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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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29>
  • 한지윤
  • 승인 2018.06.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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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치료라는 말의 한계가 문제입니다. 이렇게 노출된 방광을 복부의 피부로 덮는 것은 가능합니다. 전벽을 만들어 주면 출혈 같은 것은 없앨 수가 있습니다. 그 정도일 것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을 듯합니다.”
“스스로 화장실에 가서 소변 따위 정도는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좀 무리일 듯합니다. 세밀하게 진찰해 봐야 알겠지만 뇨도가 없다면 요도괄약근도 없을 것이므로 스스로 조절한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또 이럴 경우 방광자체가 작은 형태이므로 소변을 모아 두는 양도 적습니다.”

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지금까지 열도 나고 했겠죠. 신우염을 반복한 일은 없습니까?”
한 박사는 이 여자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할까 하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네. 자주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1년에 너댓 번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두세 번 정도예요.”
민영이가 옆에서 정정해서 말했다.
“네, 끝났습니다. 옷을 입으십시오. 열이 나도 병원에는 가지 않았었군요.”
한 박사는 할머니의 뒤에서 물었다. 할머니는 한 박사가 민영이에게 옷을 입으라고 말하자 한 박사와 민영이 사이에 파고든 것 같이 앉아서 한 박사의 시선에 민영이를 가려주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큰 병원에는 간 적이 없습니다. 이 댁에서 옛날부터 보이고 있던 내과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그 선생님에게 왕진을 부탁드리거나 조제해서 그때그때마다 치료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돌아가신 양친 분들도 항상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시중이 힘드시겠습니다. 하루 세 번씩이나 목욕을 돌봐야 하고‥‥‥”
“기저귀도 할머니가 삶아서 햇볕에 말리고 해서‥‥‥”
남편이 말했다.
“영양이 나쁘지 않으니 저항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에서 이런 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 의사에게 수술을 부탁해 주었으면 싶습니다. 내가 수술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개 편지를 써 드리지요.“
“역시 수술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까? 수술을 받아도 기저귀를 뗄 수는 없어도‥‥‥”
남편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노출된 방광점막 만이라도 이대로 두지 말고 덮어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영씨는 낫기가 어렵습니다. 또 접촉으로 인한 통증도 있을 것이고 요로감염증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이렇게 피가 나오고 있는 것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요관에서 계속 배어나오는 소변으로 피의 양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뿐입니다.”
“돌아가신 장모님은 다른 사람의 원성을 사거나 저주를 받은 일은 한 적이 없는데 이런 몹쓸 일이 생겼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습니다만‥‥‥”
“원망과 저주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건 탈리도마이드 베이비(탈리도마이드란 피임약으로 인해 기형의 아이가 생긴 일이 많았다)와 같은 것으로써 임신 6~7주에 태아의 방광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떤 이상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부인께서는 명랑하고 밝은 성격이라서 그런지 이런 병에도 구김살 없이 살아가고 있군요.”
한 박사는 정중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집사람은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온실 속에서 자란 여자입니다. 그러나 성격은 순진한 편입니다. 몸이 이렇다고 해서 결혼 같은 것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무척 밝은 성격이지요.”
사십을 불혹이라 하는데 한 박사는 사십이 넘은 오늘까지 놀라는 일 뿐이었다.
의과대학에 있을 때에 배운 것뿐인 방광외반증이란 것을 이렇게 환자로서 처음 대하고 스스로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박사는 단풍으로 곱게 물든 뜰을 보면서, 옷을 점잖게 입고 차와 과자를 들고 나온 민영이를 보았을 때 인간이란 불가해한 존재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식적인 반응이라고 처리해 버리면 그것으로 일단 대답은 된다.
김영우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런 여자를 아내로 삼아 함께 살고 있는 것일까? 또 그 성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비가 멈춰서 좋군요.”
김영우는 한 박사의 기분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이곳에 오면 역시 비가 좀 와야 멋이 있지요.”
“저는 일만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집사람은 정서적입니다.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듣고 합니다. 여기 걸려 있는 이 그림도 집사람 작품이지요.”
남편은 벽에 걸려 있는 조그마한 액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눈이 덮여져 있는 소나무를 그린 그림이었다.
“이걸 부인이?”
한 박사는 민영이가 어떤 겸손의 말이라도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네. 3년전 쯤에 그린 거예요.”
“먹으로 눈이다, 바위다, 나무다 하는 사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신기라고 느끼는데‥‥‥ 잘 그린 그림인 것 같습니다. 아마추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데요.”
“그렇게 보여요?“
한 박사는 둔감한 사람에게는 별로 호감을 갖지 않는 성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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