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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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앨범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4.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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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신기하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다시 기억의 지층을 뚫고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는 것은 무의식이 보내는 축복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직장인들의 재택근무, 각종 모임 취소, 학교수업 온라인 강의 대체와 관련한 기사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 간 접촉을 줄이는 물리적 거리두기가 우리 일상을 강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캠페인은 오래 전 사건을 생각나게 했다.

겨울이 시작되는 11, 큰아이를 시댁 인근 종합병원에서 출산했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살다가 20대 중반에 엄마가 됐다.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아이 얼굴과 몸통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시부모님께 말씀드려 병원에 갔다. 황달이었다. 치료를 위해 아이는 입원을 해야 했다. 의사는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아이와의 물리적 거리두기의 시작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편히 누워서 내 몸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매일 오전·오후에는 시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광선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미안함과 그리운 마음에 나는 다시 옷을 주섬주섬 차려 입고, 버스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갔다고 해도 아이의 손을 잡을 수도, 안을 수도, 품에 안고 모유를 먹일 수도 없었다. 그저, 유리문 밖에서 광선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를 한없이 지켜보다가 눈물을 훔치고 돌아와야만 했다. 당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라도 뿜어냈기에 아이가 내 품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에 감염병이 대유행하고,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어 마음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봄이 왔다. 나뭇잎이 연둣빛으로 물들고, 나무마다 각기 꽃망울이 맺히고, 꽃을 피운다. 하늘은 파랗고 새들도 즐겁게 날아오른다. 사람들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다며 기쁨의 함성을 지른다. 봄꽃이 부르는 유혹에 넘어간 이들로 해당 지역은 사람들로 붐빈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는 엄중한 시국이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꽃을 보며 이야기하는 잠깐의 행복한 시간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우리 곁에 찾아온 봄을 바이러스 눈치를 보며 몰래 누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활짝 핀 봄꽃을 누리는 행복한 순간을 몸과 마음에 잘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은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찰칵 찰칵 담고 담는다. 코로나19로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들을 잠시나마 덜어내고, 행복을 저축하는 것처럼 느껴져 묘한 기분이 든다.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사람 간에 보이지 않는 거리를 4단계로 정의했다. 1단계는 친밀한 거리(15-46cm)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가능한 연인, 보호자와 어린이 사이로 자기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사적 공간이다. 2단계는 개인적 거리(46cm-1.2m), 경계심이 없는 친한 친구나, 직장 동료로 카페나 식당에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이다. 3단계는 사회적 거리(1.2m-3.6m)로 테이블을 두고 공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는 거리이며, 4단계는 공적 거리(3.6m이상)로 연설, 강연 등이 이뤄지는 거리이다. 아마도 현재, 물리적 거리두기를 힘들어하는 것은 사회적·공적 거리인 3·4단계보다 친밀하고 개인적 거리인 1·2단계를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아이가 아팠을 때,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사진으로 찍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뎌 냈을까? 돌이켜 보면,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는 고통의 시간을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의 연결을 통해 견뎌 낸 것 같다.

지금 우리는, 봄이 왔지만 마음껏 봄을 누릴 수 없다.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는 생소한 일상을 견디어 내기 위해서, 마음의 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곧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했던 시간을 간직한 추억의 앨범을 꺼내보면 어떨까? 어린 시절의 앨범이나, 손때가 묻은 물건, 추억의 장소를 떠올리며 그 때 그 시절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힘든 시간을 전화를 하고, SNS를 하면서 마음의 면역력을 기르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그리움을 참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이러스 눈치를 보며 살짝 만나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까? 만나고 싶은 마음과 참아야 한다는 마음을 잘 알아차려서, 각자가 지혜롭게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봄이 다 가기 전에, 바이러스가 끝나고, 그리운 얼굴을 만나는 사랑의 봄이 오면 좋겠다. 물리적 거리두기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오늘 시간을 내어 마음의 앨범을 꺼내어 보면 어떨까요? 뜻밖의 행복을 만나는 기쁨 누리시기를!

 

최명옥<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박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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