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막걸리에 취하는 봄 밤, 들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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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막걸리에 취하는 봄 밤, 들꽃사랑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3.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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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읍 들꽃사랑
잘 익은 구절초막걸리에 깍두기 한 점, 아른한 봄 밤이 익어간다.

저녁 6시가 되기도 전에 깜깜했던 사위가 어느 순간부터 밝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준다. 마음은 벌써 봄이지만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다. 그럴 때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 몸의 온기가 조금 오르며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막걸리의 종류는 각 지역마다 그 특색을 담아 제조되어 수없이 많다. 포천의 이동막걸리, 서울 장수막걸리 등이 대표적이다.

막걸리는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낸 술로 빛이 탁하며 알코올 성분이 낮다. 막걸리를 마시면 뒤끝이 안 좋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1965년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는 양곡법이 시행됐다. 이 때문에 잡곡이나 밀가루를 원료로 만든 입곡식 막걸리가 등장했고, 1980년대까지 막걸리의 주원료가 밀가루였다. 밀가루 등으로 막걸리를 만들면서 품질이 떨어졌으며 시큼한 맛이 나고 숙취가 심했다.

탁주업자들은 발효 기간을 앞당겨 생산원가를 줄이려고 공업용 화학물질인 카바이드를 넣어 막걸리를 만들었다. 요즘 막걸리는 카바이드를 전혀 넣지 않는다. 막걸리의 고급화 시대가 됐다. 홍성 들꽃사랑에서 만든 구절초 막걸리는 전국에서 홍성밖에 없다.

홍성 들꽃사랑연구회(회장 김용태)에서 운영하는 홍성 전통시장 내 ‘들꽃사랑’에서는 구절초 막걸리 냄새가 봄밤을 뜨겁게 달군다. 현재 들꽃사랑은 이영숙 씨가 운영을 맡고 있다. 들꽃사랑에서는 메리골드, 구절초, 아카시아, 천일홍 등의 차와 구절초 막걸리를 판매한다. 그뿐 아니라 오고가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줄 잔치국수와 수제비도 함께 판매한다.

특히 이영숙 씨가 부추가루를 넣어 뚝뚝 끊어 넣은 뚝수제비는 쫄깃한 식감과 더불어 4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인기다. 여름에는 항아리에 냉막걸리를 넣어두었다가 한 잔에 1000원에 판매한다. 막걸리는 곡주이기에 별다른 안주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잘 익은 김치 한 점이나 깍두기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도 들꽃사랑에서는 든든하게 배를 채우라고 부침개를 준비한다.

들꽃사랑에서 판매하는 구절초막걸리는 들꽃사랑연구회에서 구절초 엑기스를 홍북 양조장에 가져가 막걸리로 만든다. 구절초는 월경 불순·자궁 냉증·불임증 등의 부인병에 약으로 쓰여 왔다. 구절초 막걸리는 특히 뒤끝이 없어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다고 한다. 구절초 막걸리 한 잔에 잘 익은 깍두기 하나를 와작 깨무니 천상병 시인의 ‘막걸리’라는 시(詩)가 떠오른다.

나는 술을 좋아하되/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막걸리는/한 홉짜리 작은 잔으로/생각날 때만 마시니/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맥주는/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마누라는/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 한다/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음식으로/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다만 이것뿐인데/어찌 내 한가지뿐인 이 즐거움을/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막걸리는 술이 아니고/밥이나 마찬가지다/밥일 뿐 아니라/즐거움을 더해주는/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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