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과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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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과 포퓰리즘
  • 전만수(본지 자문위원장)
  • 승인 2011.06.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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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이 이슈로 등장했다. 파장이 크다. 무상급식, 무상복지에 이어 뜨거운 감자 형국이다. 한나라당 황우여대표의 “대학 등록금을 최소한 반값으로 했으면 한다”는 발언으로 사회적 논란이 촉발 됐다. 촛불집회와 동맹휴업까지 야기 했다.

반값 등록금, 매우 자극적인 유혹이다. 귀가 번쩍 트인다. 당장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흥분하기에 충분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가 중 세 번째로 비싸고 정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은 턱없이 미흡하다. 우리나라의 정부장학금(4.4%)과 대출 비중(5.7%)은 OECD(11.4%, 8.8%)평균에 비해 아주 열악하다.

비싼 등록금은 정부 정책의 부재가 무엇보다도 큰 원인이다. 대표적인 정책오류 부분이 교육정책이고 보면 이해되는 대목도 있다. 관심도 큰 만큼 사공도 많다. 분위기에 휩쓸려 멀리 보는 정책을 추진키 어려움도 있었다. 책임지는 자세로 미래를 예비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등록금이 비싸든 저렴하든 대학에 가겠다고 아우성인데,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고학력 지향의 사회구조도 한몫했다. 방과 후 언어학원 수강은 OECD 평균의 3배이다. 교육열이 금메달감이다. 그 같은 교육열이 오늘의 국가 위상을 만들어놓은 동력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고 비싼 등록금을 기꺼이 지불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울며 겨자먹기식’ 이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한(恨)을 극복하고자 했던 선배세대 부모들의 서러운 몸부림 이었다. 교육당국은 시장의 수요가 넘치니 공급적인 애로사항만 조절하면 그만이었다. 교육 외적인 유효수요정책은 애당초 논의의 저편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교육 백년지대계는 공염불(空念佛) 이었다. 무책임을 넘어 무감각한 정부의 직무유기기적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이제라도 공론화(公論化)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다. “터무니 없이 비싼 대학 수업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명제다. 그렇다고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느닷없이 반값의 피켓을 들고 나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민주당의 당론처럼 당장 시행은 더더욱 넌센스다. 결코 흥분해서 급하게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재정이 수반되는 정책은 우선순위와 합리적인 소요재원 마련 방안이 전제되어야한다. 교육현장의 상황과 미래 비전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등록금을 인하하자는데 이의를 달 국민은 없다. 정부는 사회적 함의를 바탕으로 로드맵을 제시하여야 한다. 교육제도 선진국들의 좋은 제도를 부분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장 반값이 아니라 OECD 국가평균의 몇 번째 수준을 목표치로 정하자. 가령 열 번째라든가 경제규모에 걸맞게 열두 번째라든가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실적 재원조달 방안을 다각화하여 목표수준 도달시기를 방점하여 제시하여야한다.

로드맵 제안과 함께 사전적으로 선행해야 할 부분이 있다. 2016년이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수와 대학 입학 정원이 균형점을 이룬다. 우선 경쟁력이 취약한 사립대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 시행중인 감사원의 대대적인 사립대학의 감사는 경쟁력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둘째, 기여 입학제도의 도입을 미룰 필요가 없다.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더 많다. 이미 사회적 여론도 조성되어 있다. 6월 21일자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미디어 리서치 조사 결과 응답자의 60.9%가 기여입학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이미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세금을 많이 내고 사회적 기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존중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셋째,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몇 가지가 소프트웨어적 원칙부분이다. 대학은 사회적 공공재를 양성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초·중·고와 달리 개인의 지적재화 형성 부분이 더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졸 실업문제의 심각성과 함께 고졸이하 노동자가 턱 없이 부족한 고용 구조의 왜곡이 심한 나라다. 고학력 노동력은 일종의 악화(惡貨)일 수 있다. 여전히 3D 업종은 외국인 근로자의 몫이다.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대학 교육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대학생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평등정책은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다. 상대적 평등원칙을 유지해야한다. 예상치 못했던 사회적 문제로 불발에 그쳤으나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시도했던 학점페널티제도의 도입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졸업정원제를 반드시 실시해야한다. 대학이 간판으로서 작동되는 시스템에서 경쟁력을 갖는 글로벌 인재육성은 물론 세계유수의 대학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공부하는 대학생, 연구하는 교수가 모인 성스러운 아카데미로 거듭나는 계기로 만들어야한다.

등록금문제에 관한 해법은 이미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제시 되었다. 문제는 정치권의 무분별한 포퓰리즘 망령이다. 가벼움과 무책임성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포퓰리즘 경쟁이 악순환으로 확대 재생산되면 나라 말아먹기 십상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반값등록금 시위’에 다녀와서 전격적으로 당론을 바꿨다. 당초 저소득 계층부터 시행하려던 방침을 전격 시행하기로 당론을 변경하였다. 명백한 포퓰리즘이다. 조정된 당론이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무책임하다’는 원론적 부메랑에 노출되어 있다. 이슈선점의 반전을 노린 카드로 썼는지는 모르나 분당선거와는 다르다. 결국은 책임을 져야한다. 두고 볼 일이다.

어느 경우에도 여당은 여당다워야 한다. 야당이 포퓰리즘에 의존하더라도 여당은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여당다운 무게가 과거 같지 않다. 무책임하게도 대책도 없이 덜컥 반값 등록금을 제기하였다. 판사출신인 황우여 대표 진정으로 우려된다. 정치에서 이슈만을 선점했다고 능사는 아니다. 부메랑의 역사적 교훈을 무서워해야한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여당이다. 다급하다고 포퓰리즘에 의존하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과거 남미 아르헨티나의 교훈까지 갈 필요도 없다. 소위 남부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의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가? 포퓰리즘에 의존한 과도한 복지비용이 원인이었다. 그리스는 이미 디폴트(국가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래저래 내년 총선과 대선은 무상복지와 반값 등록금이라는 포퓰리즘의 레토릭(수사학)이 정책 이슈가 될 듯하다. 혹자는 ‘민생’이라는 화두로 포장하지만 다소 이격이 있다. 최근 20여년간의 선거 결과를 분석해보면 유권자의 선택은 절묘했고 메시지가 분명했다. 대단히 현명한 결과를 보여 주었다. 내년은 선거 해이다. 정치권이 아무리 포퓰리즘으로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유권자는 중심을 잡아야한다. ‘공짜점심은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한다. 국가 정책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은 합리적 선택을 할 의무가 있다. 국가미래도 결국은 소비자인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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