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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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78>
  • 한지윤
  • 승인 2019.05.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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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선영 미용실’ 이란 간판이 붙어있는 박선영의 미장원은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문에는 ‘정기휴일’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문을 밀어 보았다. 잠그지 않은 문이 쉽게 열렸다.
“어머나, 정말 오시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박선영은 붉은 색과 감색의 체크 원피스에 외출용인 듯한 임신복을 입고 안에서 달려 나왔다. 다른 사람은 없는 듯 집안은 조용했다.
“어머니는 ”
가게와 붙어있는 방에 안내되자 한 박사가 물었다.
“부산에 숙모님이 계세요. 오늘 거기에 간다고 가셨어요. 같이 있는 아가씨는 비가 이렇게 오는데 당일치기로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나갔어요.”
“아무튼 젊은 사람들은 발랄해서 좋아.”
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수술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 변명이랄까. 설명을 하고 싶어서 왔는데.”
하고 말을 시작하자
“아이, 선생님도, 다 끝난 것을 가지고……”
박선영은 한 박사의 말을 막았다.
“그건요, 저는 차라리 잘 됐다고 좋아하고 있는데요.”
“신문에서 읽었어요?”

한 박사는 호주머니에서 신문에서 잘라낸 기사를 박선영에게 보였다. 박선영은 받아서 천천히 읽고 나서는 한숨 같은 큰 숨을 내 쉬고는,
“어머, 이런 부모도 다 있어요? 이건 아이에게 모욕을 주는 건데……”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는 이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뱃속의 아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오히려 큰 덕이라도 본 기분 이예요. 지금 이 아이가 보배같이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좋은 일이지만, 목적대로 되지 않았는데, 수술비는 돌려 드려야지.”
한 박사는 뒷주머니에 넣고 온 봉투를 꺼냈다.
박선영은 잠시 놀란 듯하다가
“어머머, 선생님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부탁드린 것은 저였고 또 선생님은 수고를 하셨잖아요.”
봉투는 그대로 테이블의 증간쯤에 놓여져 있었다.
“임신 초인데 자극을 주었잖아요. 혹시 기형아라도 돼면 어쩌나 하고 늘 걱정이 돼요.”
박선영의 걱정은 모든 임신부들이 갖는 공통적인 걱정이다. 탈리도·마이드 이래로 임신 중의 임신부들은 약에 대해 신경과민까지 되어 있었다. 심하게는 감기약까지 거부하는 실정이다.
“그건 염려 없을 겁니다. 기형이라는 것은 극히 자연의 상태에서도 600에 하나 정도 있다고 해요. 100% 보증할 수는 없지만 직접으로 자극을 받았다면 유산이 됐지 임신이 계속될 리가 없어요. 임신이 계속 된다는 것은 안심해도 좋다고 보는데.”
“그래요? 그럼 안심이 돼요. 이 방에서 아이를 키울까하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가게는 5평 정도의 홀에 경대와 의자세트와 그 외에 미용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지금 한 박사가 안내되어 있는 방은 종업원의 휴식실로 부속실로 있는 방이었다.

“충분한데. 아이를 키우는 데는 자연이 무엇보다도 좋은 것이지.”
“전 보육원 같은 곳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싫어요. 열 달을 뱃속에 넣고 있다가 모처럼 낳았는데도 떼놓는다는 건 아무래도 싫어져요.”
“건전한 생각을 가진, 복 받은 여잔데.”
한 박사는 진실 되다 싶어 그렇게 말했다.
“아이란 항상 안아 주어야 건실하게 잘 커요. 알거나 모르거나 이야기도 해 주어야 돼요. 아이는 포근히 기댈 수 있는 안식이 필요하지. 동물원 사육과장을 하고 있는 사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능숙한 침팬지의 사육담당은 원숭이에게도 매일 이야기 해주고 있대요. 뜻은 통하지 않겠지만 정을 통한다고 하지. 선영씨는 훌륭해요. 정말 이 곳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에 주변의 심리적인 저항이 없나요?”
“전 말예요. 선생님. 거짓말하고 있어요.”
박선영은 퍽 즐겁다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여자들은 로맨틱하잖아요. 결혼하기로 되어있는 사람이 있었지요. 그 분이 암이란 것을 알고 내게 아이를 꼭 낳아 달라고 부탁하고 죽었어요. 그 유복자가 이 아이죠. 소설 같은 이야기죠?”
“그렇다면 가끔 슬픈 얼굴을 해야 할 텐데 너무 명랑해.”
“그이가 죽기 전에 울거나 슬퍼하면 화낼 거라고 하더라구요. 거짓말쟁이죠. 제가, 선생님.”
“거짓말도 아주 몹쓸 거짓말쟁인데.”
한 박사가 선영과 함께 웃었다.
“난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건 선영씨의 마음속에서 창작해 낸 진실이라고 생각돼.”
하고 한 박사는 덧붙였다.
박선영이 단팥죽을 만들었다고 해서 한박사는 사양하지 않고 먹기로 했다. 술꾼인 한 박사는 단팥죽 같은 단 것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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