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육청소년 [청소년소설] 운명은 순간인거야
운명은 순간인거야 <35>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하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한 박사는 아내의 얼굴을 살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리한 방법이다 싶어 의식적으로 종종 이렇게 했다.
접수부 직원도 퇴근한 후라서 원형의 대기실은 조용했고, 외래의 진찰실에 중년의 여자가 불안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나이분과 다른 간호사들도 퇴근할 참이었는지 흰색의 간호사복을 벗고 모두 사복차림이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친척집에 왔다가 그곳에서 2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에 갔더니 출혈이 보여 집에 빨리 돌아가려고 친척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는데 불안하지 않겠어요. 마침 병원의 간판이 보이기에……미안합니다.”
“옷을 벗고 여기에 누워 보세요.”

나 간호사가 침대 주위에 둘려져 있는 커튼레일에 따라 커튼을 둘러쳤다.
환자가 옷을 벗는 동안 한 박사는 주소와 이름을 물어 챠트에 기입했다. 주소는 경기도·이름은 이영신·나이는 마흔셋이라고 커튼 속에서 맥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주머니. 평소에도 이렇게 배가 불렀어요?”
한 박사는 진찰을 하면서 일상 이야기 처럼 물어 보았다.
“몸이 이렇게 뚱뚱하니까 배가 덩달아 불러져요. 좀 살을 빼야 된다고들 하고 있습니다만…… 살이 쪄서 뚱뚱하면 생리가 불순하다고 듣고 있습니다만……”
“생리는 항상 그래요?”
“?”

“생리가 항상 불순한가 말입니다.”
“전에부터 불순한 편이에요. 갱년기가 되었는지 퍽 오래 전부터 있다가 없었다가 해요.”
“이번에는 언제부터?”
“남편은?”
“주인은 벌써 10년 전에 죽고 딸아이가 고 1입니다.”
한 박사 손바닥에 자궁의 딴딴한 수축이 전해져 왔다.
“배가 아파와요?”
“예. 조금…… 앗…… 아파요.”
“아주머닌 딸아이가 있다고 했는데 자신의 몸의 변화도 몰랐습니까?”
여자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봐요, 이건 단지 배가 아픈 것이 아닙니다. 지금 출산이 시작되고 있는 겁니다.”
한 박사의 손에는 태아의 형태가 확연히 만져지고 있었다.
한 박사는 복위와 자궁저의 높이를 측정하고서 다시 내진실로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한 결과, 외자궁구는 예상대로 세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열려져 있었고, 난막을 통해서 태아의 머리를 만질 수가 있었다.

“아주머니, 순조롭게 진행이 되면 지금부터 세 네 시간 뒤에는 해산을 하게 됩니다.”
내진대의 커튼 저쪽에서는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아주머니, 들려요?”
“네.“
“이제 됐습니다. 내려오시죠.”
나 간호사는 환자가 진찰대에서 내려오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몸이 부자유한 임산부를 부축한다기 보다는 돌연한 임신 그리고 곧 해산에 놀라서 멍하고 있는 그 여자를 돕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대강 옷매무새를 고친 그녀는 멍청한 표정으로 한 박사 앞에 앉았다.
“임신한 것을 지금까지 몰랐습니까?”
그녀는 감춘 것이 탄로난 사람처럼 당황한 표정으로,
“네. 몰랐어요……”

“생리가 불순했다고 하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뱃속의 아이가 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죠?”
“전 변비증이 있어요. 그래서 창자가 꿈틀거리는 줄만 알았지요.”
“아이를 낳아 본 경험이 있으신 분이 그런 소릴 하면 곤란해요.”
아무튼 좋습니다. 태아의 위치도 좋고, 조금 있으면 낳게 돼요.“
“놀랐어요. 어떡하지……”
“놀란 건 오히려 의사인 내 쪽인 걸요.”
의과대학에 있을 때 산부인과에서는 ‘환자를 보거든 먼저 임신을 의심하라’ 고 배웠다. 바로 이 케이스다, 라고 한 박사는 생각했다.

임신진단은 지금과 같이 소변에 의한 반응을 간단한 시약에 의해 수초에서 수분사이에 손쉽게 알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두꺼비의 숫놈이나 토끼를 사용하는 극히 복잡한 일이었다.
한 박사가 졸업한 후, 곧 맡은 일은 두꺼비를 항상 30마리 가량 길러서 두꺼비에게 임산부의 소변을 주사하여 한 시간, 세 시간 이렇게 조사 기록하여 임신반응을 보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한 박사와 동료들은 이것을 ‘두꺼비 소변당번’ 이라고 부르면서 낄낄 웃곤 했었다. 그런 테스트가 귀찮고 복잡하기도 했었다. 자궁근종이라고 진단되어 배를 갈라서 보니 임신이었다, 라는 예가 전에는 간혹 있었다.

아직 어리다고 해서 또 이 여자처럼 갱년기라고 해서 생리가 없어져 임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더러는 있었다. 갱년기의 부정기적인 생리 중에는 무배란성의 월경도 있지만 간혹 한 번이라도 배란을 수반하는 생리가 있을 경우 임신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을 것 같은데.”
한 박사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는 딸 말고 아무도 없습니까?”
“없어요. 딸 말고는.”<계속>

한지윤  hjn@hjn24.com

<저작권자 © 홍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지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 뉴스
PREV NEXT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