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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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64>
  • 한지윤
  • 승인 2019.02.20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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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10분가량 걸었을까, 저 쪽에서 빈 택시 한 대가 왔다. 한 박사는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항도의 가톨릭 성당 알아요?”
하고 운전석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모른다고 하면 그만 둘 셈으로, 그러나 중년의 운전기사는
“예, 압니다.”
라고 하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한 박사는 차에 올라탔다.
마테오 신부는 생각지도 않았던 한 박사가 뜻밖에 나타난 것을 보고 신도가 한 사람 늘었는데 라고 여길지 모른다고 한 박사는 생각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한 박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신자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단지 박 여사와 신부의 사이를 생각하거나 신부의 됨됨이가 마음에 든다는 것뿐이다.
항도 성당은 국도에서 조금 옆길로 빠진 언덕위에 서 있었다. 오래 되지는 않은 듯한 건물이었다. 앞들은 석양을 받아서 퍽 밝고 조용했다. 사제관의 계단을 오르면서 신부가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 편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나온 여자에게 신부님이 계신가 하고 물어 보았다.
“신부님은 계십니다.”
하고 대답한 뒤에 여자는 안으로 들어갔다.
곧 무릎이 다 헤진 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마테오 신부가 나와서 반겼다.

“이 앞을 지나가다 탑이 보이기에 어떤 곳인가 싶어 들렸지요.”
하느님은 알고 있을 거짓말을 했다.
“바쁘지 않은 지요……”
“아니, 끝났어요. 오전 중에는 걸스카우트, 오후 1시부터는 어린이 교리문답, 2시 반 부터는 청년 집회였는데 이제 전부 끝나고 지금부터 안식일의 맥주라도 마실 참으로 있었는데 잘 됐어요. 한 잔 합시다. 어서 올라오시죠.”
한 박사는 구두를 벗고 2층의 멀리 바다가 보이는 신부의 응접실 겸 서재에 안내되었다.
“박 여사 만났어요?”
신부는 한 박사에게 말했다.
“오늘 만났어요.”
한 박사가 대답했다.
신부는 한 쪽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 옆 찬장에서 가지고 온 두 개의 컵에 맥주를 가득 채웠다.
“나쁘지 않은 생활인데요.”
한 박사는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그렇게 보입니까?”
마테오 신부는 한 박사의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신부님은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집안이란 여자가 없으면 정리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내 체험으론 그렇습니다.”
“이 곳 가정부는 치우는 데 선수죠. 나는 정리를 하는 편이 아니거든.”
“가정부라는 직업에서는 또 좋지만 여편네는 안돼요. 새 같거든. 둥지를 튼단 말입니다. 이것저것 쪼아 물고 들어와요.”
맥주가 들어가자 한 박사는 문득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그 순간 혹시 알콜 중독자가 아닌가 하고 한 박사는 느꼈다.
“그렇게 말하니 얘긴데, 새란 것 말요. 1주일 정도 덧문을 열지 않았더니 새란 녀석이 와서 문 위에 둥지를 틀잖겠어요.”
“일평생을 독신으로 지낸다는 것은 아마 대단한 일 일테죠, 라는 평범한 질문을 하지 않을 테지만…… 박연옥 누님의 이야기로는 신부님은 스스로 이런 길을 선택했다고 하니 마음편한 생활이라고 말씀드리면 어떨까요?”
“글쎄요……”
마테오 신부는 싱긋이 웃었다.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지만 가치관의 변혁이 되는 일이 신앙을 갖는 것이지요. 가령 아이가 없다, 자기의 존재가 눈에 보일 수 있는 형태로 자기 자신의 사후에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벌써 답이 나와 있지요.”
“어떤 형태로?”

“생명이란 생물학적인 것만이 아니잖습니까. 좀 더 추상적인 생명관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지요. 생명이란 결국은 무엇인가를 주고 그것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므로……”
“전적으로 찬성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성이라든지 생식이라는 행위는 실로 단순한 원리에 불과하지요. 그 조직은 장대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말씀드린 대로 그 행위는 어느 쪽으로나 그다지 큰 사실은 아니죠.”
“맞습니다. 의사선생님에게는 이해가 되는군요.”
“성이 중대한 것이 된다면 그것은 태어나는 아이의 일생이라든지 특정 관계를 갖는 상대의 생활에 관계되는 점이지요. 그런 것이 없다면 성이란 대수롭지 않은 것 이예요.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그런 중대한 결과를 줄 대상이 없다는 것이 신부님의 생활의 괴로움이랄까요…”
한 박사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머릿속 에서는 오늘 만난 박선영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아무 관계가 없는 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박사 자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데 가담하고 말았다. 그것도 의도한 것도 아니고 기술상의 실패가 그렇게 했다.

헤어질 무렵 선영이란 여자는 아이를 낳아도 그 아버지의 이름 이외는 하나도 빼지 않고 사실 전부를 그대로 자기 아이에게 이야기 할 참으로 있다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소릴 하면 아이가 성격이 삐뚤어져.’라고 말했지만 선영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50대의 남자도 ‘전쟁 후였다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었어.’하고 벙글벙글 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 엄마는 나를 데리고 투신자살 직전까지 갔대.’라고 하면서 떠드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것이나 그 부모가 그 자식들에 대해 살인범이 될뻔한 케이스였으나 그 자식들은 이상하게도 그들의 부모를 원망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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