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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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7
  • 한지윤
  • 승인 2020.11.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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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앞날을 근심하는 충직한 신하들은 매일같이 간곡히 간하였지만 그 때마다 왕은 성을 버럭 내면서 신들을 옥에 가두거나 멀리 정배를 보냈다. 이리하여 충신들은 쫓겨나고 나라 안에는 간신들이 우글거리게 되었다.
“이제 백제는 망하는 수밖에 없구나!”
“온조 대왕께서 세우신 이 나라가 일조에 망하는구나!”
충신들은 쫓겨나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였다. 수백 년의 오랜 세월을 두고 자웅을 겨루던 세 나라는 이제 두 나라가 쓰러지고 하나만 남아야 할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건만 백제는 이 험악한 관두에서 너무나 무기력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제, 고구려, 신라 세 나라에 대해 자초에는 대등한 외교로 나오던 당나라도 이젠 완전히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없애치우려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해왔다. 이리하여 백제의 명망은 시간문제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라가 망하려니 나라 안에는 가지가지 괴변이 나타났다.
의자왕 19년 2월에는 여우들이 무리를 지어 궁중으로 뛰어들었으며, 그 중 흰 여우 한 마리는 상좌평의 탁상위에 올라앉아 세 번 울더니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5월에는 사비수(泗沘水)에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길이나 되었으며, 8월에는 한 여자의 시체가 떠내려 왔는데 키가 18척이나 되었다.
그 이듬해 2월에는 사비성의 모든 우물이 핏빛으로 변했으며, 4월에는 두꺼비들이 무리를 지어 나무위에 기어올랐으며, 5월에는 비바람이 크게 일어 숱한 나무들이 부러졌다. 6월에는 사슴만큼 큰 개 한 마리가 사비수 언덕에 와서 왕궁을 향해 짓더니 잠깐사이에 어디론지 사라졌으며, 더욱 기괴한 것은 궁궐 안에 시꺼먼 유령이 나타나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하고 크게 외치다가 땅속으로 사라져버린 그것이었다.

“그것 참 괴이하도다. 어서 땅을 파보아라.”
의자왕은 너무도 괴상하여 신하들로 하여금 그곳을 파보게 하였더니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다.
“그게 거북이가 아닌가?”
“그렇소이다. 그런데 등에는 글자까지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했는가?”
“백제는 둥근달, 신라는 초생달, 이런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왕은 얼른 무당을 불러들여 그 글을 풀이하게 하였다.
“백제는 둥근달, 신라는 초생달이라 하였으니, 그게 무슨 뜻인고?”
“보름달은 이제 이지러질 것이고 초생달은 이제 둥그래질 것이라 백제와 신라의 흥망성쇠를 하늘이 말해주는 줄로 압니다.”
왕이 묻자 무당은 별로 생각지도 않고 거침없이 아뢰었다. 그러자 왕은 발칵 성을 내었다.
“요망한 소리로다. 이제 백제는 고구려와 손을 잡고 하잘것없는 신라를 단숨에 무찔러버릴 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 저것을 당장 없애치워라!”
왕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무당은 변명 한마디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
‘백제는 둥근달, 신라는 초생달……’
충신들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면서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으나 아첨하기 좋아하는 간신배들은 여전히 왕의 비위를 맞춰주기에 급급하였다.
“무당의 말은 망년된 말이오니 들을 것 없습니다. 둥근달 같다는 것은 강성하다는 것이요, 초생달 같다는 것은 미약하다는 뜻이니 백제와 신라의 강약을 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그렇고 말구. 과인의 생각도 바로 그런거야!”
그제야 의자왕은 기뻐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렇지, 암 그렇고 말구! 핫핫핫!”

어리석은 임금의 얼빠진 듯 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충직한 신하들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다시 한 번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다. 
그 때 사비성에는 황혼이 고요히 내리고 있었다.
성충과 흥수, 충신은 충신이로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제31대 의자왕 때의 충신으로서는 성충(成忠)과 흥수(興首)라는 사람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인물이 뛰어나고 지모가 출중하여 모두다 좌평이라는 일등급 벼슬에 이르렀지만 말세에 태어난 충신은 언제나 간신들의 미움을 받았고 임금의 눈 밖에 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충신에게는 일신의 안위보다 나라의 운명이 언제나 더 중요하였다.
의자왕이 즉위한지도 어언 열다섯 해, 그날도 대왕포에서는 의자왕 이하 만조백관들이 큰 잔치를 벌이고 질탕하게 놀아대고 있었다. 북소리, 거문고 소리와 노래 소리가 향긋한 술 냄새에 실려 포구의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대왕포(大王浦)ㅡ이름만 들어도 임금의 놀이터임을 짐작할 수 있는 이곳은 사비수 북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포구, 선왕 무왕(武王)이 이곳에 화려한 놀이터를 꾸며 놓으면서부터 임금이 뻔질나게 다닌다고 대왕포란 이름을 달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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