기 전달 방식의 차이점 같이 시점의 문제다. 연극 관객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연극을 본다. 반면에 영화 관객은 제작자가 원하는 대로 영화를 보는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라이트 모리스는 “카메라의 눈과 마음의 눈은 동시대에 주어진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삶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문제를 정확히 논리에 맞게 풀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능하다. 줄거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말에 이르러 마치 꿈에서 깨듯 관객은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영화는 픽션(Fiction)이지만 그 주제는 인간의 삶을 그린다.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화들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문득 사무치게 그립다.

한학수<청운대 방송영화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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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cup2002 2018-03-09 11:25:05
한때는 영화가 인스턴트 음식처럼 소비적인 문화에만 국한되어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무심코 집에서 본 영화 한편이 나를 울리기도 하듯이 각자의 살아가는 인생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픽션이 분명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을 비춰주고 돌이켜보려는 마음으로 영화를 찾는 마음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는 픽션(Fiction)이지만 그 주제는 인간의 삶을 그린다' 라는 마지막 말 당연한 말 같으면서도 영화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느끼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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