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불연속성의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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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불연속성의 충격이다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12.1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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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장 모르 저 | 눈빛 | 1만 6000원

기자라는 특성상 늘 사진을 찍는다. 물론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수 십장 혹은 수 백 장을 찍어 그 중 한 장을 겨우 골라낸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골라내지 못하는 사진도 간혹 있다. 그럴 때면 책상에 얼굴을 묻는다. 자책도 해보고 애꿎은 카메라 탓도 해본다. 위로는 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시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나가야만 한다.

특히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을 때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색해한다. 물론 나도 어색하다. 렌즈를 통해 찍히는 대상자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행위를 하는 사람 간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가능한 상대가 편하게 웃을 수 있도록 해주는 수밖에 없다. 한 장의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보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의 관심이 제각각 어우러져 때로는 모순을 빚어내기도 하는 만남의 자리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소설가이며 극작가, 다큐멘터리 작가인 존 버거와 전문 사진작가인 장 모르의 공동 작업이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장 모르가 사진가로서 직접 체험한 것을 글로 옮긴 것으로, 그는 한 장의 사진이 보는 이에 따라 얼마나 모호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2부 에세이는 존 버거의 사진에 대한 고찰이다. 3부는 아무런 설명 없이 사진 150장이 들어있다. ‘만일 매순간에’라는 제목이다. 한 농촌 여성의 생활을 담은 사진들로 존 버거는 서문에서 “이 사진들이 르포르타주는 아니며 이것이 상상력의 소산으로 읽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지는 4부에서는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이론적 합의들에 대한 검토가 다뤄진다. 마지막 5부에서는 한 장의 흑백사진과 글이 담겨있다.

장 모르는 “사진을 잘 찍으려면 자기 얼굴을 찍는 것과 다른 사람이 찍은 자기 사진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사진으로 늘 자신의 얼굴을 위장했던 사진작가 장 모르는 어느 날 텔레비전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야 했다. 그 모습을 통해 내 앞에 있는 나라는 모습이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에 작가는 더 이상 사진으로 자신의 모습을 위장하거나 장난치지 않게 됐다.

셀프 카메라를 찍어 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보정한다. 눈썹을 조금 깎고, 눈꼬리와 입꼬리를 올리고, 얼굴선은 갸름하게 다듬는다. 그리고 자신이 만족한 모습의 사진을 SNS에 올려 친구들과 교류한다, 내 본래의 모습은 없다. 단지 예뻐 보이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사진은 사진으로서의 본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존 버거는 자신이 사진을 배우면서 사진의 원리가 배운 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한다. “한 장의 사진은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킨다. 모든 사진은 과거에 속한다. 사진 속에서 한순간은 우리가 살았던 과거와는 달리 결코 현재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진은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나는 사진 찍은 사건에 대한 메시지, 다른 하나는 불연속성의 충격을 전하는 메시지다.”

불연속성은 어떤 현상이 그 안에서 실질적으로 구별되면서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한 장의 사진은 그저 거기에서 끝이 난다. 거기 있음으로 인해 세계의 모습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관계를 끊임없이 상기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저 단순히 본다는 행위가 만들어낸 일종의 충격이다.

3부 ‘만일 매순간’에서 존 버거는 “일련의 사진들이 의도하는 것은 기록사진이 아니다. 이들은 그녀의 삶, 심지어 삶조차도 기록에 담고 있지 않다. 그녀가 목격하지 못했을 순간과 장면들이 포함된 사진들도 있다. 모든 사진은 모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단순히 설명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 이 언어로 말했다”고 설명한다.

사진에 글이 더해지는 순간 한 장의 사진은 많은 함축적 의미를 담아낸다. 그저 본다는 행위에서 텍스트가 결합되면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인간의 감정이 스며들게 된다.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관계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5부이자 시작에는 한 장의 사진과 글이 있다. ‘기운 없이 그는 방귀를 뀐다. 불을 켠다. 우유 통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새벽 5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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