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 극복 대안 ‘창조적마을 만들기’에서 찾아
상태바
소멸위기 극복 대안 ‘창조적마을 만들기’에서 찾아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6.17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11>

농촌마을 희망스토리-장곡면 천태1리
천태1리 마을회관 앞 소나무공원은 500년 된 소나무 주위에 파고라를 설치하고 뒷뜰에 정자를 만들어 주민들이 여름철 더위를 피해 쉬면서 음식도 나눠먹을 수 있도록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장곡면 천태1리는 홍성군에서도 가장 오지 마을 가운데 하나다. 홍성읍에서 승용차로 출발하면 청양군으로 가는 국도를 달려 예산군 광시면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장곡면 월계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갈 수 있는데 굽이굽이 산길이다. 그러나 푸른 숲과 계곡, 작은 호수가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구절양장 같은 길을 달리면서 창밖의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다 보면 자칫 사고가 날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훌륭한 자연환경 속에 있는 마을이라 뜻밖에 대도시에서 가장 매력적인 귀농·귀촌 마을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더욱이 축산농가가 없어 악취에 시달릴 필요가 없는 점도 이 마을이 귀촌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축산악취 없어 귀촌 최적지로 인기
“서울 마장동에서 오신 분은 전국을 다 다니며 귀촌할 곳을 찾다가 여기를 마지막으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천태1리는 축사가 없으니까 악취가 없기 때문이죠.”

천태1리 조홍식 이장의 말이다. 지금도 동네 뒷산 중턱에 귀촌할 목적으로 집터를 마련한 인천 사람이 컨테이너 박스를 우선 갖다 놓고 건축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조 이장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더욱이 귀촌할 사람이 63년생이라며 비교적 젊은 도시인의 합류를 반겼다. 천태1리에는 외지에서 이미 10여 가구가 들어왔고, 최근에는 5가구가 들어왔거나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동네는 귀촌하지 않으면 10년 후 마을이 사라질지도 몰라요. 41가구 70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데 거의가 노인들입니다. 80세 이상 어르신이 40명이나 돼 고령화 비율이 가장 높은 마을이죠. 이웃마을은 70대가 주를 이루는데….”

그래서 천태1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에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을 신청했다. 이 사업은 마을의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생태계 복원 및 생물다양성 유지를 통해 농촌 어메니티를 향상시키는 사업으로서 선정되면 5억 원의 지원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정부의 지원으로 마을안길, 마을숲, 지붕·담장 정비, 꽃길, 생태공원, 하천정비, 둠벙정비, 도랑 살리기, 마을 샘 복원 등의 사업을 실시함으로써 도시인들이 와서 살고 싶은 동네로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천태1리는 여느 마을보다 깨끗하고 잘 단장돼 있는 편이다. 우선 마을 입구에 있는 회관 주변 경관이 매우 좋았다. 아주 우아하게 가지를 뻗은 오래 된 소나무 주위에 파고라를 만들어 놓았고, 그 뒤 정자는 여름철 언제나 쉬어 가거나 앉아서 식사도 하며 쉴 수 있도록 테이블까지 마련돼 있었다. ‘양곡정’이라고 이름을 붙인 정자에는 아예 대형 냉장고 2개를 갖춰 놓았다.

 

천태1리 주민들. 조홍식 이장, 이강직 노인회 총무, 박재윤·정옥희·정화순 할머니(왼쪽부터).

■ 노인회 작목반 운영 화합 잘돼
기자가 마을을 방문했을 때 초여름 더위를 피해 네댓 명의 어르신들이 정자에서 쉬고 있었다. 노인회 작목반 회원들이었다. 금방 배달된 수박 한 덩어리가 테이블 위에 탐스럽게 놓여 있었다. 할머니들이 수박의 배를 갈라 새참 삼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권유했다.

“이 정자는 군에서 3년 전 지어줬습니다. 원래 계단이 있도록 설계됐는데 어르신들이 이용하기 좋도록 높이를 낮췄어요. 바닥을 낮추니까 건축비용도 적게 들고 어르신들이 부담없이 들어와 쉬기도 좋아요. 그렇게 아낀 비용으로 가운데 식탁도 만들어 점심도 여기서 먹곤 하죠.”

조 이장은 여름철에는 회관 안에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작목반 어르신들은 아침 일찍 참깨 심는 작업을 끝내고 간식으로 수박을 먹고 해산하기로 했다. “노인회 작목반은 회원이 15명입니다. 1300평의 밭에 참깨와 들깨 농사를 합니다.” 노인회 이강직 총무의 말이다.

군의 지원을 받아서 실시하는 일종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15명이 같이 일해서 수확한 농산물을 대한노인회 홍성군지회에 보낸다. “홍성군노인회에서 우리한테 지원되는 금액과 물건값을 합산해서 매달 통장에 넣어줍니다. 연말에는 농약대, 기계대, 식대를 공제하고 물건값을 주면 작목반 회원들이 각자 참석한 일수만큼 나눠 갖습니다. 하나도 불만 없고 단합도 잘 됩니다,”

이 총무는 노인회 작목반을 올해 9년째 운영한다며 같은 마을 주민들끼리 화목하기 위한 목적이 첫째라고 했다. “수고한 만큼 용돈도 벌지만 화합 차원에서 합니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이것 하겠습니까. 이렇게 웃고 농담하고 때 되면 간식 먹고 점심 자시고 합니다.”

이 총무는 기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같이 작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에게 이렇게 광고를 했다. “오늘 일찍 일이 끝났으니 점심은 없습니다.” 여름철 무더운 날에는 가급적 한낮에 작업하지 않는 것이 군노인회의 권장 사항이라고도 했다. 노인들이 무리하게 일하다가 쓰러지거나 사고를 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가급적 토·일요일도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 사무관급 이상 공직자 30여 명 배출

초대 홍성군수를 지낸 조천식 공덕비가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골짜기 천태1리는 인재의 산실로도 유명하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법조인 2명을 포함해 최근 30년 동안 사무관급 공무원 30여 명을 배출한 동네라고 어르신들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재판 때 박영수 특검팀의 특검후보로도 올랐던 조승식 변호사와 현재 춘천지방법원 이문세 부장판사가 이 마을 출신이다.

어르신들은 오래 전 옛날에는 뛰어난 인물이 없었지만 근대화 이후 많은 인물이 배출된데 대해 한때 광산을 하면서 주민들이 꾸준히 받는 월급으로 자녀 교육에 투자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천태리에는 원래 탄을 캐는 광산이 있었으나 1980년대에 폐광됐다.

“이 동네 뒤가 광산이었습니다. 그 때는 광산일이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시골 치고 현찰이 잘 돌았던 마을이지요. 15일마다 간조했으니까. 그래서 자녀들에게 공부를 많이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매달 돈이 나오니까, 농사 지으면 매달 돈이 생기지 않잖아요.”

홍성군 초대군수와 장곡면 초대면장도 이 마을 출신이라고 했다. 마을회관 입구에는 주민들이 세운 ‘조천식군수공적비’가 있었다. 아쉽게도 천태리에 있던 장곡초등학교 반계분교는 2년 전 폐교됐다. 마을에 학생이라고는 고교생 1명뿐이다. “창조적 마을 만들기는 초고령화시대를 대비해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사업입니다. 지금 젊은 사람이 10여 명밖에 없지만 앞으로 귀촌이 활성화돼 마을이 살아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속 썩이는 자녀 없고 다 착하게 자라
“난 20살에 ”화성(청양군)에서 천태리로 시집 왔슈. 우리 마을은 싸움도 없고 서로 있으면 나눠먹고 아껴주고 살아유.“ 정화순(82) 할머니의 말이다. 정옥희(82) 할머니는 23살에 예산군 광시면으로 시집와서 잠깐 살다가 다시 천태리로 들어와 올해 46년째 산다며 자랑할 만한 마을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부모 속 썩이는 자식 없고 다들 착하죠. 다 잘 돼 부모한테 손 안내밀고 잘 살아유. 우리 친정이 예산 신양인데 거기 가려면 서울 가기보다 더 힘 들어유.”

바로 이웃한 군에 있어도 버스로 가려면 환승을 여러 차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옥희 할머니의 아들은 현재 이문세 춘천지법 부장판사다. 박재윤(78) 할머니는 23살에 시집와서 천태리 주민이 됐지만 평생 살면서 갑갑한 것을 못 느낀다고 했다. “옛날에는 많이 걸어 다녔죠. 지금은 버스가 자주 다니니까 좋아졌죠.” 그래도 군내버스는 광천과 홍성을 기종점으로 삼아 하루 왕복 5회다. 마을입구 정자에 나와 앉았다가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