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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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자작
  • 최복내 칼럼위원
  • 승인 2020.01.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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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빨간머리 앤’에서 주인공 앤과 다이애나가 거닐던 캐나다 프린세스 에드워드 섬의 숲,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차이코프스키’에서 마차가 달리던 그 숲, ‘탁터지바고’에서 기차 창가에 비춰진 시베리아 파노라마 속의 숲, 중국을 통한 백두산을 오르면서 이들 예술 작품속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드리 자작나무의 백옥같이 흰 수피가 북방설원과 어우러지며 수해(樹海)를 이뤄 장관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가 자작나무의 일종인 박달나무이다.

우주(宇宙)에서 태양계에 속해있는 지구는 270만종의 생물들로 구성돼 있으며 그중 바다에100만종, 육지에 170만종의 동식물들이 나름대로의 보완재·대체재 역할을 하면서 생명을 유지해간다. 그리고 모든 생물들의 명명(命名)은 그 생물의 모양새와 의성(擬聲)에 의해 명명된다. 자작나무 역시 자작나무를 불에 태우면 유성분에 의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다. 

고대 게르만인 사이에서는 생명·생장·축복의 나무라고 생각했다. 자작나무 어린가지로 여자나 가축의 몸을 두들기면 다산을 약속하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젊은이가 자작나무로 여인을 가볍게 두들긴 후 가지를 선물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핀란드 사람들은 눈 내린 호수가에서 사우나를 하고 자작나무로 등을 두들기며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자연치유 요법에 이용됐으며, 잎에서 ‘자일리톨’이라는 정유 성분을 추출해 식품원료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모 제과 회사에서 원료를 수입하여 껌을 제조하는데 이용할 정도로 생활 속에서도 친근한 나무이다. 

자작나무 수피에 짙게 배어있는 정유물질은 불에 잘 타면서 습기에 강하기 때문에 젖은 나무로도 불을 피울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등산길에 비를 만나 숲속에서 야영할 때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유일한 땔감나무가 바로 자작나무이다. 또 우리가 결혼 행사를 품격 있게 표현할 때 ‘화촉(華燭)을 밝히다’라는 글을 쓴다. 결혼축하 메시지를 보낼 때도 ‘축, 화혼(華婚)’이라고 쓰는데 화(華)의 유래가 자작나무 화(樺)자에서 나무목 변을 뺀 것이 그 어원이라 한다.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이어 밝히면 행복을 부른다는 뜻이 담겨있다. 

자작나무는 박달나무와 사촌간이라 참나무만큼 단단하여 아시아 여진족들이 카누 배를 만들어 이용했으며 유럽에서는 가구 내장재와 펄프용재로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무껍질을 백화피(白樺皮)라 부르며 신장염 황달 폐결핵 등 각종 약재로 사용해 왔다. 특히 이뇨작용 해독작용 염증제거에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자작나무 수액은 고로쇠·거제수 수액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음용하고 있다. 

곡우(穀雨) 절기쯤에 수액을 채취 하는데 최근 기업에서 그 수액을 음료수로 개발 하고 상용화하여 출시 한 바 있다. 동유럽과 북유럽에서는 자작나무 수액을 식품·음료·화장품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맥주로도 만들어 즐겨 마시고 있다. 추운지방에서 하얀 눈밭에 하얀 살결을 드러내 놓고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주는 백의의 천사, 자작자작 귀엽고 예쁜 음으로 저만큼에서 수줍은 듯 아장아장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리고 겨울이 돌아올 때면 자꾸만 떠오르는 나무와 그 숲이다.

최복내<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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