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잠재능력 일깨우며 시·서·화 경계 없는 예술가
상태바
뒤늦게 잠재능력 일깨우며 시·서·화 경계 없는 예술가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8.26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향인 인터뷰<11> 강진후 수필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셋째 주 금요일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연정(蓮晶) 강진후(62) 수필가를 만났다. 그 날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조계사 불교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는 동료 2명이 같이 왔다며 소개를 시켰다. 언론과 처음 하는 인터뷰라 떨려서 함께 동행을 부탁했단다. 물론 기자가 인터뷰 하는 동안 동행한 두 사람은 다른 자리에서 차를 마셨다.

■ 수필 이어 최근 시도 추천받아
연정은 2014년 한국산문을 통해 먼저 수필로 추천받고 등단했다. 시는 4년 늦은 올해 한국시원의 추천을 받았다. 그녀는 운문과 산문을 경계 없이 넘나들면서 그림까지 섭렵한 화가이기도 하다. 참으로 다재다능한 연정은 50~60대의 나이가 되어서야 잠재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면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녀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아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연정은 어린 시절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엄마를 세 살 때 여읜 것이다. 그 때 28세였던 엄마는 3남매의 자녀를 이 세상에 남겨 놓고 일찍 하직했다. 연정은 그 후 사진으로 남은 엄마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자주 울곤 했다. 아버지는 곧 새엄마를 데려왔지만 친엄마의 사랑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 후 할머니가 엄마 역할을 하며 3남매의 눈물을 닦아줬다.

연정이 태어나서 자랐던 곳은 홍성군 갈산면 가곡리, 거기서 가곡초교에 다녔다. 그러나 3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갔다. 할머니와 새엄마 밑에서 난 3명의 이복동생들까지 모두 9명의 대식구들이 올라가 시작한 서울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학교는 너무 많은 학생들로 수용 한계를 넘어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다. 잠깐 시골에서 다녔던 작은 학교가 연정은 늘 그리웠다.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친구들과 뛰놀던 산과 들이 눈에 선했다. 그 때의 짧은 추억은 오래도록 남아 지금도 그의 글 속에 살아난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남동생과 수덕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외가에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생과 나는 어레미(얼레미) 쳇바퀴가 다 빠지도록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고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놀았던 다음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꿈속에서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찾아 헤매었던 것 같다. 어쩌면 좋을까? 깔개 이불에 테두리가 진한 지도를 제대로 그렸다. 
-강진후‘수덕사의 연가’중-

연정이 지난해 범우사에서 발행한 ‘책과인생’(8월호)에 발표한 수필 중 한 대목이다. 시인은 이 글에서 가곡리에서 자라던 시절 자주 오줌을 쌌던 기억을 떠올린다. 초등학생이었음에도 엄마 없이 늘 불안해 했던 정서 때문에 이불에 지도를 자주 그렸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심지어 할머니가 큰 키를 머리에 씌워주며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라고 시킨 일까지 어린 시절의 콤플렉스를 고스란히 묘사한다.

그 날 아침 할머니는 별다른 말 없이 바가지와 큰 키를 머리에 씌워주면서 “뒷집에 가서 소금 얻어 오너라”라고 하셨다. 그 때 할머니의 목소리는 단호했던 것 같다. 영문을 모르는 꼬마는 뒤집어 쓴 키를 땅에 끌며 갔다.
“아주머니! 우리 할머니가 소금 좀 달래요.”
뒷집 아주머니는 헛간에서 무엇인지 들고 나와 키를 머리에 쓰고 있는 내게 돌아서라고 하셨다. 그 때 우박인지 자갈인지 마구 쏟아지는 듯 우당탕 마른하늘에 번개가 쳤다. 그리고 부지깽이로 키를 마구 두들겼다. 아주머니는 “오줌 또 쌀 거여?”, “왜 오줌을 싼겨?” 하시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강진후‘수덕사의 연가’중-

■ 졸업은 못해도 가곡초교 동문
연정은 얼마 전부터는 매년 8월 15일 개최하는 가곡초교 총동문회 정기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올해 여름에도 참석했다. “초교 졸업장은 서울에서 받았지만 가곡초교 졸업생이 워낙 적어서 동창회의 권유를 받고 4년 전부터 참석하고 있어요. 그래도 서울에서 나온 초등학교보다 시골에서 친구들 하고 지냈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의 초등학교는 학생도 많았고 동창회도 없어요. 항상 1년에 한 번씩 동창회 모임하는 시골 초교가 부러웠어요.” 연정은 가곡초교 17회 동창생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데 2살 아래 남동생도 같은 해 입학을 한 동기생이다. 당시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2년 늦게 호적을 한 탓에 초교 입학통지서도 늦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가곡초교는 갈수록 입학할 학생이 줄어들면서 2007년 문을 닫았다.

그 날 인터뷰를 위해 동행해준 두 사람 가운데 가곡초교 동기생이 있었다. 이문자(60) 씨였는데 나이는 연정보다 2살 더 젊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연정과 일찍 이별한 후 가곡초교에 계속 남아 졸업장을 받았다. 먼 훗날 옛 친구가 사는 서울 은평구로 가서  이웃이 됐다. 그 후 그림과 시를 배우며 어린 시절 못 다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동행 중 나머지 한 사람은 금산(禁山) 박도원 화가로 두 사람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2012년 은평문화원에서 금산으로부터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한 연정은 지금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국내외 화단에서 불교풍이 강한 한국화가로 널리 알려진 대스승이 제자가 처음 하는 인터뷰를 위해 찻집까지 동행한 인간성이 놀라웠다.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벗과 스승이 같은 찻집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연정은 힘이 나는지 매우 편안한 자세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연정은 상고를 나와 은행원으로 취업해 일찍 돈을 벌었다. 고교시절 글짓기대회 때 냈던 작품을 선생님에게서 칭찬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기억하는 연정은 그 후 오랫동안 여건이 되지 않아 글쓰기를 가까이 하지 못했다. “수필을 쓰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수필 강의를 했는데 수강자가 많이 없다고 저 보고 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연정은 수필집을 내면 선물로 책을 갖다 주기도 하는 그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강의에 참석했다. 계속 흥미를 갖고 참여하면서 글을 써 제출하면 그 친구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 글이 수강생 8~9명 가운데 제일 나은 것 같다며 계속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친구 수필가의 칭찬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연정은 50대의 늦은 나이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문학적 잠재력을 일깨우며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했다.

“돈과는 관계가 없지만 내면에 숨어 있는 것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에 매력을 느껴요. 내 글을 한 사람이라도 읽어서 가슴이 따뜻해진다면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연정이 문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여름밤이 걸어와 바다를 적시고
침묵 속에 은빛 파도는
지나온 이야기 하나씩 만지작거리며
섬광처럼 비춰주는 등대 불빛 따라
기억해 내는 모래알 닮은 유년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어린 시절 향기 묻은 소나기 바람
포말에 실려와
눈 속에 머물다 사라져 간
옛 모습 그대로인 외기둥 등대
여전히 빨간 눈으로 더듬이 편 채
먼 길 돌아와
서 있는 고향 그리운 허수아비.

-강진후‘궁리포구에서’전문-

이번에 ‘한국시원’에서 추천 받은 시로 궁리포구는 홍성군 서부면에 있다. 이처럼 연정은 가끔 방문하는 고향에서 문학적 소재나 모티브를 찾아 서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하며 어린 시절 추억을 끄집어내어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연정이 가진 재능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은평구 문화해설사이기도 하고 조계사에서 4월 초파일마다 장고를 치는 풍물패의 일원이기도 하다.

서울 은평구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박도원 화백(오른쪽)과 함께. 왼쪽은 어린시절 고향에서 가곡초교를 함께 다녔던 동기생 이문자 씨.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