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선비가 반했고 지금은 귀촌인이 선호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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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선비가 반했고 지금은 귀촌인이 선호하는 마을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6.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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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13>

농촌마을 희망스토리-금마면 가산리 가야마을
콘크리트 교량형 수로공사를 하면서 훼손된 삼가석. 오래전 옛날 장군이 소변을 본 후 갈라졌다는 전설의 바위가 수로공사를 하면서 위 부분이 깨지고 경관조차 망쳐 놓았다.

금마면 가산리는 옛날부터 산수가 수려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북쪽으로는 홍북읍, 동쪽으로는 예산군과 경계를 이룬다. 가야마을은 ‘가야실’, ‘가실’, ‘개실’ 등의 지명이 함께 사용되며, 산수가 수려하고 가인이 머무는 마을이라는 뜻의 지명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 선비들을 매혹시켰던 마을
“가야마을에는 큰 고목이 있었습니다. 4000년의 수령을 가진 나무로 알려져 사천나무라고 했으나 수명이 다 돼 고사하고 대신 새끼나무가 자라 고목이 됐습니다.” 가야마을 김영팔(60) 이장은 “그 나무가 두 그루로 서로 떨어져 자랐는데, 지금도 군의 보호수로 지정돼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며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석골과 마을 중앙에 각기 떨어져 마주보고 자라는 이 고목은 느티나무로서 마을사람들은 암나무, 수나무로 성(性)을 부여해서 부르며 신령하게 여긴다. 마을 중앙의 나무는 수나무이고, 구석골 나무는 암나무로 주민들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제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제를 지내지 않는다.

“가야마을은 옛날 선비들이 지나가다가 산세가 너무 좋아 풍류를 즐기고 활도 쏘며 놀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김 이장은 지금도 마을이 아름다워 귀촌인들이 많이 찾는 동네라고 했다. 가야마을은 40호 70명의 주민이 사는데, 그 중 10가구가 귀촌인이다. 이처럼 귀촌인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귀촌인들은 집터를 사서 취향에 맞게 전원주택을 신축하는 것을 선호하며, 일부는 빈집을 매입해 수리해서 쓴다.

“올해도 3가구가 신축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이 안 마을에도 신축할 계획이 돼 있어요.”
김 이장은 “귀촌인들이 대부분 은퇴 후 노후를 농촌에서 보내기 위해 온다”며 “젊은 귀농인은 드물다”고 말했다. 출향인이 부모님이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무 연고가 없는 외지인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귀촌지로 선택한 이유도 옛 선비들이 찬탄하며 ‘가산리’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들어왔던 이유와 별 차이가 없다. “경기, 인천, 서울 등 주로 수도권에서 많이 오십니다. 그 분들도 가야를 선호한 이유가 지나가다 들어와서 보니 경치가 너무 좋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어서 라고 합니다.”
 

가야둘레길 표지판.

■ 마을만들기 사업 팔 걷어붙여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자긍심을 갖고 마을 가꾸기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마을 만들기 사업 포럼을 통해 주민들이 학습하는 시간을 가진데 이어 올해는 선행사업으로 마을에 꽃길을 조성했다. “올해 3000만 원을 지원받아 가야마을 둘레길에 간판을 설치하고 꽃나무를 사서 수로관 200m에 꽃길을 조성했습니다.”

가야마을 마을만들기 사업을 위해 실무를 맡은 정하진 사무국장은 금마면 부면장을 지내고 2014년 정년은퇴 후 이 마을 주민이 됐다. 원래 예산이 고향인 정 국장은 공무원이 되어 홍성에서 평생 근무했는데 마지막 임지가 된 금마면에서 노후를 보낼 곳으로 가야마을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은퇴한 후 가야마을에 살면서 마을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옥녀봉까지 오르는 산길을 등산로로 개발했다. ‘가야둘레길’로 이름을 붙였는데, 2개의 코스로 나눠 선택할 수 있게 했다.

1코스는 50분이 소요되는 둘레길로 마을회관→옥녀봉→선제바위쉼터→옥녀암→깨끔샘→사천나무→마을회관이며, 2코스는 1시간 20분이 소요되는 둘레길로 마을회관→선제바위쉼터→말바위쉼터→성황당나무→사천나무→마을회관으로 돌아오도록 했다. 아직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지만 앞으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농촌의 모습이 많이 바뀌게 되면 가야둘레길을 찾는 발길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야마을은 출향인들이 똘똘 뭉쳐서 고향을 적극 돕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출향인 모임은 연령대별로 나눠져 있는데, △청년회(40~50대) △개실아씨들(40~60대 여성들) △송천회(50~60대) △고향회(60~70대) 등 4개다.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을 위해 음료수를 사다 주기도 하고, 저희들이 하는 행사에 협찬도 해주십니다.” 김영팔 이장은 출향인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올해 봄에 마을회관으로 초청해 삼겹살 파티를 했다고 한다. “오가피순, 옻나무순, 두릅 등 직접 재배한 임산물을 따서 삼겹살 파티를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내년에 확대해서 축제를 할 계획입니다.”
 

가야마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주민들. 왼쪽부터 김영팔 이장, 정하진 사무국장, 이진숙 부녀회장, 이경숙 금마면 부녀회장.

■ 노인들 24시간 보초 서 구제역 극복
농업용수는 예당저수지가 가까워 걱정하지 않는다. 마을에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주민의 70%를 차지한다. 가야마을은 가축을 사육하는 농가가 많다. 주로 소를 많이 키우는데 7가구가 축산농이다. 가야마을 노인회에서는 2011년 겨울 구제역 파동으로 전국의 농촌이 발칵 뒤집혀졌을 때 마을 입구에서 회원들이 차례로 24시간 보초를 서며 가축의 감염을 예방해 당시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우리 마을은 단합도 잘 됩니다. 구제역 때 동네 중간지점에 철문을 만들어서 외부 차량이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노인들이 초소에서 교대근무를 하며 차량통제를 했죠. 그 때 제가 2년째 이장을 볼 때였습니다.”

김영팔 이장은 축산농가들에게 홍주신문을 통해 가축분뇨를 잘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올해 10년째 마을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주민들로부터 매우 신임을 받고 있다. 가야마을이 광산 김 씨 집성촌으로 과거 80%를 이뤘던 적도 있으나 지금은 여러 성씨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극진하게 대접한다. 여행도 보내 드리고 마을회관에서 연 3회 잔치도 열어드린다. “겨울철에는 마을회관에서 매일 점심식사를 같이 해 드십니다. 부녀회장님이 음식솜씨가 좋아서 잘 대접합니다. 작년에 군수님을 초청했을 때 음식을 대접했더니 공무원들이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이진숙 부녀회장은 19세 때 시집을 와서 올해 46년째 가야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시집 오기 전에 서울에서 살았다는 이진숙 회장은 이젠 완전히 충청도 여인이었다. 가야리는 과거 7반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2개 반으로 나눠져 있다. 주민들은 수도작을 기본으로 하면서 특용작물로 냉이를 재배해서 소득을 올린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담배로 고소득을 올렸으나 지금은 1가구만 하고 있다. 담배는 노동력이 많이 요구되는 작물로 주민들이 고령화되면서 비인기 작목이 됐다. “냉이는 8월에 파종해 11월 중순부터 캡니다. 작년에 냉이를 많이 한 가구는 1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씨를 뿌려 놓고 캐서 다듬어 판매하면 되니까 노동력이 그렇게 많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 수로공사 때문에 훼손된 전설의 바위
마을에 해발 187m의 높이에 불과한 건재산이 품고 있는 가야마을 곳곳에 오랜 세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긴 명소가 남아 있다. 그 중 한 곳이 삼가석(三佳石)이다. 기자가 마을을 떠나기 전 여인들이 꼭 봐야 할 곳이 있다며 산골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마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안마을을 들어가는 길목 왼편에 갈라진 바위가 있었는데 그것이 삼가석이었다. 오래 전 옛날 어느 장군이 소변을 본 뒤 바위가 갈라졌다고 한다.

어느 시대, 장군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못 한 채 막연한 하나의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삼가석이라고 이름을 얻은 바위라고 이진숙 가야마을 부녀회장과 이경숙 금마면 부녀회장이 설명했다. 그런데 그 바위 바로 위에 콘크리트 교량 형태의 수로가 지나가고 있어서 여간 흉물이 아니었다. 두 여인의 말에 따르면, 수로공사를 하는 업체가 토목공사를 하면서 바위를 훼손시켰다고 한다.

바위 윗 부분을 깨어서 제거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항의로 그대로 올려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원래의 형태보다 많이 훼손된 모습인데 그나마 사라질 뻔한 위기는 막았지만 설계 변경 없이 콘크리트 수로가 삼가석 위를 그대로 지나가도록 공사를 강행한 것은 매우 안타까웠다.
옛 유적 주변 풍경을 훼손하는 흉물로 남은 것인데 비록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도 아니고 지방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보호할 가치가 있는 자연이나 아름다운 경관은 지켜줄 수 있는 행정이 못내 아쉬웠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꽃길을 가꾸는 가야마을 주민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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