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농사 퇴조하고 축산과 절임배추로 농가소득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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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농사 퇴조하고 축산과 절임배추로 농가소득 올려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7.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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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17>

농촌마을 희망스토리-광천읍 월림리 공수
공수마을은 토지가 비옥하기도 하지만 가뭄 때는 공수곡 저수지에서 공급하는 물로 갈증을 해결한다.

광천읍 월림리 공수마을은 매머리 모양을 한 매봉재를 중심으로 날개를 펼친 매 형상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홍주목사가 다스리던 시절 공수마을과 바로 이웃한 홍동면 원천리 세천마을에 역말이 있었다. 세천마을에는 아전이나 관노들이 주로 살았는데 그들이 농사를 짓던 공수전(公須田)이 바로 인접한 마을에 있었다. 그곳은 바로 지금의 공수마을이다. 공수전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공수동, 혹은 공수골로 불리게 된 유래다.

■ 한양의 관리들 낙향했던 마을
공수마을에는 한양에서 벼슬을 그만둔 관리들이 낙향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한양의 고위관리들이 지방으로 가는 길에 역말에서 묵게 되면 낙향한 관리를 찾아서 인사를 드리거나 초대를 받아 한양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공수마을은 예부터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광천읍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공수마을은 동쪽으로 월림리 월곡마을, 서쪽으로는 매현리, 남쪽으로는 빙질마을, 북쪽으로는 구항면 신곡리와 인접하고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월곡리, 공수리, 빙질리,와 시목동, 중원리, 죽림리 종평리의 일부를 폐합했는데 월곡과 죽림의 이름을 따서 ‘월림리’로 홍동면에 편입됐다. 우리나라가 해방될 때까지 큰 마을이었으나 5·16 후에 공수, 빙질, 죽림, 월곡리 등 4개의 마을단위로 나눠졌으며,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천읍 월림리에 속하게 됐다.
 

아이쿱과 계약재배를 하는 작목반의 친환경인증 표시판.

■ 70년대 풍부한 노동력으로 담배농사
현재 공수골은 50여 농가에 140명의 주민이 벼농사와 축산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마을이 번성했을 때는 1974년경으로 가구수는 74호에 40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그 때는 벼농사와 담배농사가 주 소득원이었다. 한때 담배 재배로 전국경작우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풍부한 노동력과 단결력으로 1964~1965년에 퇴비증산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부상으로 요소비료 50포대를 받았다. 담배농사로 고소득을 올리게 되자 주민들은 1972년 십시일반 기금을 조성해 전화사업을 추진했다. 정부가 1974년부터 1976년 사이에 농어촌 전화사업을 추진했는데, 공수마을은 2년 앞서서 마을 자체적으로 정보통신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던 셈이다. 주민들은 직접 나서서 구덩이를 파고 전봇대를 세워 전화선을 이었다. 1974년 공수마을은 마을기금을 만든 공로로 저축증대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 바닷물절임배추 사업 장관표창 받아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이농과 고령화로 품이 많이 드는 담배농사는 점점 퇴조하고 지금은 같은 품이 들어도 수익성이 훨씬 높은 양돈으로 대체됐다. 또 가을에는 배추를 많이 재배하는데 박창덕 이장을 비롯해 여러 농가들이 같이 협력해 바로 김치를 담을 수 있는 바닷물절임배추로 상품화해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2013년 말 박 이장은 2006년 공수마을 이장 취임 이후 농업경영체 등록제를 비롯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농업정책을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2008년부터 농촌 소득증대를 위한 바닷물 절임배추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공로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광천절임배추조합은 2011년 광천읍 월림리 공수마을에 군비 1억8000만 원을 지원받아 총 6억1000만 원을 들여 200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마을은 홍성읍과 광천읍을 남북으로 이어주는 광금남로63번길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 3~5호씩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길게 흩어져 있어 어르신들이 마을회관까지 걸어서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차량이 빈번하게 다니는 도로에는 인도가 따로 없어 노인전동차를 이용해 마을회관을 다니기는 위험하다. 현재 마을 공동재산으로는 논 5마지기(3300㎡, 1000평)가 있다.

홍성과 광천을 잇는 광금남로63번길 왕복 2차선 도로가에 있는 공수마을회관

 
미/니/인/터/뷰-내포우리밀 전선호 대표
배포가 큰 초보농업인의 도전

전선호 내포우리밀 대표가 논에 벼 대신 심은 콩을 가리키고 있다.

내포우리밀 전선호 대표는 귀농한지 2년 반 만에 대농이 됐다. 지금 광천읍 월림리 공수부락에서 터를 잡은 전 대표는 벼농사만 빼고 콩, 보리, 밀 등의 작물만 전문으로 한다. 논을 얻어도 아예 벼를 심지 않는다. 논에 벼대신 타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대량으로 생산하는 만큼 수익성도 좋다. 그는 농사짓다가 버려져 묵힌 땅이나 고령으로 농사를 직접 짓기 힘든 어르신들의 전답을 빌렸다.

“농촌이 고령화되면서 80~90대 어르신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묵힌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임대료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저는 농지가 생겨서 좋지요.” 그는 이웃 동네까지 쫓아다니며 묵힌 땅을 부지런히 찾았다. 그 결과 광천을 비롯해 장곡, 홍동, 홍성 등에 놀고 있는 논밭을 얻은 것이 지금 8만5000평이나 된다. 그는 그 넓은 땅에 콩, 보리, 밀 농사를 하고 있다. 그만한 영농 규모에 맞게 시설과 장비도 다 갖췄다.

공수마을에 건조창고를 짓고, 건조기, 콤바인, 베일러(볏짚 마는 기계), 동력살포기, 퇴비살포기, 래핑기, 트랙터, 콩 파종기, 보리 파종기 등 웬만한 농기계는 다 갖추고 있다. 그래서 여러 지역에 흩어진 농토를 이동하면서 농사를 짓는다. 초보 농사꾼이 너무 크게 일을 벌인 것 같지만 그는 자신만만하다. 콩과 보리, 밀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작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농기계는 중소농들의 파종이나 수확을 대신해주고 그 대가로 받게 되는 볏짚을 말아서 퇴비용으로 상품화한다. 자신의 농사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성이 차지 않아 농지를 더 늘려 나갈 계획이다.

“인삼을 거둔 밭은 묵히는데 싸게 임대를 해서 활용하고 싶습니다. 인삼을 거두고 나면 뭘 심어도 안 된다고 하는데 첫해는 생강을 심고, 그 다음해는 보리를 심습니다. 보리를 거둔 후 보릿대를 갈아서 밭에 뿌려 지력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버린 땅 살려서 경작 규모를 늘리는 생각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는 소 10마리, 염소 30마리도 사육하는 등 축산농이기도 하다. 부인은 영어학원을 운영하면서 남편의 영농을 지원하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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