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해도 너무하는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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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해도 너무하는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 전만수 본지 자문위원장
  • 승인 2012.03.16 06:4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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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병의 월급을 40만원으로 올리고, 아니 50만원으로…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요즘 여야의 복지공약을 강제로 관전해야 하는 뒤틀린 속내가 나뿐일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남발하는 복지라는 이름의 공약(公約)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얼마나 많은 공약(空約)으로 귀착되어 정치의 신뢰를 저하시킬지는 모르겠으나 두 당이 펼치는 복지 광풍을 보기가 역겹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TF팀을 구성하여 견제구를 날릴까. 급기야 지식인 95명이 나서서 여야 모두에게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지만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오히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정당의 정책공약에 대하여 정부가 나서는 것은 건방지고 옳지 못하다는 반응이다. 그나마 정부가 나서서 중심을 잡아주니 다행이다. 그러나 힘이 빠진 청와대와 정부가 잠재 정치권력의 압박에 얼마나 초연할지 의문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공약으로 발표한 복지부문 공약이 실현되려면 연간 최대 67조원에서 적게는 43조원이 추가 소요되어 5년간 최대 340조원이 들어간다는 재경부의 TF팀의 추계다. 금년 복지예산 총액 92조6000억원의 2/3가 넘는 규모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더라도 복지관련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2050년에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부채가 137%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음을 주지할 때 아찔하다. 복지라는 것은 만지면 커지게 되어 있다. 한번 도입되면 재정 사정이 악화되었다고 시혜의 폭을 줄일 수가 없다. 한마디로 백(back)이 없는 성격의 물먹는 하마다. 제로섬 논리에 따르더라도 다른 곳에서 왜곡이 발생한다. 선택과 확대에 신중하고 진중해야 할 일이다.

영국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한국에서 부활하고 있다는 세인들의 평가는 비아냥을 넘어 한국 미래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선진 복지국가의 상징으로 부러움으로 염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로 인해 재정 압박에 장기간 휘둘려졌던 영국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역사적 교훈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영화 ‘철의여인’에서 마거리트 대처 수상을 연기한 메릴 스트립이 영광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기파 배우인 그의 연기력은 공지의 사실이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복지의 함정으로부터 유인된 자본주의 위기가 대처수상의 리더십이 재조명되는 세계적 분위기가 한 몫 하였음직도 하다. 대처 전수상을 상징하는 ‘대처이즘’은 ‘영국병’을 치유하고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되찾아주었다. 오늘날 대통령 선거를 앞둔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대하고 갈구하는 리더십의 표상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직한 한국인’ 제하의 사설에서 정치권의 무분별한 복지공약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을 극찬한 바 있다. “임기가 끝나면 미국이나 유럽이 그를 빌려다 써야 한다”는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예산의 증가속도가 너무 가파르면 빛으로 충당해야 한다.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은 “결국 감당할 길은 ‘국가부도’로 가든지, 청년들이 다 갚아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경고한다. 복지예산 TF팀의 분석에 대한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의 “유권자가 충분히 검증된 정보를 갖고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현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라는 말에 박수를 보낸다.

선거란 싸움과 시합의 성격을 함께 가진 경쟁으로 몰입한 선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최근 선거에 임하는 여야가 그런 상태다. 여당의 정권 위기와 야당의 정권탈환 가능성이 충돌하면서 민심 잡기에 모든 걸 거는 형국이다. 우선 ‘권력을 잡고보자’ 는 뜻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일수록 정도(正道)의 묵직한 발걸음이 필요한 법이다. 여야 지도부는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볼 일이다.

여야의 복지 포퓰리즘에 답답한 것은 국민이다. 선택의 귀착은 유권자의 몫이고 책임이다. 갈대와 같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게다가 유권자가 아무리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않을 자세가 되어있어도 복지부문에 대한 공약은 여야의 차별이 별반 없다. 장님의 코키리 키재기다. 민주주의 원칙 중의 하나인 보통선거는 최선의 조합 선택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으레껏 보다 덜 나쁜 선택이 강요된다. 선거를 앞둔 지금은 여의도에 여당(與黨)도 없고 야당(野黨)도 없다. 여당(餘黨)만 존재한다. 그저 정권에만 올인하고 있다. ‘정당은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한다’ 라는 원론과 민주주의 모순이 결합 된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게임인 한국적 대통령 중심제의 함정이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다.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민주주의 비용치고는 리스크가 너무 가혹하다.

경제학 교수출신으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지낸 중도좌파 정치인인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전 총리는 “포퓰리즘은 허상으로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선거철마다 광풍처럼 부는 포퓰리즘의 해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말 바꾸기로 대중에게 영합하는 리더를 경계해야 한다”며 포퓰리즘으로 치달았던 실비오 베를 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의 정책에 대해서 “복지천국을 만들기 위해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연금수령가능 연령대는 점차 올라가고 돌려받는 연금 수준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만 가져왔다”고 강조한다.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선 모든 국가 역량을 교육과 R&D 투자에 집중해야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균형과 평형의 시대를 원한다면 국부(國富)를 인재양성에 쏟아 부어야 한다. 그게 한국이 살아남는 길이다”는 그의 애정 어린 충고를 여야 지도부는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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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남 2012-04-05 02:19:11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하고 나서 복지라는 말이 화두가 된적은 극히 최근입니다. 총선이고 대선이고 온갖 장미빛 공약이 남발했었지만 복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죠. 진정한 복지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며 예선탈락한 선수가 다시 도전하는 패자부활의 기회와도 같은 겁니다. 당의 정체성을 떠나서 개념은 틀려도 지
향점은 같아야 하는 기본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남 2012-04-05 02:24:51
그나마 참여정부시절에 뼈대라도 만들어놨던 것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변질되고 수정된 결과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걸 모르시진 않겠죠. 예산 문제라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건물세우기나 도로포장같은 토건사업만 재검토해도 충분히 확보될 수 있으며 세제개편등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요컨데 의지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는거죠.

이기남 2012-04-05 02:32:35
그리고, 유럽에서 복지에 관련해서 영국은 강대국은 될망정 선진국은 못됩니다. 복지를 논하는데 있어서 우리나라가 롤모델로 삼아야 할 곳은 영국이나 미국같은 곳이 아니라 스웨덴이나 핀란드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의 국부가 늘고 국격이 올라간대서 국민까지 같이 가진 않습니다. 복지 포퓰리즘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경쟁과 성장을 강조한 지금의 현 정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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