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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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2>
  • 한지윤
  • 승인 2018.11.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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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제가 두 분의 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지만 전심전력으로 주어진 두 아이에게 정을 쏟아 보십시오. 두 분은 사이가 아주 좋으신 분인 것 같고 1남 1녀를 두고 있으니, 그 아이들은 두 분의 아이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요?”
대답이 없었다. 1분 가량 지나자 침묵이 어색했던지 남편이 먼저 고개를 들고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숙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응?”
아내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일어섰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한 박사는 일어서는 두 부부에게 정답게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나미 간호사도 따뜻한 인사를 했다.
병원이란 곳과 장의사라는 곳에서는 ‘또 오십시요’라는 인사는 못하는 법이다.
한 박사는 잠시 후 이나미 간호사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잘 기억해 두라고. 훗날 시집가서 남편에게 정관수술 같은 것을 시켜서는 안 돼.”
“재혼할 경우를 대비해서요?”
“물론이지. 이나미 양이 먼저 죽을지 누가 알아?”
“그렇담, 꼭 정관수술을 하도록 만들걸요. 후처 같은 여자 얻지 못하도록.”
“무서운 여잔데……”
한 박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선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날 오후 한 박사는 천세풍 박사와 한 박사가 개업 이래 기록적인 큰 난소낭종 수술을 했다. 환자는 다방을 경영하는 삼십대의 혼자 사는 여자였다. 최근 수개월 동안에 갑자기 배가 불러왔다. 임신일 것이라고 주위에서 수군거리고 있었으나 본인은 그럴만한 짐작이 가는 데가 없었다. 배는 만삭의 크기까지 불러왔다. 배를 갈라보니 낭종은 한 번으로 다 들어낼 수가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한 박사는 허리의 척추 마취만으로 의식이 그대로 있는 환자에게,
“너무 큰데요. 무겁지 않았어요?”
하는 농담을 했다. 주사기로 먼저 낭종의 물부터 빼내기로 했다. 피가 섞인 물을 1리터 가량 빼내고 나서 커다란 낭종을 겨우 꺼냈다.

“전람회에라도 출품할 정도인데. 이렇게 큰 것은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 봤어. 기분이 어때요?”
배를 꿰매면서 한 박사가 눈을 감고 누워있는 환자에게 농담을 했다.
조금 통통하게 살이 찐 듯하고 살결이 하얀 여자는 눈을 감은채로,
“배가 고파요.”
라고 느닷없는 말을 해서 간호사들까지도 따라 웃었다.
“그렇겠죠. 이 정도로 꺼냈으면 배도 고플거요.”
간호사들이 또 한 바탕 웃었다. 한 박사도 기분 좋게 웃었다.
그날 퇴근 직전에 찾아 온 환자는 살빼기 위해 먹지 않아서 생리가 없어졌다는 양영은이라는 여대생과 그 어머니였다. 모녀의 정중한 인사말에 한 박사는,
“오랜만입니다. 그 후 어때요?”
“네. 아직도 생리는 없습니다. 여위는 것만은 일단은 막은 것 같아요. 덕택으로요.”
대답하는 쪽은 어머니였다.
“그래, 아직 없다? 살도 안 찐다?”
“살 찐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여대생이 직접 기록한 기초체온표도 가지고 왔다. 한 박사는 받아들고 들여다보고는 예상한 대로라고 생각을 했다.
월경과 월경의 중간쯤에 배란이 있는 것이므로, 그 이전은 정온의 시기에 해당되고 배란 후에는 고온상을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인 상태다.
기록된 체온표에는 고온상도 저온상도 없는 평행 그대로인 것이었다.
“아마 이런 상태를 나타낼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자, 오늘부터 약을 복용해 볼까요? 얼마 안 있으면 멘스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다시 연구해서 치료해 봅시다. 이번에 나오는 멘스는 약 때문이니까 진짜는 아닙니다. 치료는 그 때부터 천천히 해보기로 해요. 그보다는 잘 먹고 살이 좀  올라서 기운을 돋구어야 할걸요.”
“알았지?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
딸은 대답대신에 고개를 수그렸다.
“저희집 주인께서 서울의 종합상사에 나가고 계시는데, 전 로스엔젤레스에서 선생님의 사모님을 뵈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요? 집사람은 여행을 잘 다니지요. 아마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을 것입니다.”
“딸애를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만 말했지 이 병원이란 말은 하지 않았는데요, 이번에 선생님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못 뵈었지만 안부 여쭈라면서 수일간에 찾아뵙겠다고……”
“아니죠. 오히려 제 쪽에서 미안합니다. 댁의 선생님은 출장이 많으신가요?”
“네, 자동차의 수출을 맡고 있어서요.”
“그렇겠군요. 옛날에는 자동차라고 하면 수입만 하고 수출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수고가 많겠습니다.”
“아니, 우리 주인은 즐겁게 일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예요.”
한 박사는 영은이 어머니의 ‘남편은 즐겁게 일한다’라고 한 말을 잠시 생각해 봤다. 사람이란 좋아하지 않으면 일을 오래 계속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한 박사의 원칙을 갖다 맞추면 그 어머니의 말도 옳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 이면에는 남편의 일의 즐거움에서 자기는 제외되고 있다는 원망 비슷한 점도 포함된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었다.
 한 박사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타월로 된 가운을 입은 채로 아내인 윤미에게 물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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