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대첩100주년의 감회를 되새긴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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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100주년의 감회를 되새긴다②
  • 이상선 <전 홍성군수>
  • 승인 2020.12.1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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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사람도 아닌 분이 생가터를 찾아 주시어 감사했으나 고향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만시지탄이나 뒤늦게라도 생가를 복원하는 것이 제일급한사업으로 작정하고 항일독립투쟁사에 가장 빛나는 청산리대첩 전승지를 가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돼 당시 갈산면장 전하수 향토유지 이건엽 교장선생 사학자 전옥진을 팀으로 해 홍성사람들이 처음으로 청산리 전승지를 답사토록 파견했다. 생가복원의 대역사를 시작하기 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현장답사팀이 보고했다.

청산리계곡에 들어서 한참이나 올라갔으나 어느 곳에서도 백야장군이나 독립군의 행적을 찾지 못하고 백운평계곡에서 장군을 생각하며 손만 씻고 왔다 했다. 
그런 보고를 듣고 군의회 이병칠 의장과 상의해 군의원 전원을 함께하고 청산리 현장을 직접 확인하려고 현장을 다녀왔다. 

조선족 안내인을 따라 청산리전승지인 백운평계곡을 올라가는데 우축산 언덕에 나무기둥하나가 서있어 가보니까 홍범도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곳이라고 나무토목에 써서 세워 놓은 초라한 목비를 발견했다. 김좌진장군 이름이 없는 비목이라 그래도 왜적을 물리친 전승지라 목비 옆에 우거진 수풀을 뜯어내고 기념촬영을 하고 왔다. 중국에 가는 여권발급이 어려움이 있었으나 청와대에 근무하던 출향인 이의섭의 협조로 계획대로 여권이 발급돼 청산리를 다녀왔다.

길림성 연길시에 도착하니 연길시장 박동규 씨의 환영을 받았으며 알고 보니 홍성읍 고암리가 자기 고향이라 해 참으로 반가웠으나 잠시 이병칠 의장과 셋이서 차 한잔을 하는데도 공산당원의 감시가 계속돼 고향 얘기를 해주고 조선족 생활 얘기만 듣고 헤어졌다. 홍성사람이 30만 도시의 시장이라니 기이한 만남이었다. 알고 보니 신보규 실장이 고향임을 찾아줬다고 한다. 

장군의 생가복원 기공식 상랑식 준공식을 하면서도 중국 측 조선족들을 초청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우선 청산리전승지에 기념비를 세우고 신보규 단장이 10여명의 군민들과 제막식에 다녀왔다. 1920년 전승년도를 상징해 기념비의 높이는 19m로 했다. 직접 확인한 바는 없었으나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장군의 이름을 넣어 기념비를 세운 것으로 자위(自慰)했다.

생가복원소식을 듣고 제일먼저 찾아온 손님은 경북 안동·의성의 안동김씨가 주축으로 400여명이 생가를 방문했다. 생가의 안과 밖을 돌면서 장군을 기리며 준비된 도시락을 마루 뜰 마당에서 앉아 식사를 했고 우리군에서는 커다란 물통 2개에 따뜻한 숭늉을 대접하던 중 서울에서 이곳 지역출신 국회의원이 내려와 장군의 생가지를 꽃피웠다. 마침 국회의원이 나의 고교동창인 홍영표와 연세대정외과 동창이라 하며 반갑게 얘기할 수 있었다. 

생가 준공식 때는 처음 보는 대통령의 화환이 내려오고 이강훈 광복회장, 대종회장, 안동김씨종친회장, 도지사, 32사단장과 무장군인 애국단체 육군본부 군사실장 갈산면민들 수많은 내외빈들이 함께 독립군가를 들으며 장군을 추모했다. 강렬한 햇볕이 쬐이는데 장군의 음덕(蔭德)인지 검은 구름이 차양이 됐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성대히 준공식을 마쳤다.

<계속>

 

이상선 <전 홍성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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