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시골마을의 정겨움이 가득한 상유정마을 시골마을의 정겨움이 가득한 상유정마을 신정리 상유정마을은 홍북읍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동북으로는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응봉면 계정리와 맞닿아 있다. 제룡산을 기준으로 홍북읍과 예산군으로 나눠지는데 상유정은 제룡산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상유정마을에는 유씨, 전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살고 있지만 일찍이 풍천임씨가 터를 잡고 살아온 것으로 알려진다. 풍천임씨는 임경지가 마을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또한 구씨 부자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천석군이라 불리던 구씨 부자는 ‘씨천석’이라 불릴 만큼 큰 부자였다고 한다. 부자이기는 했지만 자손이 없어 구씨 후손은 없다.상유정마을 뒷산 정상에는 돌박재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바위는 옛날 삽교천 일대가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3-23 09:09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족 같은 생미마을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족 같은 생미마을 사람들 장곡면 도산리는 1리와 2리 2개 행정리로 구분되는데 1965년에 합구됐다가 1987년에 다시 나눠졌다. 1914년 장곡면이 편제됐을 때 지금의 마을회관이 있던 자리에 면사무소가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민가가 많고 길목이 좁다는 이유로 1931년 6월에 현재의 면사무소 자리로 이전했다. 오서산에서 내려오는 생미냇갈과 주변으로 형성된 넓은 도산들의 쌀이 품질이 좋다고 해서 도산1리 ‘생미’, 도산2리 ‘오미’ 등 쌀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생미는 도산1리를 일컫는 지명이기도 하다. 생미냇갈은 오서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삽교천을 말한다. 박순인 부녀회장과 주민 이화자 씨는 “그 냇가가 옛날에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며 “배추도 씻고 빨래도 하면 깨끗하게 빨리고 했는데 2000년 즈음부터 송사리가 살지 않기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3-16 09:02 물 많고 황새가 사는 양지바른 대영리마을 사람들 물 많고 황새가 사는 양지바른 대영리마을 사람들 홍동면 대영리는 본래 금동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조리, 요곡리, 가곡리, 영촌, 한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해 대조와 영촌의 이름을 따서 대영리라 해 홍동면에 편입됐다. 대영리는 대영마을 1개의 마을로 구성돼있다. 예전에는 대영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은 ‘천봉터마을’이라 불렀다. 이 지명은 마을에 1000호가 거주한다고 해서 전해지기도 하고 병사가 1000명이 쉬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현재 천봉터마을은 대영리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영리’라는 지명 역시 대조동과 영촌의 앞 글자를 딴 것이라고 전해진다.이밖에도 천봉터마을 서북쪽에 위치한 지형이 까치 형국인 가작터마을, 청봉터 서남쪽에 위치한 물이 많이 난다는 숭굼말마을, 가작터마을 서쪽에 위치하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3-08 09:02 달콤한 딸기 향 가득 퍼지는 화전마을 달콤한 딸기 향 가득 퍼지는 화전마을 금마면 화양리 화전마을은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명당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화전이라 부른다. 화전마을은 세 개 반으로 나누는데 1반 벌미굴 혹은 통안, 2반 증말, 3반 소눈골로 불린다. 통안이라는 지명은 마을의 형태가 통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다는데서 유래됐다. 증말은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중심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됐고, 소눈골은 소가 누워있는 와우현의 형국이라 부르게 됐다. 주민들은 소롱골이라 부른다.또한 왜목가리라고 부르는 지명이 있는데 ‘왜’라 부르는 물레방아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 1970년대 초반까지 물레방아를 사용했는데 개인 소유였지만 주민들이 방아를 찧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도구였다. 물레방아 뒤에 왜통보가 있어 그 보의 물을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렸다.화전마을 뒤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3-01 09:03 어기여라 존게 좋소, 흥겨운 가락이 흐르는 덕우마을 어기여라 존게 좋소, 흥겨운 가락이 흐르는 덕우마을 결성면 용호리는 조선시대 결성군 용천면 지역으로 와룡천이 용의 허리처럼 됐다해 용허리 또는 용호리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리, 두지동과 와리, 덕우리, 압곡리의 각 일부와 현내면의 박철리 일부를 병합해 용호리라 해 홍성군에 편입됐다. 덕우마을은 용호리의 북서쪽 끝에 위치하며 결성면에서 가장 큰 들판인 용호들에 접해있다. 용호들은 서산 AB지구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으로 그보다 더 이전에는 바다였던 지역이다.덕우마을은 조선시대 결성의 큰 장이었던 용호장이 열렸던 곳이다. 용호장은 광천장과 함께 홍성의 3대 시장으로 꼽혔었다. 특히 용호장의 소전은 장항선 내 가장 큰 시장이었다고 한다. 바닷길이 막히면서 용호장의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 폐장됐다. 덕우마을 조광성 이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2-22 09:08 천혜의 자연조건을 유지하고 지키는 하리마을 천혜의 자연조건을 유지하고 지키는 하리마을 광천읍 매현리 하리마을은 동쪽으로는 월림리 빙질마을, 서쪽으로는 백동마을, 남쪽으로는 신랑2동, 북쪽으로는 매현마을과 인접해있다. 하리마을은 지난 2007년 농촌테마마을로 농림부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미래지향적인 비전 마을로 ‘하누리’라는 예명으로 재탄생했다. 하누리는 하늘아래 인간과 자연, 전통이 어우러져 만복을 누리는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이다.하리마을은 신평이씨와 무주김씨가 오랫동안 세거하면서 살아왔다. 신평이씨는 24대, 무주김씨는 16대를 하리마을에서 대를 이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현재는 단양우씨와 경주김씨 집안이 대부분 살고 있다. 마을에 제일 먼저 터를 잡은 성씨는 단양우씨로 현재 12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데 14대가 이 마을에서 살아왔다. 하리마을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2-15 09:05 서해안고속도로 들어서며 동서로 나눠진 이동마을 서해안고속도로 들어서며 동서로 나눠진 이동마을 갈산면 행산리 이동마을(이장 김의식)은 우리말로 텃골 혹은 텃굴이라고 한다. 배꽃이 떨어지는 이화락지형(梨花落地形)의 명당이 있다는 마을이라 해 이동(梨洞) 혹은 배울이라고 부른다. 이동마을은 갈산면행정복지센터 소재지 동남쪽 방향으로 이동교를 건너 갈산면소재지에서 2km지점에 위치한다. 마을 동쪽으로는 쌍천리, 북쪽으로는 내갈리와 상촌리 노동, 서쪽으로 신기, 남쪽으로 목과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남쪽에는 해발 76m의 철마산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넓은 들판과 와룡천이 있다.이상근 총무는 “예전에 와룡천에 둠벙이 세 개 있었다. 비가 많이 와도 상시 파란색 물이 있었는데 1960년대 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우리 마을 사람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도 어른들에게 들었던 기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2-01 09:07 옹기종기 모여 신나게 노는 마을어르신들 옹기종기 모여 신나게 노는 마을어르신들 구항면 남산리는 동쪽으로 갈산면 동산리와 남산천을 경계로 연결돼 있는데 동산리 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남산리로 불렸다는 이야기와 마을 남쪽으로 산이 있다고 해서 남산리로 불린다는 말이 전해진다. 동북쪽으로는 공리, 갈산면 동산리와 경계며 남쪽은 장양리, 서쪽은 결성면 형산리, 북쪽은 쌍천리와 맞닿아 있어 구항면, 갈산면, 결성면의 3개면과 경계를 이룬다. 은하면 대율리와 태봉리의 경계를 이룬 산능성이 장양리를 거쳐 마을의 서쪽산 능선으로 결성면 형산리와 쌍천리를 경계로 산줄기가 끝나며 동쪽은 화룡천의 상류인 남산천으로 공리와 동산리로 경계가 되고 있다.남산마을(이장 이병도)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이들은 신평이씨와 안평이씨가 약 5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다. 마을에는 신평이씨 중 시조인 이지화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1-26 09:10 향긋하고 달콤한 딸기 향 가득 퍼지는 주봉마을 향긋하고 달콤한 딸기 향 가득 퍼지는 주봉마을 홍북읍 산수리는 예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산수가 수려하다 해 산수동(山水洞)이라 불린다. 마을 앞으로 삽교천의 큰 내가 흐르고 있어 용산리로 건너가려면 예전에는 나루를 이용하고는 했다. 갈미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건널 수 있었는데 물 건너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나루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1년에 벼 1말, 보리 1말을 사공에게 내며 간혹 나루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때마다 돈을 조금씩 냈다.냇물이 지나는 양쪽으로 산수리 평야가 발달되어 있는데 이를 산수리 평야라 부른다. 일제 강점기 신축년에 가뭄이 몹시 들어 그 해에는 벼를 먹은 집이 없었다고 한다. 저수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어 비가 와도 저장 능력이 없어 수시로 가뭄을 경험해야 했다. 이후 예당 저수지의 물이 보급되면서 그 후로 생활이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1-20 09:15 왕도 쉬었다 가는 청정오지, 왕지마을 왕도 쉬었다 가는 청정오지, 왕지마을 홍동면 수란리는 수란마을, 산양마을, 왕지마을 3개 마을로 구성돼 있다. 왕지마을은 왕지울, 왕졸이라고 불리며 ‘왕이 쉬었다 간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조선시대 이성계가 산양마을에 고려시대 충신을 신하로 삼기 위해 삼고초려하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수란리를 감싸고 있는 구룡산은 아홉 개의 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주민들 이야기에 의하면 아홉 개 산봉우리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고 한다. 원래 구룡산은 용이 누워있는 형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산의 기운이 좋아 그 정기를 끊어내지 않으면 근방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 해서 일제가 강제로 산의 허리를 토막냈다고 한다. 홍성군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위치한 수란리는 홍동면 일대가 넓게 보이는 환경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9-01-12 09:07 마을 주민 함께 같이 살자! 마을 주민 함께 같이 살자! 진죽마을의 주요 소득원은 고추, 감자, 고구마, 양파 등이며 전통한과를 겨울에 제조해 판매한다. 서산 A지구 간척사업이 있기 전에 진죽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때는 농업보다 바다와 관련한 어업이 주종을 이뤘다. 물고기잡이도 있지만 대부분 조개, 꼬막 등을 잡아 모아 갈산장이나 홍성장에 가서 팔았다. 교통편이 어려울 때여서 새벽같이 수레기고개를 넘어 장에 갔다가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함께 염전에서의 소금 생산도 주요 부분을 차지했다. 소금으로 봉급을 받은 사람들은 집에서 먹을 양을 제외하고 주변에 서는 시장에서 생필품과 교환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멀리까지 소금을 팔러간 경우도 있었는데 칠갑산을 넘어 공주까지 가기도 했다.이농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8-12-07 09:07 젊은이들이 나서서 만드는 마을만들기 젊은이들이 나서서 만드는 마을만들기 갈산면 부기리 진죽마을은 갈산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임해터널을 지나 약 3km 지점에 위치한다. 마을 동남쪽에는 삼불산 능선이 북서쪽으로 이어지면서 긴 능선과 골짜기가 발 모양처럼 형성돼 있다. 농경지는 밤까시골, 진죽골, 수레기골 등 각 골짜기마다 논이 계단식으로 형성돼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서산 A지구의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형성된 논이 적구내들과 함께 펼쳐져 있다. 진죽마을 가구수는 총 39호로 9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남자는 38명, 여자는 47명으로 여성의 비율이 높다.부기리는 부귀(富貴)와 소기(小基)의 이름을 따서 부기리가 됐다. 수레기골은 진죽마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물이 잘 나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레기골은 임해터널이 뚫리기 전 교통상황이 좋지 않을 마을신문 | 김옥선 기자 | 2018-12-01 09:18 김좌진 장군의 기상을 이어받은 신기마을 김좌진 장군의 기상을 이어받은 신기마을 갈산면 행산리 신기마을은 새터라고 부른다. 박대식 이장에 의하면 원래 함박골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도둑이 많이 들자 김해 김씨가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가시덤불과 칡넝쿨밖에 없던 곳을 새로 닦아 만들어 새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가구 수는 54가구이며 이 중 2가구가 귀촌했다. 마을 대부분이 고령층에 속하며 가장 낮은 연령대가 50대다.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벼농사를 지으며, 축산업에 임하는 가구는 6가구다.신기마을 동쪽으로는 이동, 북쪽으로는 상촌, 서쪽으로는 사혜, 남쪽으로는 목과와 원와마을이 위치한다. 마을 동쪽에는 철마산 줄기가 서쪽으로 내려와 낮은 구릉을 형성하고 와룡천까지 작은 농경지와 함께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 형상이 배의 형국이라 하여 농사를 지으면 백석을 하지 못한다고 전해 마을신문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20 09:07 축사 없어 청정한 오지, 내남마을 축사 없어 청정한 오지, 내남마을 은하면 학산리 내남마을은 1750년 어간에 편찬된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사곡면 남당리(南塘里)로 기록된다. 마을주민 이종범 씨에 의하면 남당리라는 지명은 남쪽에 있는 뒷산에 제당이 있어 남당리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광복 전후만 해도 이 당산에서 제를 올렸으나 이후 지내지 않게 됐다.이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학동과 거산의 이름을 따서 학산리라 하고 은하면에 편입됐다. 현재 내남마을은 2개 반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가구는 26가구로 이 중 귀농·귀촌가구는 5가구다. 내남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산촌마을로 마을 뒤에는 얕으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금리천이 흐른다. 내남마을 정지욱 이장은 금리천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초등학교 마을신문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07 09:09 소곤소곤 이야기를 건네는 속은리·능안마을 소곤소곤 이야기를 건네는 속은리·능안마을 행정2리는 속은리와 능안, 2개 마을로 구성돼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북서쪽으로는 속은리, 동북 방향으로는 능안마을이라 부른다. 능안마을은 마을 안에 능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능이 있었던 곳이 명당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능이 떠내려가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행정2리는 북쪽은 초록산, 동쪽은 천태산이 있고, 마을회관 앞에는 천태저수지가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지난 2009년 9월부터 행천낚시터로 개장돼 많은 낚시꾼들이 찾게 됐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저수지를 이용하는 낚시꾼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행정2리 윤일중 이장은 “주말이면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심지어 외부 쓰레기까지 가져와 버리고 가는 사람도 있 마을신문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31 09:02 하늘 아래 복 받은 동네, 상하중 마을 하늘 아래 복 받은 동네, 상하중 마을 홍동면 금평리로 들어서는 순간 미세먼지로 인해 답답했던 시야가 환해진다. 여름이면 초록이 주는 시원한 논 풍경이, 가을이 되면 황금빛 들녘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상하중 마을은 1960년대부터 최초의 유기농 농법이 시작된 마을로 주민 유운용 씨가 논보리를 심으며 품종개량을 하려고 했고, 모를 삼각형으로 심어 사람들이 ‘개발짝모’라고 칭하기도 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에는 주민들 대부분이 친환경 쌀을 생산했고 친환경 고추 농사도 함께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일거리는 훨씬 늘어났지만 마을 주민들 아무런 불만 없이 그 방식을 유지하면 살고 있다. 이제는 홍동면 금평리 상하중 마을이라 하면 유기농 특구로 대내외적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상하중은 귀농인들이 많은 마을로도 유명하다. 전체 가구 58가 마을신문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4 09:05 사라지지 않은 마을인심 가득한 훈훈하고 정겨운 마을 사라지지 않은 마을인심 가득한 훈훈하고 정겨운 마을 아침 10시, 회관에 들어서니 콩만 한 가득 놓여 있고 아무도 없다. 이주순 씨는 바닥에 털퍼덕 앉아 신문지를 넓게 폈다. 한웅큼 콩을 덜어 신문지에 펼치고 누런 양재기에 콩을 까 담기 시작한다. 30분 쯤 지났을까 우영자 씨가 들어온다.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모자를 벗어 던지고 이주순 씨 앞에 털퍼덕 앉아 빠른 속도로 콩을 깐다.“언니 오늘은 아무도 안 오나벼?”“그러게, 밥이라도 한 술 뜰라믄 지금은 와야 하는디, 콩 까러 온다고 했는디 다 어데 갔나벼.”“요놈의 햇콩으로 국수 해 먹으면 겁나 맛나는디.”“말하면 뭣혀.”우영자 씨는 88세로 정부호 씨와 함께 용당마을 최고령자다. 18살에 예산에서 시집 와 이웃들과 언니동생하며 친자매처럼 지낸다. 이주순 씨 역시 예산에서 22살에 시집 마을신문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17 09:07 200년 된 ‘용대기’와 두레풍물 전통의 배다리 200년 된 ‘용대기’와 두레풍물 전통의 배다리 결성면 형산리 주교는 ‘배다리’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로 고대시대에 바닷가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나 ‘해동지도’에도 서해의 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은하면을 지나 결성면 곳곳으로 스며든 모습을 보여준다. 그 때 이 마을까지 배가 들어와 ‘배다리’라는 이름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의 지형을 보더라도 전통시대에 냇가 양쪽으로 형성된 마을이 주교다.■ 귀농·귀촌 선호하는 청정지역주교는 오래 전 옛날 바닷물에 잠긴 갯벌이었을지도 모를 평평한 지형으로 주변의 여느 동네보다 넓은 평야를 가졌다. 농가도 들판을 따라 구릉지에 띄엄띄엄 흩어진 모습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1반은 윗톨미, 2반은 아랫톨미로 불리기도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 주교 대신 ‘톨미’라는 마을이름이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9-25 09:15 삼준산 아래 젖과 꿀이 흐르는 마을 삼준산 아래 젖과 꿀이 흐르는 마을 갈산면 가곡리 동막마을은 서산군 해미면과 고북면의 경계에 접한 삼준산(三峻山) 바로 아래 있다. 옛날부터 워낙 골짜기가 깊어 홍성군에서는 가장 오지 중 오지에 속한 산간벽지였다. 해발 490m의 삼준산은 홍성군에서 오서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명산이다. 높은 산봉우리 세 개가 형제처럼 나란히 걸쳐 있다고 해서 삼준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가난한 마을에 일어난 농업혁명동막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흔한 자연부락의 지명으로서 여기도 나름대로 유래가 있다. 마을 입구 동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산줄기가 막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동쪽 산줄기에 산막이 있다고 해서 동막으로 불려졌다는 해석도 있다. 또 동쪽 산줄기에 군막이 있었기 때문이라거나 마을에 돌이 많아서 그렇게 불려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9-15 09:19 갯벌체험과 산책, 서해안의 환상적인 관광명소 갯벌체험과 산책, 서해안의 환상적인 관광명소 서부면 상황리 속동은 서해안 천수만에 위치한 농어촌마을로 홍성 8경중 한 곳으로 지정될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서해안 임해관광도로가 개통된 후 탁 트인 바닷가로 형성된 넓은 갯벌은 체험객과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도로변 곳곳에는 가로공원이 조성돼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궁리포구에서부터 남당항까지 속동을 거쳐 달리는 해안가 드라이브 코스는 환상적이다.■ 행안부 지정 정보화마을속동은 원래 ‘묵골’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지금도 노인들 사이에서는 묵골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서부면지에는 한자로 묶을 속(束)자를 썼다고 하는데, 속동에 사는 사람이 밖으로 나가면 출세하지 못한다고 순수한 우리말로 지어진 묵골이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한자어인 마을신문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2018-09-08 09:12 처음처음123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