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신도시’는 역사·문화·전통이 찬연한 ‘홍주시’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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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신도시’는 역사·문화·전통이 찬연한 ‘홍주시’로 바꿔야 한다
  • 필자·홍주사람 이상선
  • 승인 2012.04.0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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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무궁한 역사를 향한 필수적인 제언

2013 충남도청은 공주, 대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홍성·예산 지역인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게 되어 도청을 비롯한 각급기관단체들이 함께 이사를 하기 위해 청사신축 등을 준비하며 서두르고 있다. 내포시대의 개막을 축하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이청식, 개청식 등 각종 기념사업의 내용들이 공개됐다. 도정신문 충남도정 제 606호에 3대 주제 21개 세부사업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 보기 드문 역사적 이벤트(Event)로 기록될 것으로 기대된다. 가히 장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포신도시에는 내포가 없다’고 하니 역사적 정체성이나 근거가 결여된 지명을 가진 내포신도시의 지명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여 전 국민이나 전 도민들이 알 수 있는 역사적 지명이 될 내포시를 ‘홍주시’로 바꿀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내포시가 어디 있느냐 사방에서 반문이 들어온다.
 
우리나라에 행정구역이 설치되고 개편되기를 거듭해왔으나 그 많은 행정구역 중에 내포란 찾아 볼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 지적된 문제의식이 그대로 간과하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역사의 오류를 범할까? 중지를 모아 내포라는 지명은 반드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내포신도시 지명위원회 등 심의절차 과정 등이 소홀했음을 지적하고 싶다. 역사적 정체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전문가적 견해가 부족하여 명칭선정을 놓고 전 국민, 전 도민에게 도청이 옮겨갈 내포가 어디 있는지 의문만 남겨놓은 채 역사, 전통, 문화적 근거와 타당성을 제시하지 못한 생소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이 내포지역을 관장하던 1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장 홍주로서의 역사를 조명하고 내포가 어느 곳인가를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참고문헌으로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이 있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있고 홍주대관 그리고 이중환의 택리지를 참고할 수 있다. 택리지 팔도 총론에 의하면 충청도는 전라도와 경기도 사이에 있다. 서쪽은 바다에 닿았고 동쪽에 경상도 동북편 모퉁이는 강원도 남쪽으로 쑥 들어가 있다. 남쪽의 반은 차령 남쪽에 있어 전라도와 가깝고 북쪽 반은 차령 북쪽에 있어 경기도와 이웃한다.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내포(內浦)는 역사적 정체성이 결여된 명칭이다
과연 내포는 어디에 있는가?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 되는 곳에 가야산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데 바로 서해가 쑥 들어온 곳이다. 가야산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태안, 서산이 있고 그 동편에는 면천과 당진이고 가야산 동쪽은 홍주와 덕산이다. 그 동쪽으로 예산과 신창이 있고 홍주 동남쪽으로는 대흥과 청양인데 이렇게 가야산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내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내포는 그 명칭으로 어느 행정구역에도 사용되지 않아 전혀 생소한 이름으로 역사적 정체성이 결여된 명칭이다. 다만 충청남도청이 이전하는 지역으로 바닷가 포구로서의 이름이 갑자기 나타나게 된 것으로 생소하기 짝이 없다. 전국 광역자치단체들 어느 한곳도 역사가 결여된 명칭을 가진 지역은 한 군데도 없다. 모든 도시들이 예부터 내려오는 행정구역의 변천을 겪었지만 차라리 내포지역에 있는 어느 한 고장의 명칭으로라도 선택되었더라면 전국적으로 전 도내적으로 시비가 발생할 명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국가 통치를 위하여 정해놓은 행정구역 중 이 내포지역 전체를 다스리던 홍주목, 홍주부의 역사를 본다면 홍주라는 명칭에는 전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며 홍주는 10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국적인 지역 명칭임을 강조하고 싶다.

내포지역 전체는 물론 경기도 평택에서부터 서해안을 따라 충남의 서해안 끝 서천에 이르기까지 22군현을 다스렸던 홍주의 역사가 있고 전국이 23부였을 때. 홍주주부의 관할은 어떠했고, 충청도가 4목이였을 때 홍주목의 관할은 어떠했는지 알기 위해서 홍주의 행정구역과 변천사를 살펴보자.

·983년(고려성종 2년) 전국이 12개목(광주, 양주, 충주, 청주, 공주, 진주, 상주, 전주, 나주, 승주, 황주, 해주)일 때 홍주지역은 공주목에 속하였다.

·조선 태종 때 충청도는 4개목이 되었는데 홍주목, 공주목, 충주목, 청주목이 있고 그중 홍주목은 4목 중의 하나로(면천로, 태안군, 서산군등 3개군)과 13개현(신평, 고구, 여양, 흥양, 합덕, 해미, 당진, 덕산, 예산, 청양, 결성, 보령, 대흥)을 다스렸다.

·1457(조선세조 때) 홍주지역의 중요성(국방, 경제)이 부각되면서 충청도가 5개진관체제가 됨. 5개진관은 공주, 홍주, 천안, 청주, 충주에 두고, 홍주진관은 목사가 겸임하는 첨절제사를 두었고 이때에 홍주진관은 그 이전시대 보다는 가장 확대된 구역을 통할하게 된 바 홍주는 충청도 4목의 한 목으로 그 위용을 견지해왔다.

·서천, 태안, 서산, 면천, 온양 5개 군과 홍산, 덕산, 청양, 대흥 비인, 결성, 남포, 보령, 아산, 신창, 예산, 해미, 당진, 평택, 14개현을 합하여 19개 군현을 다스렸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경기도 평택현으로 충청도 홍주목에 속하였다. 홍주목사는 경기도 평택에서 서해안을 따라 충청남도 남쪽 서천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 다스렸다.



홍주 땅에 충남도청이 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
1991년 천안에서 개최된 충남도민체전에서 홍성군에서는 홍주목사 행차를 가지고 입장하여 첫 선을 보였는데, 홍주목사는 연(가마)를 타고 입장하고 관한 19개 군수 현감이 뒤를 걸어서 따랐는데 맨 뒤에 입장한 평택현감을 보고 천안 사람들이 감격했다. 천안과 평택은 각기 충청도와 경기도의 도계에 위치하여 항상 천안 이냐 평택이냐 우위를 주장해 왔는데, 평택 현감이 홍주목사의 행차 맨 끝에서 들어오는 모습은 충청남도 사람들의 새로운 인식과 감정에 묘한 미소를 주고 남았다. 마침 천안 출신 도지사가 연고지 천원군에 입장상을 주고 싶었으나 홍주목사의 행차를 보고는 홍성군에 입장상을 주는데 흔쾌히 손을 들어주었다. 내년(2013년)에 홍성 홍주종합경기장에서 개최되는 충남도민체전에서 홍주목사의 행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주목사 행차는 충청남도 각종 행사의 중요한 이벤트로 정착 되었다. 홍주 땅에 충남도청이 오는 것은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다. 충청도 홍주는 역사, 문화, 국방, 행정의 중심도시이며 예부터 국방상 요충지로 오늘에 이르도록 우리나라 서해안 국방의 최 일선의 중심이 되었다. 서해안 중심 해미읍성에 있던 이순신 장군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진관체제하의 지방군제는 관할이 진관체제와 유사했으며 충청도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5개 군영을 설치한 뒤 홍주(전영)을 비롯하여 해미(좌영), 청주(중영), 공주(우영), 충주(후영)으로 나뉘어 군사권을 행사했다.

·1895. 5. 26. 전국이 23부제가 되었다. 갑오경장 이후 도제가 폐지되고 23부가 설치된 바 홍주부는 전국 23부 중 하나였다. 전국 23부(한성, 인천, 전주, 나주, 남원, 제주, 진주, 동래, 대구, 안동, 강릉, 춘천, 개성, 해주, 평양, 의주, 강계, 함흥, 갑산, 경성, 홍주, 공주, 충주)

·홍주부는 22개 군을 관장했는데 홍주군 결성, 덕성, 한산, 서천, 비인, 남포, 보령, 임천, 홍산, 서산, 해미, 당진, 면천, 태안, 대흥, 청양, 예산, 신창, 온양, 아산, 정산 등 22개 군이다.

·1896. 8(칙령 제36호) 부제가 도제로 바뀌면서 조선시대의 충청도는 충청북도와 충청남도로 양분되고 충청남도는 종래의 공주부와 홍주부를 합하여 37개 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일제, 홍주군의 ‘홍’자 결성군의 ‘성’자 합해 ‘홍성’으로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일제에 의하여 홍주군과 결성군이 한자씩 합하여 홍성군이 되었다. 일제는 지역과 민족의 기와 세를 억누르고자 명산대처에 쇠말뚝 박기, 단발령 창시 개명 등 악랄한 정책을 고의로 자행한바 특히 반일감정이나 항일투쟁이 강했던 홍주지역의 기와 세를 누르고자 홍주라는 지명까지 강제로 바꾸었다. 홍주인들은 홍주라는 이름을 되찾고자 간단없이 노력해왔다. 정원식 국무총리가 11명의 장·차관을 거느리고 국민과의 대담을 위해 홍성을 방문했을 때, 홍주라는 이름으로 바꿀 것을 건의했고, 즉석에서 개명해주기로 약속 받은 바 있었으나 일부 친일파적인 소인배들의 반대로 바꾸지 못하고 향후 홍성이 시가 될 때에는 홍주로 바꾼다는 전제하에 현재에 이르다가 충청남도의 이전지가 됨으로서 인근 지역 단체와의 통합도 불가피한 역사적 사필귀정적 운명으로 이제는 충청도의 명실상부한 제 1의 도시가 될 것이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2010. 8. 2. 충청남도는 “충남도청이전 신도시의 이름이 내포시입니다”라고 확정 발표했다. 그 경위를 보면 2006년 명칭을 정하고자 전국에 공모하여 75명 153건의 명칭이 공모되었으나 적절치 못해 유보하였다가 충남도내 시·군의 의견을 수렴하고 충청남도 지명위원회에 최종 상정된 내포, 서해, 홍예 가운데서 내포로 결정했다. 공모된 지명 중 가장 많은 것은 홍성과 예산을 합한 글자 중에서 도출한 지명으로 홍예, 예성, 성산이 있고, 내포는 내포 문화의 중심이라는 특징을 반영하고 황해권 시대의 선도를 담당할 미래 지향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 최종결정 했다하나 홍성, 예산을 포함한 내포지역의 10개 고을은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홍주의 관할이었으니, 홍주의 역사성을 검토함에 있어 홍주라는 지명을 선택하지 못한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고 보겠다.

그동안 우리나라 광역단체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지역 명칭 변경의 사례를 보자.
서울, 부산, 인천, 대전, 청주, 대구, 울산, 광주, 제주 등 소재지나 명칭이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전남도청이 광주에서 무안으로 이전 되었으나 목포의 일부가 포함되었어도 무안으로 되었고 경남도청이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전 할 때는 옛 도시 마산, 진해, 창원이 통합하여 창원시가 되었다.
경북도청이 대구에서 안동과 예천으로 이전 되고 충남도청이 대전에서 홍성, 예산으로 이전하고자 각종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으나 충남의 경우 내포신도시의 명칭은 도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경북도청도 안동과 예천의 통합 시기에는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북의 안동과 예천은 안동부가 충남의 홍성과 예산은 홍주부가 관활했던 지역이므로 경북도청은 안동으로 충남도청은 홍주로 통합명칭을 정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리라 본다. 그래서 역사를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전국의 주(州)자가 있는 도시, 모두 시(市)가 됐다
결론적으로
일찍이 전국의 주(州)자가 있는 도시는 모두 시(市)가 되었고, 작은 도시도 시로 승격된 것을 보면 전국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이며 광활했던 홍주는 시 승격도 안 되었고 이제야 도청이 이전되므로 비로소 시가 될 것을 늦게라도 기대해본다. 홍주와 같이 개인의 이름도 지역이름까지 개명된 슬픈 역사는 찾아보기 힘든 아픈 상처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 매헌 윤봉길 의사, 백야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 선사, 최영 장군, 성삼문 선생, 홍주 의사총의 홍주의병, 이분들 모두가 청사에 빛나는 홍주인들이다.

새삼 홍주인임을 자랑스럽게 느끼면서 홍주역사 1000년을 되돌아본다. 충청남도의 제1의 도시 충남도청 소재지가 평소 잘 알지 못하고 역사성이 결여된 서해안 바닷가 포구인 내포라는 지명보다는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전국적인 지명 ‘홍주’로 다시 바꾸는데 누구가 반대하겠는가? 충청남도의 새로운 역사를 정립하고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정도를 걷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자. 이제라도 주저 없이 ‘내포’를 ‘홍주’로 바꾸는 지혜를 펼쳐보자고 강력히 충정으로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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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2013-01-17 20:58:38
홍주시를 보고 싶다. 홍성이나 내포는 일제가 멋대로 정한 이름이다. 홍주시민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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