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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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등불
  • 이원기 칼럼위원
  • 승인 2018.08.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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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간의 무역전쟁이 갈수록 커져가는 모양새다. 무역으로 근근히 지탱해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는 고래싸움에 끼인 새우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태풍이나 해일, 또는 대형 산불이나 지진 따위의 자연재난으로부터 용케도 벗어났다고 해서, 지금을 위난의 시대가 아니라고 강변할 사람이 있을까? 재난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유사 이래 우리나라가 외국의 침략을 받은 것이 일천번에 가까웠다. 그 많은 국난을 극복한 분들은 누구누구 였으며, 그 중에도 가장 출중한 재상은 누구였던가! 세종대왕 시절의 명재상 황희 정승을 떠올리는 분도 있겠고, 고구려의 을지문덕, 고려의 강감찬, 조선의 이순신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일인지하 만인지상, 즉 영의정 또는 국상이라고 한정지워 따져 본다면, 위의 세 분들은 해당이 안된다. 그렇다면 태종 이방원과 더불어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던 정도전 또한 해당 없음이고, 배극렴, 조준, 성석린, 하륜, 허조 같은 분들, 세종조의 또 다른 명재상 맹사성 대감도 비켜가고, 조선 중기의 명재상 이준경도 국가 존망이 풍전등화의 시대가 아니었던 시기에 살았던 까닭에 첫째가는 대정치가로는 평가받지 못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의 손아귀에서 나라를 구한 일련의 명재상들, 예컨대, 정탁, 정철, 윤두수, 유성룡, 이원익, 이산해, 이덕형, 이항복도 걸출한 재상들이었으나 역시 최고의 재상으로는 지목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결사항전을 주장하며 눈물로 항서를 찢어버린 청음 김상헌도, 그 찢겨진 외교문서를 다시 주워 모으며, 잠시 굴욕을 당할지언정 화친만이 만백성을 구하고 조선이 살길임을 천명한 지천 최명길도, 장희빈으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웠던 시절, 신하들 다루기로는 조선의 그 어떤 제왕 못지않게 뛰어났던 숙종에게 여덟차례나 영의정으로 부름을 받았던 최석정도, 정조 이산을 도와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일궈낸 번암 채제공도 아니었으니, 그렇다면 율곡 이이나 퇴계 이황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퇴계는 다소 일찍 관리의 굴레에서 벗어나 학문과 후진 양성길로 들어섰고, 이율곡은 너무 많은 나랏일에 파묻혀 정승 반열에 오르기도 전 48세 한창 나이에 별세하고 말았다. 이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 한 분을 단군께서 개국한 이래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을 수 있다. 그분은 당시 만주일대를 석권하고 고구려를 누차에 걸쳐 멸망직전까지 몰아부친 후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고구려를 굳게 지켜 태평성대로 이끈 분이었다.

서기 191년에 동천왕의 부탁을 받고 고구려의 핵심 4부족에서 공통으로 천거한 사람은 안유였는데, 그 안유가 다시 추천한 인물이 바로 우리나라 역대 제 1위 재상으로 인정받아온 농부출신의 노정객 을파소였다. 영의정은 을파소, 좌의정은 황희, 우의정에는 맹사성인지, 성석린인지 허조인지 혹은 이준경이나 최명길 또는 김상헌이 어떨까? 아니면 최명길의 손자요, 수학 역사상 대천재 오일러보다도 먼저 수학상의 대 원리를 찾아냈던 위대한 수학자겸 천문학자였던 최석정을 조선 최고의 좌의정으로 세운다? 어쨌든 그 문제는 보는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외무부 장관으로 모두가 꼽은 인물은 고려의 서희장군이었다. 고구려의 후예 발해를 집어삼킨 거란족의 요나라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내놓으라며 소손녕이 3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공한다. 조정의 모든 신료들이 황주에서 자비령에 이르는 이북 땅을 떼주고 화친하자고 할 때, 서희 혼자만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단독으로 소손녕을 찾아가 적의 대병력을 철수시켰으니, 인류 외교사 속에서 이보다 더 통쾌한 승리는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국방장관은 을지문덕이요, 육군참모 총장에는 강감찬 혹은 권율, 해군총사령관에는 이순신이었다.

국가가 일대 위기에 빠졌을 때 나라와 백성을 구해낸 분들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만일을 대비해 늘 준비하며 살았고, 언제나 약자인 백성들 편이었으며, 정의를 위해서나 위기 앞에서 자신의 목숨조차 기꺼이 던질 각오로 사셨다. 그 위에 인격도야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마음 속이 명경지수처럼 맑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명확히 짚어내고 다가올 앞날에 대한 예지력마저 지닐 수 밖에 더 있었겠는가! 돌이켜보건대 위대한 지도자들은 그보다 한결 더 웅혼한 영혼을 지닌 거인들이셨음이 분명하다.

이원기<청운대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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