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지막 생애 보낸 아름다운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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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지막 생애 보낸 아름다운 계곡
  • 취재=허성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4.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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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3>

농촌마을 희망스토리-장곡면 월계2리

신라 말기 고운 최치원이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홍성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바로 장곡면 월계2리인데 지금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치가 수려하다. 월계2리 월계천 맑은 계곡에는 실제로 그가 스쳐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 초등학생이 발견한 최치원 유적지

경남 하동의 쌍계 금석문과 똑같은 필체에 최치원 선생의 이름까지 월계천 주변 바위에 새겨진 쌍계 금석문.

월계2리 용목마을의 북동쪽에 흐르는 월계천 바위에는 최치원이 각서한 금석문으로 전해지는 쌍계 12경 2장의 마애 금석문이 있다. 최치원이 남긴 마애 금석문은 전국에 약 30개가 되는데 그 중 16개가 이곳 쌍계에 집중돼 있다.

장곡면지에 따르면, 각서된 바위는 계곡 주변과 논 가운데에서 확인되는데 그 중 ‘용은별서’(龍隱別墅)가 각서된 바위 주변은 당시 최치원의 은거지와 강당지로 추정되고 있다. 쌍계 십이경 사장은 용소진관입석, 용암마애, 옥용암마애, 태중시문마애, 쌍계마애(1장 쌍계, 2장 최고운서), 취병마애, 청옥영마애, 금석마애, 풍악, 침수대마애, 월협마애, 용은와석(1장 용은별서, 2장 반롱대시문)으로 이뤄져 있다. 바위에 각서된 명문은 16곳에서 확인된다.

쌍계금석문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80년대에 용못에서 가재를 잡던 초등학생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초등학생은 우연히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발견하고 담임교사에게 보고했다. 그 후 홍성군 향토사학자 김갑현·전옥진 씨가 최치원이 남긴 유적으로 추정하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홍성군에도 최치원의 후손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최종돈 씨와 여러 향토사학자들이 1999년부터 학술회의를 하며 고증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사학계에서는 최치원의 유적지로서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월계리에서는 최치원이 마지막 생애를 보낸 마을이라고 확신하게 됐고, 그 후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보름에 ‘최치원선생춘향대제’를 지내고 있다. 월계1·2리가 모두 참석하는 행사로 오전 11시에 노인회장과 면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해 80여분 간 전통방식대로 예복을 입고 제사를 지낸다. 

■ 신라에서 쫓겨나 말년 보낸 곳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이 어떻게 해서 멸망한 백제의 서쪽 변방인 충청도 홍성까지 왔을까? 이에 대해 월계리에 귀촌한 주민으로서 최치원기념관 설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김태우 씨는 이렇게 말한다.

“최치원 선생이 신라의 개혁을 위해 시무10조를 발표한 후 진골의 모함으로 쫓겨났어요. 그 후 해인사에서 지내다가 50세에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 후의 종적은 알려져 있지 않아요. 제 생각에는 홍성에 와서 숨어 지내다가 75세나 95세까지 살다가 별세하지 않았나 싶어요.”

김 씨는 최치원이 마지막 생애를 보내기 위해 홍성을 택한 이유에 대해 과거 서산 태수를 지낸 적이 있었고, 서해 바다를 통해 중국에 드나들기도 쉬운 조건을 갖춘 서산과 가까운 산골 중에 가장 경치가 수려했던 곳이 장곡면 월계리 월계천 주변이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최치원은 시진핑도 존경하는 인물로 그의 시를 애송합니다. 시진핑 주석이 왜 최치원에게 관심이 많을까요? 최치원은 중국(당나라)에서 장원급제를 했기 때문입니다. 12세에 유학을 가서 18세에 장원급제를 했고, 중국의 글을 터득해 중국시를 썼습니다.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중국격문을 써줬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봅니다. 최치원이 쓴 계원필경은 지금도 중국에서 유명합니다. 최치원이 신라에서 쫓겨나 전국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합천 가야산에 사촌형한테 가 있다가 위험하니까 옛날 근무했던 서산으로 와 있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서산 바닷가가 가깝고 숨기 좋은 곳이 월계2리였어요.”

김 씨는 최치원이 월계2리에서 마지막 생애를 보내고 시신과 유품이 묻힌 묘로 추정되는 곳에 군의 지원을 받아 발굴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월계천변의 바위에 새겨진 최치원의 각서만큼은 경남 하동의 쌍계 금석문과 필체가 똑같고 최치원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고증 자료가 되는데 행정 당국이 인정하지 않은 채 무관심하고 소극적인 태도가 김 씨는 원망스럽기만 하다.

■ 귀농인 들어오면서 활력소 역할

이종우 이장

월계2리 마을은 56가구에 주민은 100명 정도 된다. 65세 이상 노인이 70%를 차지할 정도로 노령화가 심각하다. 주로 수도작을 하며 일부 가구는 잎담배를 경작하기도 한다. 경작지는 월계리 전체가 60ha 정도 되며 그 중 월계2리가 40ha로 다소 넓은 편이다. 호당 40~50두 정도의 한우를 사육하는 축산농가가 5가구 된다.

이종우(57) 이장은 토박이로 1만4000평 규모의 수도작을 하면서 60마리의 한우를 사육한다.
최근 서울을 떠나 귀촌한 김태우 씨를 비롯해 외지에서 예닐곱 가구가 들어와 마을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며 이 이장은 “귀농인들이 잘 정착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월계2리는 가톨릭교 홍성성당의 공원묘지도 있다. 약 500기가 넘는 신자들의 유택으로서 주민들은 하늘의 사람들과도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미/니/인/터/뷰-최치원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김태우 사무총장
고운 최치원 사당 짓기 위해 발벗고 나서

월계2리 주민이기도 한 김태우 씨는 고운최치원선생선양회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사무총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갖고 있다. 경상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9년 전 낯설고 물선 홍성으로 귀농했다고 한다. 처음 그가 와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곳은 장곡면 상송리였으나 2년 후 지역 내에서 다시 이사를 했는데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월계리였다. 

그 후 동네 주위를 둘러보다가 월계천에서 그는 고운 최치원 선생을 만나게 된다. 맑은 물이 흘러가는 계곡에는 최치원 선생의 휘호가 새겨진 바위가 여러 개 있었다. 1천여 년 넘는 세월 동안 숱한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그가 새긴 글씨는 상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나 유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고 그냥 방치돼 있는 모습을 보고 김 씨는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당장 군청에 달려가 항의를 했다. 담당 공무원과 군수는 고증을 해야 유적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때부터 그는 최치원 선생의 생애에 대해 연구하며 월계2리를 고운의 유적지로 고증을 받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최치원 선생이 우리 동네에서 마지막 생애를 지냈다는 사실에 대해 홍성군의원을 포함해 1200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또 유적지 일대 지주들한테 땅 매매의향서를 받아 군청에 제출했습니다.”

그 후 군에서는 최치원 선생 묘를 발굴하는 작업을 위한 예산을 세워 2000만 원을 지원했다. 오랜 옛날부터 마을사람들이 전해 들어온 말을 입증하기 위해 구체적인 장소로 알려진 곳에 파보았으나 유골과 유물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했다. 김 씨는 좀 더 발굴 범위를 넓히고 땅도 깊이 파볼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패한 작업으로 끝났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는 바위에 새겨진 ‘쌍계’(雙磎)가 최치원 선생의 것으로 알려진 경남 하동의 금석문과 똑같은 필체라며 그 사실만으로도 입증이 되는데 더 고증이 필요하다는 행정 당국의 요구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국에 23군데에 고운 선생의 유적이 있는데 그 중 9개 지자체가 고운 최치원인문관광도시협의회‘를 구성해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창원시, 경주시, 서산시, 합천군, 함양군, 군산시, 문경시, 보령시, 의성군이 회원 시·군으로 가입돼 있는데 홍성이 빠졌다. 2015년 이들 지자체가 협의회를 구성할 때 홍성군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근 지자체가 반대를 해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며 김 씨는 장곡면에 이렇게 훌륭한 고운 선생의 유적이 있음에도 진작 관심을 갖지 않은 행정을 안타까워했다.

“서산에도 월계리 만큼 최치원 선생의 유적이 많이 없어요. 정부가 최치원 선생 유적지 관련해 9개 지자체에 지원하는 사업비가 2598억 원이에요. 국비 50%, 도 25%, 시·군 25%씩 부담하게 되는데 경주는 기념관 공사를 하고 있어요. 함양에도 4월 15일 준공식을 하고 7월에는 의성에서 최치원문학전시관을 준공할 예정입니다.”

김 씨는 홍성군에도 최치원교육관과 사당을 짓기 위해 도청과 문화관광체육부에 서류를 두 번이나 올렸다고 했다. 지금 이종근(86) 전 홍성군수가 고운최치원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이 일을 같이 추진하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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