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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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5
  • 한지윤
  • 승인 2020.11.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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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 장수는 말을 마치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대의 말이 옳다. 한시바삐 가림성으로 가야한다.”
백가는 심복 장수의 말대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주야로 행군하여 가림성으로 들어갔다. 한편 자객들의 칼에 맞은 동성왕은 다행히 즉사하지는 않고 대궐로 돌아간 후 며칠 안되어 의식을 회복하였다. 물론 여러군데 칼에 맞고 창에 찔리어 상세는 매우 위급하였다.
어느날 왕은 태자 사마(斯摩)와 병관좌평 연돌을 조용히 불렀다.
“도대체 어느놈의 소행인가?”
“백가놈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태자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괘씸한 놈! 과인이 진좌평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잘 못 써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후ㅡ”
왕은 지난날의 일을 되새기면서 길게 탄식하였다.
동성왕 8년 2월, 왕이 백가에게 위사좌평의 벼슬을 내리려 할 때였다. 병관좌평 진로는 왕에게 거듭 간하였다.
“백가는 성품이 고약하니 잔꾀가 많아서 크게 쓸 인물이 못되니 대왕께서 통찰하옵소서.”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백가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으며 한새 성을 맡기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당장 백가놈을 잡아들이도록 하라!”

왕은 거의 날마다 이를 북북 갈면서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상처가 터져 피가 흘렀다. 왕의 목숨은 드디어 위태하게 되었다.
“과인은 이젠 틀린 몸이다. 태자는 훗날 보위에 오르게 되면 부디 신하들의 말을 귀담아 듣도록 하라!”
마침내 동성왕은 태자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고 자객의 칼을 맞은 지 한 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
동성왕이 비명에 죽자 태자 사마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무령왕(武寧王)이었다. 무령왕은 왕위에 오르자 역신을 치고 부왕의 원수를 갚을 준비를 하였다.
그 이듬해 봄, 무령왕은 친히 군사 2천을 거느리고 가림성 하에 이르렀다. 새로 쌓은 가림성은 높고 험했으며, 백가는 진작부터 가림성의 방벽을 철통같이 해놓고 있었다. 왕은 성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음을 짐작하고 성내에 사람을 보내 백가에게 왕의 말을 전하게 하였다.
“과인이 옛정을 보아 그대의 목숨만은 부지해 줄테니 어서 나와 사죄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영영 역신이 되어 이 세상에 몸 둘 곳이 없을 것이다.”
왕의 말을 전해들은 백가는 일찌감치 항복하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새 임금이 등극한 이상 성공할 가망이 적다. 차라리 항복하고 목숨이나 부지하자. 왕이 태자로 있을 때 내가 베푼 은혜도 있고 정분이 두터웠으니 차마 죽이지야 않겠지!’
이렇게 생각한 백가는 다음날 이른 아침 성문을 열고 나와 왕 앞에 엎드렸다.
“이놈, 임금을 시해한 역적 놈! 이제 또 할 말이 무엇인가?”
무령왕의 목소리는 서릿발 같았다. 백가는 얼굴이 재색이 되어 변명하려 애썼다.

“옛정을 살피시와 살려주옵소서. 소인이 임금을 시해했단 것은 참으로 억울합니다. 그것은 철없는 수하군졸들이 저지른 죄로서 소인은 모르는 일입니다.”
“닥쳐! 무도한 임금을 폐하고 새 임금을 세운다고 한 것이 바로 네놈이 아니고 누구냐?”
왕의 손은 어느새 칼자루로 갔다. 백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움을 알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탄식하였다.
“예로부터 이기면 왕이요, 패하면 도적이라 했거늘, 내 당초에 도성으로 쳐들어갔던들 이럴 줄이 있었으랴! 무도한 임금은 죽었으나…”
“닥쳐라! 선왕은 그런 임금이 아니시다. 어지신 임금이 나중에 다소 잘못이 있었다기로서니 너 같은 역신들에게 이용될게 못된다. 네놈이 이날 이때까지 선왕을 모독하는 데는 더 용서할 수 없다. 칼을 받아라!”
무령왕의 손이 번쩍하더니 백가의 머리가 호박처럼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역신의 수급과 시신을 저기 백상에 내던져라!”
왕은 피 묻은 환도를 백가의 몸에 닦아 집에 꽂으며 명령하였다.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졸들은 백가의 머리와 시체를 끌어다 절벽위에서 백강에 던져 버렸다. 검푸른 백강물은 야심가의 시체를 삽시간에 삼켜버렸다.


사비성의 저녁노을


지배계급의 부패무능과 정권다툼으로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진 백제는 고구려의 압력에 못 이겨 다시 남으로 도읍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기원 538년 봄, 백제 제26대 임금인 성왕(聖王)은 마침내 도읍지를 사비성(泗沘城)으로 옮겼다. 이것은 백제의 세 번째 도읍지이자 마지막 도읍지였다. 성왕은 도읍지를 옮긴 후 밖으로 중국 남쪽의 큰 나라인 양(梁)나라와 교통을 열고 중국문화를 부지런히 수입해들이는 한편 안으로는 부세를 덜고 역사를 줄이는 등 나라를 다시 추켜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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