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자손임에 자부심 갖고 살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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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자손임에 자부심 갖고 살아갈 것'
  • 이잎새 기자
  • 승인 2020.07.1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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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유족회 최숙자 회장
금마면 3·1운동 유족회 최숙자 회장은 최근‘사랑의 집 고쳐주기’를 통해 리모델링 된 집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횃불을 들고 철마산에 올라간 금마 독립운동가들
코로나19 시국 진정돼 광복절엔 활동 가능했으면

 

홍성은 3·1운동, 만세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나던 역사의 본고장이다. 최근 금마면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유공자 최중삼 선생의 자손이자 금마면 3·1운동 유족회의 회장임에도 최숙자 씨는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화장실, 너무 높아 사용이 불편한 부엌과 난방이 잘 되지 않는 방 등 녹록치 않은 주거환경 속에서 지내왔으나 김종희 홍동면장의 주선과 노석순 명예면장, 윤형주 해비타트 이사장 등의 후원이 있었던 ‘사랑의 집 고쳐주기’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성공적으로 리모델링된 가정에서 최숙자 씨는 결혼으로 홍동면에 이주해오기 전 거주하던 1919년 금마면에서의 3·1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금마면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최중삼, 민영갑, 조재학, 김재홍, 조한원, 이재만, 김종석 이렇게 7분이고,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184명입니다. 사람들과 낮에는 숨어있다가 밤에 나와 만세를 외치곤 했죠. 그러다가 들키면 징역살이를 하거나 태형 90대 형벌을 받았어요. 아버지께선 연극이 공연되는 순간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공연장에서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돼 징역 6개월을 받았죠.”

금마면 만세운동 주도자들은 독립운동에 함께하자고 홍동면과 장곡면 등 홍성 관내를 찾아다니며 선비들을 섭외하곤 했다. 4월 4일에는 횃불을 들고서 철마산에 올라가 운동을 진행했다. 이 횃불은 산에서 마치 봉화처럼 다른 읍면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만세를 외치자는 표식 역할을 했고, 철마산에 올라가면 아래에 홍성 7개 읍면이 모두 내려다보이는데, 횃불을 든 사람들이 가득해 마치 꽃밭 같은 모습이 펼쳐졌다고 한다.

태형을 맞은 사람은 상처가 심해 1~3년을 앓아누웠고, 도중에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잦았기에 태형을 선고받은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은 장사지낼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다행히 살아 돌아온 운동가들을 업어와 산에서 약초를 캐와서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해가며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됐다고 한다. 형벌에 처해져 범죄인명부에 기록돼 있던 이들은 해방 후 1963년에 사면됐다.

최숙자 씨가 회장으로 있는 ‘금마면 3·1운동 유족회’는 1983년 9월 23일 결성됐으며, 1984년 11월 24일에 기념비를 준공하고, 1985년부터 꾸준히 3·1절 행사를 통해 제향을 지내고 기념식을 함으로써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부득이하게 활동을 자제하고 있으나, 곧 있을 광복절에는 코로나19로 불안정한 사태가 조금이나마 진정되길 바라고 꼭 기념행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최근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던 애국지사 후손 찾기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어요. 나라에서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을 열심히 챙겨주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네요. 또한 아버지께서 하셨던 독립운동이 이렇게 후손인 내게도 혜택이 돼 돌아오니 정말 기쁘고 존경스럽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외침과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 훌륭히 성장할 수 있었다. 꼭 광복절이나 현충일이 아니더라도 항상 그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도 후세를 위해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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