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앞에는 또 다시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임진년 흑룡의 해,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해 아침을 맞이하면서 그동안 홍주신문을 아껴주시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구독해주시는 7000여 독자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홍주신문이 창간한지 3년을 맞이하면서 오늘이 있기까지 애독자 여러분들이 변함없는 애정으로 성원과 격려를 주신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올해부터 홍주신문은 발행부수 공개와 함께 1만 명의 애독가족도 탄생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홍주신문이 새롭게 탄생한지 3년, 충남도청신도시 기공식 3년만인 올해 충청남도청 홍성시대 개막을 맞이합니다. 앞으로 홍주신문의 진실성과 믿음이 깊게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면서 흑룡과 3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흑룡은 참을성이 많고 대단한 용기와 기백을 가진 동물이며,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기질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또 우리의 삶과 인생에 있어서 3이라는 숫자는 굉장히 의미 있는 숫자이고 복된 숫자이며, 고대사회에서는 신성한 숫자요, 기본적인 숫자이며 또한 안정적인 숫자라고 합니다. 3은 천계의 숫자로 평가하여 육체의 숫자인 4와 합쳐서 7이라는 성스러운 숫자를 만들어내며, 또한 4를 곱하게 되면 12라는 일년의 개월 수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인간을 육체, 혼, 영으로 보고, 탄생, 삶, 죽음으로 3등분하여 일생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든 일의 구성을 처음, 중간, 끝으로 3등분하고, 시간의 구성을 과거, 현재, 미래로 보며, 달의 구성을 초승달, 반달, 보름달로 3등분 합니다. 가톨릭이나 기독교에서의 3은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데, 3은 완전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불교에서는 삼보(세 개의 보물)라 하여 부처, 부처의 가르침, 승려를 나타냅니다. 도교에서는 평형을 나타내어 보통 3일의 중심점을 살펴보면서 그 무게 중심이 어디인지를 살펴봅니다. 처음, 중간, 끝의 세 개를 합치면 ‘모든’을 의미하며, 세계는 하늘, 땅, 바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첩의 효과적인 면으로 볼 때, 한번이나 두 번은 우연으로 보며, 세 번은 필연으로 봅니다. 홍주신문은 우리나라 지역신문 20여년의 역사 속에서 이제 3년을 채우고 있지만, 흑룡과 3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우물 안 개구리로 안주하려는 자세를 과감히 벗어버릴 것입니다. 홍주신문은 지구촌 시대에 걸맞게 지역과 주민들을 먼저 생각하는 정보 제공매체로서의 내공을 쌓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홍주신문 애독자 여러분!
새해 홍성의 최대 변화라면 홍주 천년의 역사와 문화위에 새로운 충남도청시대가 열리며, 또 한 겹의 새로운 역사와 문화적 창조가 예고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가슴의 품에 안고서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창조하는 지성적 대중의 시대, 소박한 민중의 시대라는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식으로 무장된 민중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체득하면서 주체적으로 시대를 변화시키는 권력의지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비로소 소수세력이 소통하던 권력의 시대에서, 민중 다수의 대중권력의 시대로 재편되는 과도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지배자와 전통미디어 시대에서 민중 다수가 정보를 수집하고 생산해 비판하고 전파하는 개인미디어 시대가 담론시장, 즉 공론의 시대를 활짝 열고 있는 것입니다. 공론의 장은 항상 혼란스러운 법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상적인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통의 기본은 경청과 공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감의 이면에는 희망과 행복, 양보가 항상 생존하고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소통과 공감, 양보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삶속에서 귀와 눈에 거슬리는 것, 소소한 것, 입장이 다른 것, 대의가 아닌 것, 진실을 묻고 왜곡하는 것,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 다르다고 다투는 것 등을 포함해 경청하고 공감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입니다. 공감을 위해서는 쌍방향 소통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론의 장을 정착시켜 담론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일방향 소통은 그 어느 권위적인 독재보다도 무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민중과 함께 공감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현실입니다. 공감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지만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 공감형성의 여건을 악화시키는 현상에서 찾는다면, 오늘날 공감의 형성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감정적 소통이 중요한 시대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는 삶과 관련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생활과 밀착된 문제에 관심이 많게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동시에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비감, 냉철함, 권위적인 것보다는 인간적이고 때로는 나약한 모습에서 사람들은 공감의 포인트를 찾게 될 것입니다. 공감의 의미는 사람이나 사물, 현상 등과 공감하는 자신의 사이에서 차이를 인식하면서도 심리적 동일성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이나 슬픔,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는 것이 바로 공감입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행동에 뜻을 같이하는 동의(同議)와는 다릅니다. 공감이라는 것이 다분히 감정적인 영역인 반면, 동의는 논리적, 이성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공감은 감성(感性)과도 차이가 있으며, 이성(理性)이 아닌 오감(五感)으로 외부의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라지만 사회적 관계에서 공감은 감성과 달리 상대방의 양방향적 소통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공감능력은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일종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감을 주목해야 되며, 삶과 세상을 바꾸게 되는 이유입니다. 선거의 해 2012년, 우리의 정치는 민중의 다양한 감성의 변화와 지적 상상력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새해 아침을 맞으면서 홍주신문은 사소한 약속이라도 반드시 실천한다는 심정으로 정치에 절망한 이반된 민심에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홍성발전과 홍성사람들을 위한 공감의 새로운 희망 빛을 기대해 봅니다.
언론의 출발점은 언론의 윤리의식, 종착점은 사회적 책임
올해는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과거에서 경험하듯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경계할 것은 정치와 언론의 영역은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정치권력보다 언론권력이 힘이 더 세졌다는 현실 변화 속에서 언론이 절대 오만해서는 안 될 것이며, 정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언론은 국민에게, 지역주민들에게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리고, 정당한 논리로 논평하는 것이 존재의의 입니다. 논리에 있어서는 보수, 진보 등의 차이가 허용되겠지만 사실관계 전달은 정확하고 진실 되어야 합니다.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은 커지고 있는데 반해 신뢰도는 평균이하라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언론이 다른 부문에 비해 위력적인데 정작 그 힘을 쓰는 것은 성숙치 못했다는 사회적 평가일 것입니다. 사이비언론과 왜곡보도 언론을 향해 독자들은 미래의 사람들과 폭넓은 영역에서 삶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정직하고 공정한 새로운 언론 제품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출발점은 언론의 윤리의식이며, 종착점은 사회적 책임입니다. 언론인의 자기관리와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회 정의를 확립하는 활력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홍주신문은 이러한 점을 명심하고 철저히 실천하면서, 새해에는 더욱 심화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애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홍주신문의 전략적 구상의 틀을 꼼꼼하게 다시 짜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홍주신문이 홍성과 홍성사람들을 위한 올곧은 지역신문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변함없는 성원과 격려를, 또한 적극적인 관심과 질책을 당부 드립니다. 올해에도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을 순조롭게 성취하시기를 진심으로 희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