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공무원을 팽(烹)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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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공무원을 팽(烹)해야 하나…
  • 정세인 디트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1.07.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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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기강 확립 위한 강력한 대책 필요하다


정세인 디트뉴스 편집위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종로의 한 다리 위에 임시로 커다란 아궁이를 놓고 그곳에 가마솥을 건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게 나무를 늘어놓는다. 아궁이 앞에 병풍을 치고 군막을 둘러 재판석을 만들어 포도대장이 앉는다. 그리고는 몸을 묶은 죄인을 대령, 가마솥의 나무뚜껑 위에 앉힌다. 포도대장은 엄숙하게 죄명을 설명하고 처형을 하명하면 가마솥에 미지근한 물을 담가 죄인을 처박기도 한다. 아니면 죄인을 몰아넣고 솥뚜껑을 닫은 다음 아궁이에 불을 때는 시늉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말 서울에 와 형정에 관여했던 한 일본인의 눈에 비친 부패한 관리에 대한 형 집행 모습이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재물을 탐한 관리에 대한 팽형(烹刑)의 집행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서울의 옛 지지(地誌)인 한경식략(漢京識略)에는 부패한 관리에게 팽형을 처한 것으로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팽은 물에 삶아 죽이는 형이다. 그러기에 비정하고 끔찍한 형벌이다.

조선시대 때 독직(瀆職)행위를 한 관리를 실제로 삶아 죽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삶아 죽이지는 않았더라도 앞서 일본인이 기술한대로 백성들이 볼 수 있는 대로에서 팽을 하는 시늉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삶는 시늉에 그친 형이지만 죄인은 가족에게 인도되면서 산사람처럼 행동해서도 안 되고, 인도받은 가족들도 슬프게 호곡을 하며 상례에 준하여 집으로 운반해야 했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독직 죄인은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공식적으로 친척을 만나서도 안 되며 오로지 집에 갇혀 살아가야 했다.

조선시대 땐 부패한 관리에게 팽형을 가하고 공민권 박탈하고 격리시켜
우리 선조들은 왜 나라의 재물을 탐하거나 백성들을 괴롭힌 탐관오리에게 삶아 죽이는 비정한 팽형을 가했을까. 실제 삶아 죽이지는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삶는 시늉을 하고 여생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버리는 형벌에 처했을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관리를 삶는 공개형이었으니 스릴도 있고 또 그동안 당해왔던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의미도 있었으리라.

그동안 우리는 정권이 바뀌거나 정권말기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부정부패척결운동이었다. 부정부패척결운동은 대부분 공직사회가 우선 대상이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하고 또한 비리도 많았다는 얘기다. 서정쇄신이니 정화, 사정 등 시대적으로 내세운 용어도 다양했다.

그렇지만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대책보다는 정권유지나 강화차원에서 동원한 반짝 운동에 그쳐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중앙이나 지방자치단체를 가릴 것 없이 공직비리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저축은행과 관련한 금융감독원 직원들의 비리를 비롯해 국토해양부 직원들이 연루된 향응 연찬회 파문 등도 우리 공직부패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다.

한 언론사가 중앙부처 45곳의 징계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직원 비위사건이 한 건도 적발되지 않은 청렴기관은 달랑 4곳에 그치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비리를 저질러 파면·정직·견책 등 징계를 받은 공무원이 무려 7754명에 달했다는 것이다. 매일 7명의 공무원이 비리로 처벌받은 셈이다.

과거 수많은 부패 척결운동에도 불구 공직비리 사라지지 않아
이같은 집계도 문제가 불거져 사직당국에 적발된 건수에 불과하다. 금품수수나 향응 등이 공직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고려할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적발된 공직자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금품을 수수하거나 공금을 횡령해도 징계는 품위손상이나 복무규정위반 등이 고작이다.

정부가 최근 들어 강도 높은 사정을 칼을 들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직비리 척결을 여러 차례 다짐하고 있고 이에 발맞춰 청와대와 총리실, 감사원과 검찰·경찰 등이 대대적인 감찰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청와대는 이와 더불어 이번 기회에 부패와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벌써부터 중앙 부처를 비롯해 각급 산하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다. 일부 기관에서는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고 향응을 받지 않겠다는 등 자정결의가 잇따르고 있다. 또한 일상 감사제를 도입하고 공직윤리 기준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내부 기강을 잡겠다고 북새통이다.

정부 대대적인 감찰활동 예고...공직사회 초긴장 상태
반면 공직사회 일각에선 과거 정권에서도 벌여왔던 일시적인 기강잡기 과정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정권말기 흐트러진 기강을 잡기위한 반짝운동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몸은 움추리고 있으면서도 전례에 비춰 보며 지나가는 한차례의 소나기만 피해가면 될 것이라는 공직자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공직부패는 그 뿌리가 깊고 구조적인 측면이 강하다. 대대적인 감찰활동을 벌인다고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가 뽑힐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감찰활동을 벌이면 일시적으로 수그러드는 모양새는 보일지 모르지만 그 뿌리는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권침해 논란이 될지 모르지만 극약처방을 내리는 것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한 때 공직자 청렴의 모델 국가로 삼아 벤치마킹하기에 바빴던 싱가포르의 경우 아직도 태형(笞刑·곤장형)이 존재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강간 등 특정 범죄에 한해 시행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권논란에도 불구하고 범죄예방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며 태형을 고집하고 있다.

뿌리 깊은 공직사회 비리근절위해 팽형까지도 검토해야
비위 사건에 연루돼 적발된 공무원이 운이 나빠서 시범 케이스에 걸린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에선 공직기강이 잡힐 리 없다. 비리를 저지르다 걸려도 지금처럼 솜방망이 처벌만 받으면 죄과가 면제되는 상황에서 부패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더구나 정치인 등 고위 공직자들의 경우 독직으로 징역을 살다가도 정치적인 타협에 의해 면제를 받아 거리를 활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싱가포르의 곤장까지는 아닐지라도 우리 선조들이 부패한 관리에게 팽형을 가했던 이유를 음미해 보고 한번쯤 도입을 검토해볼만한 형벌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물론 인권침해 논란에 휩싸일 것은 뻔 하지만 형 집행방법을 현대화(?)해서 말이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독직으로 백성의 원성을 샀던 공무원에게 팽형을 가하고 살아있는 시체로 여생을 보내게 했던 우리 선조들의 부패척결의지를 단순한 과거의 사실(史實)로만 방치할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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