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憶(기억)과 忘却(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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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憶(기억)과 忘却(망각)
  • 최복내<숲속의힐링센터 숲 해설가>
  • 승인 2018.07.2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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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은 서로 상반되는 두개의 정신적 성질이다. 기억은 정신적 기능의 활동을 의미하고 망각은 정신적 기능의 정지 또는 멸실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기억의 기능은 바로 삶을 의미하고, 망각의 상태는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생명이 약동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기억의 작용은 쉴 사이  없이 되풀이되고, 생명이 소진되어 가는 사람에겐 기억은 날로 흐려지고 모든 것이 망각되어 가기만 한다. 젊은 사람에겐 풍부한 기억이 있고 늙은 사람에겐 망각이 깊어져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억과 망각은 이렇게 과거와의 관련을 통해서 나타나지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현재를 인식하는 것이 되고, 과거를 망각 했다는 것은 현재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능력이 현재의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과거에의 기억이 미래를 구상할 수 있고, 과거에의 망각은 미래에의 구상도 가져볼 수 없는 것이 된다.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기억은 즐거움도 되고 슬픔도 된다. 기억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이나 슬픔이 삶의 의미가 된다.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슬픈 것이든 그것을 떠나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억이 망각의 작용을 받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의 의미는 생활과 함께 변용되기도 한다. 살아나기 어려운 상처를 받고서도 재생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와 결단에도 관계가 있지만 그 상처를 기억하는 정신적 기능에 망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억의 기능이 인간에 부수된 본능적 자연적인 기능인 것처럼 망각의 작용 또한 인간에 부수된 본능적 자연적인 기능이다. 이 때문에 아무리 왕성한 기억의 기능 속에도 잠재적으로는 망각이 작용하고 아무리 망각된 세계 속에서도 잠재적으로는 기억의 기능이 작용한다. 완전히 모든 것을 망각한 사람에게도 한 가닥의 의식의 등불이나 실마리는 남아있는 법이다.

그 가냘픈 의식의 실마리나 등불은 가냘픈 대로 기억의 실마리이며 등불이기도 한 것이다. 서로의 상반되는 기억과 망각이 많든 적든 잠재적으로 서로 조금은 작용되고 있다는 것은 생명의 활동과 정지가, 삶과 죽음이, 우리에겐 항상 서로 교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완전히 휴식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모든 휴식을 새로운 활동을 준비해 주기도 한다. 전혀 아무런 반성도 없는 행동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반성은 때로 새로운 행동을 만들어낸다.

기억과 망각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교착속 에서 우리 인생이 살아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사람에겐 아무리 망각하려 해도 망각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쓰라린 상처인 경우도 있고 아름다운 즐거움인 것도 있다. 망각되지 않는 것이 그 무엇이든 기억 속에 새롭게 자꾸 되살아나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그 생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와 함께 아무리 기억의 기능이 왕성한 사람일지라도 자기도 모르게 조금은 망각되어 있는 것이 있다. 조금은 망각된 것이 없는 그러한 기억이란 없다.  조금씩 조금씩 망각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의 활동이 소멸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살아가면서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생리적인 숙명이 아닐까.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살아간다. 아무리 망각의 작용이 심해도 사람은 죽음이 올 때까지는 그렇게 살아간다. 살아가는 인간이 스스로 삶을 반성하게 되는 것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그 죽음에의 공포와 불안 때문이다. 죽음에의 공포와 불안이야 말로 우리의 삶의 가치를 깨우쳐 주는 최후의 성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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