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동문네거리, 새 책방과 헌책방이 공존하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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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동문네거리, 새 책방과 헌책방이 공존하는 골목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4.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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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3〉


20~30년 전 헌책방 ‘사람들에게 지식의 안식처가 됐던 곳’
세월이 흘러 손님의 발길 뜸해진 헌책방 하나 둘 씩 문 닫아
카페서점 등 새로운 서점 실험을 하고 있는 곳엔 ‘희망적’
전주시에서 지정하는 ‘전주미래유산’임을 증명하는 책방들 


‘서점’이 신간을 파는 곳이라면, ‘헌책방’ 하면 왠지 고색창연한 냄새가 난다. 책이 귀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20~30년 전에는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헌책방은 이런 사람들에게 지식의 안식처가 돼주곤 했다.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는 알 수는 없어도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헌책은 이런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한껏 채워 주었다. 그래서인지 ‘헌책방에 대한 추억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책을 싸게 샀던 것’이라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경제적인 동기가 더 컸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헌책방의 매력이 경제적인 것으로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헌책방의 애틋한 면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 30여 곳의 헌책방 이젠 두 곳만 남아
전북의 도청소재지인 전주시 경원동에 가면 책방 골목으로도 불리는 동문 네거리 길이 있다. 옛 향취가 고르게 묻어나오는 이 거리는 전주사람들에게 ‘홍지서림 골목’으로 더 유명하다. 1980년대 홍지서림이 뿌리를 내린 이 골목에 헌책방이 뒤이어 하나둘씩 자리를 잡으면서 이곳은 전북을 대표하는 책방골목이 됐다. 전성기 때는 30여 곳에 이르는 헌책방이 자리 잡고 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도 10여 곳의 책방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줄줄이 폐업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두 곳만이 남아 책방골목이라 부르기도 무색한 지경이 됐다.

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길을 찾아주던 동문거리의 헌책방이 지금은 자신의 길을 잃은 것일까.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겐 역사였던 이곳의 헌책 냄새가 이제 조금씩 그 자리를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진 헌책방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았고 현재는 두 곳만이 남아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주사람들은 이곳을 전주의 책방골목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에는 전주의 대형서점이었던 홍지서림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주의 헌책방으로 불리는 한가네서점과 일신서림이 있다. 비사벌서점, 꼬비서점, 태양서점이 문을 닫으면서 단 두 곳의 헌책방만 남게 된 것이다. 새책방과 헌책방이 공존하고 있는 골목이다.  전주 사람들은 이 골목을 홍지서림이라는 전주의 명소가 있기에 아직 서점 거리는 유지되고 있다고 말한다. 전주 동문길의 홍지서림이 있는 책방골목의 모퉁이에 있는 아담한 3층 건물에 ‘동문서점’이라는  카페 서점이 새로 생겼다. 주인장은 “경원동 상가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당시에는 인기가 없어서 싼 매물로 나왔지만 내가 어릴 적 경원동은 전주의 중심이었다. 용머리 고개를 넘어 경원동으로 오면 그곳은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때만 해도 효자동은 논밭이 많았고 학교의 교실이 모자라 한 반에 아이들이 90명이나 되었다. 완전 옛날이야기 같다”며 “여하튼 경원동은 전주의 중심이었다. 매입 후 건물 보수 작업을 하고 임대를 내주었다. 지인은 오랫동안 카페를 하고 안 하고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계속 비워둘 수는 없었고, 매매냐 임대냐의 기로에서 나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바로 서점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였다. 지인에게 권리금을 주고 카페를 인수했고, 그리고 카페를 서점처럼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책과 테이블로 서점의 공간을 재창조했다”고 설명하며 카페서점인 동문서점을 차린 과정을 소개했다. 아무튼 전주의 책방골목인 동문동 거리엔 또 하나의 서점이 생겼다. 전주 동문길 114에서는 새로운 서점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서점이 생존할 것이냐 아니면 그냥 사라질 것이냐는 무모한 실험이다. “비즈니스적으로 따지자면 굳이 서점을 할 필요는 없다. 시세차익만 노리고 건물을 팔면 끝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점을 꼭 하고 싶었다”는 주인장의 의지가 오히려 더 큰 가치로 다가왔다. 그래서 꼭 이 서점이 살아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보는 이유다.
 

■ 전주의 헌책방 한가네서점과 일신서림

그 많던 책방골목엔 홍지서림과 동문서점 두 곳의 새 책방과 홍지서림과 붙어 있는 한가네서점과 일신서점 두 곳의 헌책방이 남아 있어 책방골목이라는 말리 무색해 졌다. 전주시는 이에 대한 방안으로 헌책방과 문학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는 ‘동문고서점’행사를 펼치는 등 골목재생사업을 위해 힘쓰는 중이다. 특히 홍지서림과 한가네서점에는 전주시에서 지정하는 ‘전주미래유산’임을 증명하는 명판이 붙어 있다. 전주의 어제가 만들어진 장소이며 동시에 오늘로 이어진 역사가 내일까지 존속해야 할 장소라는 의미다.

1978년부터 동문예술거리에서 40년 동안 인문학의 향기를 품어온 ‘한가네서점’의 최웅제 사장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이 한권의 책이 내 인생의 운명이 결정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너무나도 가슴 저미는 안타까운 사랑에 몇일 밤을 마음속으로 울고, 울었던 끝에 책이라는 위대한 친구를 알게 됐고 끝내는 서점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 전주시청 사거리에 밤이면 번쩍이던 ‘미원’이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쇼를 하던 전주의 상징적인 거대한 탑 ‘미원탑’이 우뚝 서있던 거리, 그 사거리로부터 팔달로 북쪽을 따라 30여개의 고서점(헌책방)들이 올망졸망하게, 정겹게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고 회고한다. 최 사장은 “그 맨 끝자락에 조그맣게 고서점(헌책방)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4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이젠 흰머리 할아버지가 되어버렸네요. 지나간 세월을 되짚어 생각해보니 참으로 세상이 빠르게 변했구나 싶기도 하며, 옛날 생각이 가끔씩 기억되기도 합니다. 70년대엔 거의 교과서 장사가 주축이 되었던 때이고, 책들이 무척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소위 신학기철이면 교과서를 구입하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빽빽이 붐비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쇠하고 나이가 들어 보이신 할머니 한분이 무언가 힘들게 한 자루를 들고 헌책방을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이걸 드릴 테니 내 불쌍한 엄마도 없는 손주 책을 달라고 밑고 끝도 없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자루를 풀어보니 검정 쌀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검정 쌀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노쇠하신 할머니가 손주의 교과서를 얻기 위해 오신 것을 알게 됐고, 교과서를 검정 쌀과 교환해 드렸는데 돌아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고 회고했다. 최 사장은 “시대흐름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가 보다”며 헌책방을 찾아 주고 “부디 없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남아주세요”라며 보존해 달라고 하는 고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한편 오랫동안 ‘첫째 집 책방’으로 불렸던 일신서림도 옛날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문 옆에 쌓여있는 철 지난 참고서도 그대로다. 찾아오는 손님을 반기는 모든 풍경은 변함이 없지만, 예전 같은 인기척과 호기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한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인기척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라디오 소리가 차분함을 울리고 있다. 헌책방이 쇠퇴하고 있다지만 일신서림에는 아직도 족히 2~3만 권이 넘는 책들로 가득 쌓여있다. 참고서, 소설책, 전문서적에서부터 관상, 풍수지리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다양한 책들이 세월을 머금으며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다양한 책 중에서도 그럴듯하고 매력 있는 책들은 책방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다. 이러한 보물창고를 다음에 찾아올 때는 또 누구의 어떤 추억을 보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또 다른 양서를 접하는 행복함을 상상도 해보지만, 한편으로는 30여 년째 일신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기용석(66) 사장의 한마디가 무겁게만 다가온다. “손님도 옛날만큼 오지 않고 책방을 따로 물려주거나 이어받을 사람도 없어요. 내가 그만두게 되면 문을 닫는 거죠.”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남아 있는 헌책방 골목이 계속 보존되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동참이 필요하다. 헌책방 골목의 향기를 만끽하며 헌책방을 찾아가 숨겨진 보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헌책방의 문화적 가치와 향기를 간직하면서 지역관광의 요소를 얹는 방식 등으로  지역을 특화할 수 있는 재생전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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