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헌책방, 한국전쟁 직후 대구시청 부근이 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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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헌책방, 한국전쟁 직후 대구시청 부근이 본거지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08.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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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9>
재개발로 이전을 앞둔 대구 남문시장에서 63년의 세월을 지켜온 월계서점.

대구시청 헌책방거리,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에 10년 앞서 형성
동아전과, 필승, 하이라이트, 완전정복, 수학정석시리즈 등 효자 책
월계서점, 63년 동안 지켜왔던 자리 재개발로 인근으로 확장·이전
대구지역, 현재 남문시장, 대구시청, 대구역 근처 몇몇 헌책방 남아


대구지역에 헌책방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6·25한국전쟁 직후부터라고 한다. 대구시청 부근이 본거지였고 이어 일신학원을 지나 봉산동 가구골목 좌우편으로 진을 치며 남문시장, 계성고등학교 부근, 대구역 지하상가 쪽으로 확산돼 갔다는 설명이다. 피난시절 전시산업의 부산물이었던 대구시청 헌책방 거리는 서울의 청계천, 부산의 보수동, 광주의 계림동보다 10여 년 앞서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대구지역 헌책방은 1950년대 초 동인로터리 부근에 한두 명씩 좌판을 깔고 헌책을 팔기 시작했고, 장사가 잘되자 자연 헌책방 거리로 발전된 것이다. 당시에는 종이도 귀했고 인쇄기술도 미비해 책 한권을 사면 대물림했던 시절이다. 자녀들도 많고 경제사정도 어려워 이래저래 헌책밖에 선택의 대안이 없었던 시절이다. 1955년 8월 1차 교육과정이 고시되기 전까지 우리에겐 국정교과서 개념도 없었다. 1967년 당시 일부 국민(초등)학생들한테 무상으로 교과서가 지급되기 전엔 교사들조차 헌책으로 수업을 했던 시절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곧이어 입시전쟁이 터지고 막 바로 부교재 과수요를 불러왔다. 당시만 해도 동아전과, 필승, 하이라이트, 완전정복 시리즈, 송성문의 성문종합영어, 홍성대의 수학1·2정석 시리즈 등은 아직까지도 팔릴 정도로 헌책방의 특수를 가져다준 효자 책이었다. 헌책의 값은 그때나 지금이나 1000원, 2000원에서부터 정가의 50%선 안팎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문화패턴의 급변으로 헌책방은 점차 설자리를 잃는다. 복사기의 등장으로 치명타를 맞았고, 책대여점의 등장, 잦은 교과서 내용의 수정, PC의 등장 등으로 인해 헌책의 수요는 격감한다. 최대 위기는 책을 팔러오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요즘에는 고물상에서나 헌책을 찾아오는 시절이 됐다는 점이다. 명맥을 유지해나가는 헌책방들은 이런 흐름을 타개하기 위해 만화, 재고도서 전문점 등으로 구조조정을 하지만 대다수 전직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폐점한 대구시청 앞 대륙서점을 인수 확장이전을 앞두고 새건물로 이사중인 월계서점.

■ 월계서점, 헌책방 63년 세월 확장 이전
대구지역에는 현재 남문시장, 대구시청, 대구역 근처에 몇몇 헌책방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 중 대구시청 주변엔 동양서점, 평화서점, 규장각, 대륙서점 등이 있었으나 규장각과 대륙서점은 최근 폐업을 했다. 대구역 근처 역시 가나서점 등 2~3군데만 남아있는 실정이며, 남문시장 주변에는 63년간 자리를 지켜온 월계서점을 비롯해 대도서점, 코스모스서점, 해바라기서점 등이 남아있다. 하지만 월계서점은 최근 지역의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최근 폐업한 대륙서점 등 몇몇 헌책방을 인수해 헌책방으로써 63년 동안이나 지켜왔던 자리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로 확장해 이전 중이다.

이와 관련해 헌책방 골목에서 구둣방을 운영 중인 지역의 한 주민에 의하면 “이 골목은 예전에 수십 군데가 넘는 많은 서점들이 자리 잡았던 곳이었지만 10여 년 전쯤 10개 안팎으로 줄어들었고, 현재는 4~5군데만 남아있다”며 “그래도 대구지역 헌책방들을 인수해 바로 옆 골목으로 확장이전 중인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설명했다.

확장이전 중이어서 아직 간판도 없는 새로운 월계서점에는 주인도 없이 책장에는 많은 헌책들이 꼽혀져 있었고,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만이 책꽂이에서 헌책을 고르고 있었다.

헌책방을 찾은 한 주민은 “인근에 살고 있고, 헌책이 좋아 오래토록 헌책방을 찾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예전에는 대구 전역에 헌책방이 많았지만 요즘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대구에 아직 남은 헌책방과 서점 이름을 낱낱이 열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하향산업이라고 하기보다는 정말로 드물어진 헌책방에 대한 향수가 있다”며 “다행히 월계서점 사장님같이 사명감을 갖고 이 자리를 지켜주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했다.
 

■ 헌책방, 6·25직후 생겨 70~80년대 호황
대구에는 헌책방이 수십 곳씩 모여 군락을 이룬 곳이 세 군데가 있다. 대구시청 주변과 남산동 남문시장 주변, 대구역 굴다리로 불리는 네거리 지하도가 그곳이다. 이들 헌책방의 위치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헌책방이 대구시청을 중심으로 하고 그 주변에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헌책방의 위치가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대구시청 주변에서 처음으로 헌책방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역 굴다리 헌책방들도 헌책 장사가 잘되던 시절 시청 주변에서 뻗어 나왔다. 보다시피 현재는 거의 헌책방이 문을 닫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편 ‘헌책문화’를 지키기 위한 사명감으로 고군분투하는 곳도 있어 다행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의 ‘헌책방 골목’은 6·25한국전쟁 직후 하나둘 서점이 들어선 이후 1970년대에는 24곳이 운영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회고한다. 좌판까지 합치면 50곳이 넘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형서점이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까지 가세하면서 지금은 고작 4곳, 대도서점, 월계서점, 해바라기서점, 코스모스 북 만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 월계서점은 63년 동안 한 결 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지역이 재개발로 인해 이전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전을 계기로 최근 폐업한 대륙서점을 비롯한 몇몇 헌책방을 인수해 확장 이전하면서 폐업한 헌책방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대구의 헌책방 주인들 대부분은 적게는 40여 년, 많게는 60여 년 이상의 세월동안 헌책방을 지켜오며 외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대를 이어 헌책방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자기 서점을 차린 경우도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1970~80년대가 좋았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책을 읽고 싶어도 새 책을 사 볼 형편이 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신학기만 되면 교과서나 참고서를 사려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책을 구해서 갖다 놓으면 몇 시간도 안돼서 다 팔려 나갔고, 남이 쓰던 책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헌책방을 하는 사람들은 돈에 미련을 두면 안 돼. 좋은 책을 여러 사람에게 읽히게 하면 그걸로 만족이야. 요즘은 책을 읽고 나면 많이 버리잖아. 그럼 책은 어떻게 돼? 목숨이 다해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헌책방은 달라. 여기 책들은 누군가에게 다시 읽혀, 그래서 헌책방은 책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호흡기나 다름없다고” 헌책방 주인장의 이 얘기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그리고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새것이 좋은 줄로만 아는데 책은 지식보다 지혜가 담겨 있는 헌책이 좋다”면서 지식의 보고인 헌책사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 헌책에는 누군가의 추억과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런 것이 헌책과 헌책방만의 향기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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